‘간판의 신’님과의 인터뷰

서울시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디자인 서울 뉴스레터’의 ‘퍼블리씨와의 대화’ 코너에 기고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합니다.

(관련 링크 : http://sculture.seoul.go.kr/archives/38370 )

천경환 (이하 ‘천’) : 안녕하십니까. 게으른 건축가 천경환입니다. 이번에 모실 분은 간단히 소개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간판문화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시에서 어렵게 섭외했다고 하는데, 실은 저도 이 분의 정확한 정체를 아직 잘 모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름이 어떻게 되시지요?

간판의 신 (이하 ‘간’) : 응. 나는 ‘간판의 신’이야.

천 : 네?

간 : 간판의 신! 내가 인간이 아니라 신이거든. 하하, 표정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하진 말고, 편하게 대해 줘.

천 : 아니요. 조금 놀랐지만, 지난번에 버스정류장하고도 인터뷰를 해 본 터라, 그렇게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죠.

간 : 응, 나는 서울시에 설치된 ‘옥외광고물’, 간단하게 ‘간판’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총합이야. 사람들은 눈 앞의 대상들을 곧잘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고, 생물에는 의식이 있지만 무생물에는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희미한 ‘의식의 싹’이 들어있거든. 몇 년 전, 수 없이 많은 간판들마다 따로따로 깃들어있던 ‘의식의 싹’들이 모여서 하나의 또렷한 자의식으로 태어났는데, 그게 바로 나야. ‘서울시 간판의 대표’라고 할까?

천 : 아, ‘간판의 간판’이라고 할만하군요. 대단한 분 모시고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몇 년 전에 태어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정확히 언제인가요?

간 : 2008년 3월 12일, 서울시에서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었지. 그리고 2012년 9월28일, 그 내용이 ‘서울특별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조례’(이하 ‘조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었어. 나는 그 즈음에 이렇게 또렷한 의식으로 각성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해. 그 전에도 간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았지만, 그냥 ‘보기 안 좋고 어지럽다!’ 는 식으로, 산발적으로 내뱉었다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막연한 감상평이 대부분이었지. 해결이나 개선을 위한 공식적인 의제로 관심 받진 않았었거든. ‘가이드라인’이 ‘조례’에 반영되어 실행되면서, 간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간판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더라고. 정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옳다 그르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또 더러는, 간판을 철거하는 공무원이랑 가게주인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몸이 슬슬 달아오르다가, ‘희미한 우리들’에서 ‘또렷한 나’로, 어느 순간 불쑥 발돋움하게 된 거지.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이야.

천 : 따지고 보면 ‘가이드라인’ 발표가 결정적인 계기였군요.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간 : 그게, 나로서는 정말 중요한 사건이지만, 내가 워낙 ‘흩어진 의식들’이 우발적으로 모여서 태어난 자의식이라, 원래 기억이 좀 가물가물해. 정신도 있다 없다 하고 말이지.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아봐.

천 : 그래요. 그러면, 제가 지금 검색해 볼게요.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요! 제일 처음에 나오는 전제가, “간판은 업소를 알리는 ‘상업수단’이자 도시경관을 이루는 ‘미관요소’이고, 그래서 ‘업주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쉽게 말하자면, “간판은 업소 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니, 서울시에서 참견을 좀 해야겠다.” 는 이야기인가요?

간 : 그렇지! 그게 바로 모든 간판들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거든. 우리 간판들은 가게 주인들이 자기 돈 벌기 위해 자기 돈 들여서 만든 것이기는 해도, 온전히 가게 주인만의 소유물이라고 하기 힘들어. 우리들이 모여서 거리 풍경이 이루어지는데, 거리 풍경은 서울시민모두의 것이잖아.

천 : 그래요? 그런가?

간 :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군. 온전히 ‘내 것’인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것’인 경우가 의외로 많아. 예를 들어, 땅도 그래. 힘들게 모은 내 돈으로 산 땅이라, 그 땅 위에 건물을 내 마음대로 지을 수 있을 것 같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모든 땅에는 건물의 쓰임새, 크기, 넓이, 높이, 생김새 등에 대한 규제가 있다고. 정해진 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지어야 하는 거지. 왜 그러겠어. 빈 땅에 건물이 들어서면, 시원하게 통하던 햇볕이나 바람이 막히고, 멀리 보이던 경치도 가려지고, 사람이나 자동차의 흐름이 새롭게 생기기도 해. 건물 안에 사람이 살면서 온갖 소음이나 쓰레기들이 주변으로 흘러 나오기도 하고. 땅과 건물은 분명히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지만, 땅과 건물로 인해 생기는 온갖 효과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잖아. 그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 땅에는 이런 종류의 건물을 이렇게까지만 지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참견을 하는 거라고. 결국, 땅이나 건물은 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해.

간판도 마찬가지야. 건물만큼은 아니겠지만, 거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 주로 시각적인, 풍경연출에 관련된 영향일 텐데, 지나치게 번쩍거리는 빛이 이웃의 수면이나 운전을 방해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도 할 수 있어. 길가에 커다란 간판을 설치한다는 것은, 길 한복판에 서서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지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봐. 아무데서나 목청껏 소리치면 안 되듯, 자기 마음껏 되는대로 간판을 달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너는 건축가라면서 이런 개념도 몰라?

천 : 아, 뭐. 모른다기 보다,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짐짓 모른 척 한 거죠.

간 : 아닌 것 같은데?

천 : 아무튼, 이런 기본적인 전제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말씀 들어보면 대충 취지가 이해는 되는데, ‘목숨 걸고’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간판에 대한 간섭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 간판 크기 줄이고, 전면에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플렉스 간판 대신 글자에만 불이 들어오는 형식이나 간접조명 형식의 간판으로 바꾸라는데, 그렇게 해서 손님 줄어들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서울시나 구청에서 책임져줄 것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새롭게 돈을 들여서 작은 간판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해요.

간 : 내가 명색이 ‘간판의 신’인데, 간판을 설치한 상점주인들의 심정을 왜 모르겠어?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지. 거리에 빼곡히 들어찬 간판들마다 가게 주인의 애절한 바램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아니, ‘애절한 바램’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주인의 온갖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게 우리 간판이야. 우리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는 주인들도 많았지만, 우리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우는 주인들도 많았어. 수 없이 겪어왔던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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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최민욱제공)

그런데 나는 간판 주인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 간판들의 사정이나, 길거리에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의 심정, 그리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사람들의 취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간판답지 않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우리를 만든 가게 주인의 절박한 심정을 알고, 그래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한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 대한 기대가 무지 부담스럽기도 해. 각각의 간판이 아무리 크고 요란하다고 해도, 수 많은 간판들이 건물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사실은 ‘어느 특정 간판을 알아보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거든. 그래서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아. 어쩔 수가 없어.

그 와중에도 우리를 만든 주인의 마음이 의식되기도 하고, 그리고 워낙 다들 덩치가 크니까 덩치 값이라도 하겠다고, 각자 커다란 목소리로 악다구니를 써대는 거야. 그러는 와중에 옆 간판이랑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서로 민망하기도 해. 옆 친구보다 조금이라도 더 튀어 보이겠다고 우리 간판들끼리 얼굴 붉히는 일도 허다하고.

천 : 듣고 보니, 나름 마음 고생이 심하시겠어요.

간 :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짜증내는 사람들도 많아. 우리들 때문에 거리 풍경이 워낙 정신 없이 어지러운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스스로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우리가 또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어요. 참 교양 없고 볼품 없이 생겼다고 생각해. 한마디로 못생겼어! 더러 센스 있게 디자인된 간판들도 가끔은 있지만, 대부분이 그래. 천박하게 생겼어! 싸구려 술집 여자 같아!

천 : 저는 그런 술집 가본 적 없어서 잘 와 닿지 않네요. 아무튼 너무 자학하진 마세요. 안쓰러워요.

간 : 그런데 웃기는 건, 그렇게 어지러운 풍경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이, 정작 자기 가게 간판은 또 요란하게 만들어 붙이더라는 거야.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게 굴러가더라고. 봐. 이게 남의 탓을 할 일이 아니야. 간판으로 어지러운 풍경은 서울의, 아니, 대한민국의 거울이야. 대한민국의 초상이야. 애들 교육만 해도 그래. 모든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 투자는 아깝게 생각하면서, 자기 아이만을 위한 사교육에는 아낌 없이 돈을 쓰는 모습을 봐. 건물이나 거리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고 자기 가게 선전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천 : 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무튼, 가이드라인을 마저 읽어볼게요. ‘가이드라인의 기본방향’이 나오는데, 정리하자면 간판의 수량과 면적, 정보량을 최소화하고, 디자인이나 색채, 재질의 측면에서 건축물과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런 내용이네요.

간 : 응. 이게 문자 그대로 ‘기본방향’이야. 수량이나 면적 등 ‘표현의 세기’를 줄이고, 건물이나 거리 풍경 등 ‘배경과의 조화’를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이런 방향의 변화는 각각의 간판 주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기에, 반강제적으로 지침을 만든 거야.

천 : 그 다음이 재미있네요. 도시 공간과 간판 형식을 각각 유형별로 구분했어요.

간 : 아, 맞다. 그런 식으로 되어 있었지. 이제 좀 기억이 난다. 도시를 중점/일반/상업/보전/특화, 이렇게 다섯 가지 ‘권역’(圈域)으로 나누고, 각 권역의 성격, 특성, 디자인 개념 등을 정리했더라고. 간판도 마찬가지로 가로형/상단부착형/연립가로형/돌출/소형돌출/지주이용/창문이용 등으로 나누고.

천 : “1. 기본방향을 염두에 두고, 2.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성격의 공간에 맞추어, 3. 적합한 종류의 간판을 적용해라.” 는 내용이군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어요.

간 : 우리 간판의 종류가, 알고 보면 제법 많거든. 건물에 고정되는 방식이나 크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뉘어지는 거라고. 테헤란로랑 가로수길에 같은 종류의 간판을 설치하는 것은 이상하겠다는 이야기지. 가로수길이랑 인사동이랑도 각각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겠고. 예를 들자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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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천경환 제공)

(건축가 천경환 제공)

천 :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지 벌써 6년이 되어가는데요.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간판정비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었고, 그러면서 서울시의 거리 풍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커다란 판으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빽빽하게 나열되면서 거의 건물 전체를 가려버리는 식이었잖아요. 정비사업을 통해 커다란 판이 작은 글자로 바뀌면서 건물 표정이 한결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어요. 간판 부착 위치도 창문 간격 등에 맞춰서, 한결 가지런해진 느낌이고. 그래서 흔히 말하는 건물과의 조화도, 예전보다는 많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에요.

간 : 넓은 면에다가 큼지막한 글자를 꽉 차게 써 놓으면 잘 읽힐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더라고. 공부 많이 하신 분들 말씀이, 시원스럽게 비워진 여백을 배경으로 작고 얇은 글자를 살짝 얹어놓는 방식이 읽기에 오히려 더 편하다고 해. 덕분에 거리나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고. 풍경이 느슨해지고, 여유가 생겼어.

천 : 그런데 왠지 좀 어색해 보이기도 해요. 산뜻하고 밝아졌다는 점은 인정하겠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 세트장이나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랄까요? 오랫동안 익숙했던 풍경이 갑자기 바뀌어서 낯설어 보이는 것이겠지요?

간 : 아무래도 그런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지. 수 십 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풍경인데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낯설어 보이는 거지. 그리고, 큰 틀에서의 취지는 옳은 것 같은데, 글자체나 두께, 간격이나 배열 방식 같은 구체적인 디자인 수법 상으로는 아직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어 보여. 글자 크기를 줄인다는 것은 분명 유효한 방향이야. 그런데 글자 안에 조명을 넣느라, 글자 두께가 일률적으로 도톰해진 것이 문제야. 한글은 획이 촘촘하게 배열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글자 두께가 도톰해지면 뭉쳐서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글자 크기나 배열 위치는 가지런하게 맞추되, 글자체라든지, 혹은 글자가 빛나는 방식은 다양하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해.

천 : 어지럽고 난잡한 간판 풍경 또한 나름의 역사고 기억일 텐데, 씨를 말리듯 완전히 없애는 식으로 정비되어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래된 건물이 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서 보존되는 것처럼, 유명한 가게의 오래된 간판에 대해서도 그런 개념을 적용해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든다면 장충동의 족발집들 같은 경우지요. 동대입구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오래된 족발집들이 늘어서있는데, 다들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하느라 ‘원조 아무개 족발’ 이라는 간판들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잖아요. 맥락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그래픽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분명히 어지럽고 난잡해서 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추억이나 역사에 관련된 맥락에서 보면, 그 간판들에 수 십 년 동안 쌓인 장충동 족발거리의 정체성이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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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최민욱제공)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이나 새롭게 형성되는 신도시의 간판들은 당연히 가이드라인에 맞춰 통제 되어야겠지만, 오래된 거리의 오래된 간판들은 선별해서 보존할 수도 있겠습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유서 깊은 동네에 가면, 개성 넘치는 옛 간판들을 더러 보게 되는데, 가이드라인 상의 크기 규정을 따져가며 철거하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간 : 그런 가치를 인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역시 건축가라 생각하는 게 남다르네! 앞서 못생겼다며 자학하기도 했지만, 당신 말처럼 간판 안에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그리고 기술 수준 등,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있지. 유서 깊은 거리에는 품격 있는 영혼이 깃드는 법인데, 줄줄이 늘어선 촌스러운 간판들이 그 영혼을 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해. 겉모양이 조잡하고 촌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금 관점에서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고.

의미 있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면, 의미 있는 간판 또한 보존해야겠지. 당연한 일인데! 아, 갑자기 자긍심이 한껏 높아지는 기분이야!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천 : 감정의 기복이 심하신 것 같아요.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진행을 좀 서둘러야겠습니다. ‘가이드라인’의 개략적인 내용이나 취지를 이해하겠고, 그 동안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는 사실도 알겠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불편을 느끼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던데요.

간 : 응,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더라고. 새로 이사오면서 이전 간판을 떼어내고 새로운 간판을 설치하는 와중에, 이전 간판과 엇비슷한 크기와 형식으로 만들어서 붙였다 이거지. 그런데 뒤늦게 구청에서 ‘새롭게 만들어서 붙이는 간판은 새롭게 생긴 규정에 맞추어 붙여야 한다!’라며 철거하고 다시 만들어서 붙이라고 하더라는 거야. 옆 가게는 예전의 큰 간판을 계속 달고 있는지라 당장의 형평성에 잘 맞지 않게,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거지.

천 : 정책의 명분이나 커다란 방향만큼이나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집행 방식 또한 굉장히 중요할 텐데, 그런 면에서 빈 틈이 있었군요.

간 : 응, 물론이지. 불공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거든. 옆에서 누구도 그런 규정을 알려주지 않았단 말이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연히 예전 간판만큼, 혹은 옆집 간판만큼 설치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지. 규칙을 세우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알려줘서 위반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구청에서 세운 규칙이 있어. 그걸 큼지막하게 인쇄해서 해당 거리에 자리잡은 부동산중계업소에 나누어주면 쉽게 해결될 일이야. 부동산중계업소 안에 포스터처럼 걸어두라고 해. 그럼 가게 임대 계약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알게 될 테지. 간판 관련 규칙을 미리 안내 받지 못해서 낭패를 보았다면, 철거 및 재설치 비용을 부동산중계업소가 내라고 하고.

천 : 재미있습니다. 그럴듯한 아이디어인데요. 그런데, 요즘 막 새로 지은 건물에 입주하는 경우는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위반하는 사례는 별로 없겠어요. 건축허가 과정에서 간판 크기나 부착 위치를 구청에서 확인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들도 건물 디자인에 그런 사항들을 미리 반영하기도 하고요.

간 : 응. 그래서 간판 관련 착오나 해프닝이 많이 줄어들고 있긴 한데, 그 와중에도 가게 주인들이 적극적으로 편법을 찾아서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건축가천경환제공)

요즘 지어지는 건물에는 간판을 모아서 붙이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외의 자리에 마음대로 붙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건물주도, 임대인도 잘 알아. 그래서 하는 짓이, 자기 유리 벽에 밖에서 보라고 커다란 글자를 붙이는 거야. 햇볕을 가리는 스크린에 글자를 인쇄하기도 해. 실내에서 붙이면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하나 본데, 엄연히 불법이거든. 가게 하나가 그런 짓을 하면, 근처 가게들도 금방 따라서 하게 되더라고. 자기 혼자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볼 것 같으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잘 디자인된 건물 얼굴이 완전히 망가질 때도 있지. 그런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지.

천 : 적발되어 시정명령을 받아도, 실내 유리면에 붙인 스티커 방식의 글자를 뜯어내고 약간의 과태료를 물면 되니까,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거죠. 과태료나 철거비용보다 그 동안의 광고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건축가천경환제공)

간 : 그런데, 그렇게 해서 건물 얼굴이 망가지면, 당연히 그만큼 건물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야. 큰 맘 먹고 세 들어온 고급 건물이 한 순간에 싸구려 건물로 비추어지게 되는 거라고.

(건축가천경환제공)

천 : 그리고 건물이 자리잡은 동네가 싸구려 동네가 되는 거고요. 그만큼의 피해를 자청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런 것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일단 장사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런 위반은 구청에서 단속 나오기 전에, 건물 주인이 막아야 한다고 봐요. 건물에 대한 투자의 의미, 그리고, 자기 자산의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물주라면, 비싼 돈 들여서 정성껏 지은 예쁜 건물을 망가뜨리지 말라고, 내 건물이 자리잡은 이 동네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고, 그렇게 따져야지요. 건물의 가치는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들의 양식, 그리고, 건물이 자리잡은 동네의 이미지와 별개일 수 없거든요. 사람이 좋고 동네가 좋아야 건물도 좋아지는 거라고요.

간 : 그러게.

천 : 피곤하신가 봐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오랫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간판 개선사업이 잘 정착이 되어 간판을 둘러싼 잡음이 줄어든다면,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저절로 소멸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간 : 하나로 통합된 또렷한 의식은 사라질 지 몰라도, 거리의 추억을 지키는 영혼들 중 하나로, 희미한 ‘의식의 싹’의 형태로, 도시와 거리가 존재하는 한, 나는 계속 살아있을 거야. 불러줘서 고마웠어. 하고픈 말을 시원스럽게 풀어놓을 수 있어서 후련했어. 안녕.

천 : 안녕히 가셔요!

 

‘신논현역22-011’님과의 인터뷰

지난 1월 22일, 서울시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디자인 서울 뉴스레터’의 ‘퍼블리씨와의 대화’ 코너에 기고했던 내용을 뒤늦게 정리해서 포스팅합니다.

( 관련 링크 : http://sculture.seoul.go.kr/archives/35881 )

 

 

천경환 (이하 ‘천’) :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신논현역 22-011 (이하 ‘신’) : 응, 사람들은 나를 두고 보통 ‘강남역 버스 정류장 양재역 방향’ 정도로 부르는 모양인데, 내 정식 이름은 ‘신논현역 22-011’이야. 간단하게, ‘신논현역 버스정류장’ 이라고 해도 되겠지. 예전에 ‘교보타워 사거리 버스정류장’으로 불렸던 때도 있었지. “강남역에서 보자!”라고 할 때, 사람들은 내가 자리잡은 주변 동네를 떠올리는 것 같은데, 진짜 ‘강남역 버스 정류장’은 저기, 테헤란로 건너 남쪽에 있어. 나는 지난 2004년 7월, 서울시에 버스중앙차로제가 도입되면서 태어났지. 지금의 모습으로, 하나의 완벽한 자아로 정리되어 태어나기 전에는, 도로 가장자리 강남대로 서쪽 방면에, 몇 개의 푯말들로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해. 아무튼, 내 몸에 연결된 횡단보도라든지, 중앙차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 다른 버스정류장들이 나와 함께 태어난 형제자매들이야. 특히 바로 옆에 붙어있는 ‘신논현역 22-012’는 쌍둥이나 마찬가지야. 크기나 생김새는 거의 똑같은데, 놓인 방향만 다르거든. 강남역에서 강북 방면으로 가려면 ‘012’에 가면 되고, 강남 방면으로 가려면 나에게 오면 되는 거야.

: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일상의 풍경으로 완전히 녹아 들었는데, 갓 태어나셨을 때에는 제법 큰 화제거리였었다고 기억해요. 2004년이라고 했나요? 어때요? 그 때를 돌이켜 보면.

: 사람들이 많이 신기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많이 낯설어하고, 또 불편해하기도 했지. 버스중앙차선제가 정착되기 전에는 시행착오도 많았고, 불편도 컸고,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지. 처음 얼마 동안은 모든 버스들이 중앙으로 몰리면서 엄청난 교통 혼잡이 벌어졌었거든. 특히 나를 비롯한 근처 몇몇 ‘강남대로 형제자매들’이 대표적인 불편사례로 손꼽히면서, 티브이나 신문에 얼굴이 커다랗게 나오고 그랬었어. 내 주변에 버스들이 기차처럼 줄줄이 서있는 사진을 본 기억이 있을 거야. 충분한 예비 시험을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덜컥 도입해서 불편이 커진 거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길게 할 건 아니고. 아무튼, 부랴부랴 몇 개의 광역 노선들을 길가로 돌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졌고, 지금은 시스템이 무난히 정착되었지.

그 때는 ‘버스중앙차로제’라는 새롭게 도입된 제도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서, 내가 가진 매력을 뽐낼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그게 지금도 아쉬워. 날씬한 내 몸매를 봐. 이래봬도 내가 프랑스출신이거든.

: 아이고, 그러셨어요?

: 그럼! ‘장 미쉘 빌모트(Jean Michel Wilmotte)’라는 프랑스 건축가가 디자인한 몸이라니까! 파리에 있는 시내버스정류장들이 다 내 친척들이라구.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 교통량이 달라서 나보다 좀 짧은 애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나랑 똑같이 생겼어. 참고로, 인천 국제공항에 세워진 안내판들도 같은 부모를 둔 내 형제들이야. 걔네들은 나랑 아주 똑같이 생긴 건 아니지만, 제법 많이 닮은 모습이지.

매일 봐서 익숙하다 생각하겠지만, 한 번 자세히 봐봐. 늘씬하고 가뿐해 보이잖아. 지탱하거나 버텨야 하는 딱 그만큼의 두께와 크기로 설계되었기 때문이야. 쉽게 말해 군살이 없는 거지. 예를 들어 지붕을 받치는 팔의 경우, 지붕 끝으로 가면서 가늘어지잖아. 광고판을 지탱하는 받침대도 마찬가지고.

: 또 다른 자랑거리는 없나요? 외모에 대해서.

: 헤헤. 왜 없겠어? 각종 안내판이나 광고판, 벤치 같은 액세서리들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한 몸에 묶여서 함께 디자인되어있다는 것도 내세울 만 하지. 버스정류장 만들고, 벤치나 안내판은 따로 사서 옆에 세우는 식으로 디자인하면, 아무래도 촌스럽고 어수선해 보이기 쉽지. 여러 요소들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 방해가 될 수도 있어. 벤치가 내 몸에 어떻게 붙어있는지 잘 봐봐.

: 같은 색깔에 같은 재료로 한 몸처럼 붙어있어서 보기에 깔끔하네요.

: 그리고, 이게 내 허리에 매달려있다고. 자기 다리로 서 있는 게 아니라, 내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거든. 덕분에 벤치 아래 공간이 걸리적 거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뚫려있고, 짐이든 발끝이든, 넉넉하게 넣어둘 수 있는 거지.

: 그렇네요. 자랑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발로 지탱하지 않고 허리에 매달리는 식의 구조를 ‘캔틸레버(cantilever)’라고 부른다는데, 커다란 광고판도 그렇게 붙어있네요.

벤치처럼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눈에 잘 띄는 것도 아니지만,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일관된 이미지 연출에 도움을 주고 있겠지요. 뼈대에 조명이 붙어있는 방식도 인상적이에요. 뼈대에 스며들어 가듯, 깊숙이 박혀있네요. 조명은 뼈대와 한 몸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유리는 뼈대와 완전히 별개의 독립된 요소로 고정되어 있네요. 이런 작은 표정들이 쌓여서 전반적으로 가뿐한 인상을 연출하고 있나 봅니다.

: 그렇지. 그런 거야. 제법 이해가 빠르군.

: 그러고 보니 주변의 담장이나 가로등 또한 선생님 몸이랑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사실 이 인상적이네요.

: 알다시피 서울이 얼마나 어지럽고 난잡해. 서울은 나이가 60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들쭉날쭉 서둘러 만들어진 도시잖아. 그런 도시에서 건물의 표정을 가지런하게 통제하기는 힘들겠고, 대신 가로등이나 버스정류장, 차로분리대 등 공공 시설물들의 생김새를 최대한 일관되게 연출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거리 풍경을 정돈하는 거야. 거기에 내가 큰 힘을 보태고 있는 거라고. 그걸 알아주었으면 해.

: 그렇군요. 감사해요. 그런데, 2004년에 태어나셨다고 했는데, 올해가 2014년이니까, 벌써 10살이 되었네요.

: 그렇지.

: 음. 그런데, 왜 저에게 반말하세요? 나이는 제가 훨씬 더 많은데.

: 그야, 뭐. 나는 덩치도 크고. 사람이 아닌 가상의 존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글쓴이 입장에서 내가 이런 말투 쓰는 게 편할 테지. 이제 와서 존댓말 쓰기도 이상하잖아. 불만 있나?

: 아, 뭐. 좋아요. 그런데, 갓 태어났을 때랑 지금을 비교해 보면, 바뀐 부분도 있죠?

: 응. 새롭게 덧붙여진 것들이 있지. 곧 도착할 버스를 알려주는 전광판 같은 것은, 한국이 자랑하는 아이티(IT) 기술의 성취를 입증하는 거야.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전광판 덕분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좀 더 여유롭게 기다렸다가 원하는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지. 전에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뛰어다니느라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리고 전광판이 설치되면서, 나는 비로소 내 목소리를 갖게 되었지. 전광판 알림과 함께 “몇 분 뒤, 아무개 버스가 도착하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목소리 때문에 비로소 내가 사실은 젊은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 내 이름(22-011)이 커다랗게 써 있는 것도 이유가 있지. 스마트폰 어플에 입력해서 버스 이동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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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울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 끊임 없이 새로운 것이 생기고, 뭔가가 바뀌고. 몇 달 전이었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인도와 버스가 서는 차로 사이 경계 바닥에 조명을 붙이더라고. 아직은 정확히 어떻게 작동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은근 기대가 돼. 내가 어떻게 더 멋있어질까, 가슴이 두근두근해.

: 서울은 유명한 최첨단 도시죠. 우리는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 외국친구들은 깜짝 놀라기도 해요.

: 연말에는 내 머리 위에 화려하고 예쁜 장식물을 씌우기도 하더라고. 기업 협찬을 받아서, 광고를 겸한 장식물을 올리는 거야. 이런 역할도 사실은 내가 막 태어났을 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지. 아무튼,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내가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지더라고. 사람들이 은근히 즐거워하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 선생님의 등장으로 거리를 거닐거나 횡단보도를 통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체험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응. 그런 측면에서도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되더라고. 나는 보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어. 보행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서 자동차를 좀 더 만만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강남대로가 왕복 10차선이야. 폭이 40미터에 육박하는 큰 길인데, 쉬지 않고 단번에 건너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거리지. 쉼표 없이 긴 문장을 단번에 읽으려면 힘들잖아. 긴 문장을 여유롭게 읽게 하려면, 쉼표를 찍어야 해. 나는 강남대로 한복판에 놓인 쉼표야.

: 과연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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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상황을 상상해봐. 40미터 너머의 사람들은 자세히 보이진 않아. 윤곽만 얼핏 보일 뿐이지. 그런데, 20미터 너머 내 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제법 잘 보이거든. 미세한 표정까지 잘 보이고,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어떤 교감이 오간다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게 되는 거야.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뀌면 함께 나와서 차로를 점령하자!” 정작 본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리고 겉으로는 마치 서로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만들어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 한결 만만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해. 나 덕분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호흡이 짧아졌고, 횡단보도 설치 간격이 좀 더 촘촘해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황량했던 강남대로의 공간 느낌도 잘게 쪼개지면서 한결 아늑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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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쌍동이 ‘신논현역 22-012’ 언저리에 연결된 몇 개의 횡단보도들에서 보행신호가 떨어졌을 때, 일제히 사람들이 차로로 쏟아지는 광경을 보면 정말이지 장관이야. 넓은 강남대로 차로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으로 바뀌는 모습! 횡단보도가 촘촘히 놓여있고, 신호가 동시에 떨어지다 보니,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차로의 영역이 생기는 데에 묘미가 있어. 차로 위를 사람들이 막 걸어 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지.

: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년 새 강남대로의 풍경이 많이 활기차게 바뀐 것 같아요.

: 많은 분들이 “서울은 보행자에게 친절한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자동차의 도시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옳은 지적이지. 내가 비록 버스정류장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걷기 편한 도시가 좋은 도시 맞아. 서울은 좀 더 보행자를 위한 도시가 되어야 해. 서울을 보행자의 도시로 만드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는 거라고.

: 강남대로 동쪽(강남구) 상권과 서쪽(서초구) 상권이 하나의 상권으로 좀 더 밀접하게 이어지게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분리된 상권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연결된 상권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 해요.

: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봐주면 고맙지.

: 예전에는 동쪽 블록에서 만나면 계속 그 언저리에서 놀았었는데, 요즘에는 동쪽 블록에서 놀다가 재미 없으면 곧잘 서쪽 블록으로 넘어가서 놀기도 하는 등, 동쪽과 서쪽 블록이 좀 더 가깝게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뭔가 느낌이 달라졌겠지요?

: 응, 내 주변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이 곧잘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 자동차랑 이야기를 해요?

: 뭘 그리 놀라? 버스정류장이랑 자동차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신기해? 서로 소통이 안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야?

: 저희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되어 걱정인데, 자동차와 이야기를 하신다니 신기하고도 부러워요.

: 이 정도로 그렇게 놀라워 하다니, 의외로 귀엽군. 아무튼, 자동차들이 가끔 나에게 하는 말이, 나를 의식하면서 운전자들이 태도가 확실히 조심스러워졌다는 거야. 바로 옆에 자동차가 아닌 커다란 광고판이 서있고, 또,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있으니까. 자동차를 위한 황량한 간선도로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길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게 된다고 하더라고.

차가 막혀서 오랫동안 정지해있어도 지루함이 덜 하다는 말도 있고. 아늑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는 운전자들도 있다니, 나 또한 흐뭇한 일이지.

: 말씀을 듣고 있자니, 선생님 덕분에 거리의 풍경이 여러 측면에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의 변화 또한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해 주시지요.

: 서울은 정말이지 역동적인 도시야. 살기 험하고 무뚝뚝한 도시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의외로 많은 배려가 심어져 있거든. 새로 만들어지는 것들도 많고, 의견을 받아서 업그레이드되는 속도도 빨라. 바로 나처럼 말이야! 열심히 사느라 바쁘겠지만, 가끔은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해. 이유를 상상하고,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효과를 살펴보기를 권해. 그만큼 서울이라는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사용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인터넷으로든 전화로든, 그 때 그 때 말해주면 더 고맙겠어. 아무래도 칭찬받으면 신나고 힘이 나겠지. 그리고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바뀌고 싶은 마음도 커.

: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역할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동감프로젝트/정리

책에 들어갈 것들인데,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마무리가 되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판사에 넘겨줘야지….
 
그리 대단한 결과물들도 아닌데, 퇴근 후나 주말마다 틈틈이, 이런저런 이유로 집중이 잘 안되는 와중에 나름 브이레이랑 일러랑 공부하면서 하느라 힘이 좀 들었다.

뒤늦게 뭐하는 짓인지….

그래도 해 놓고 나니 뿌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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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패션의 거리 입구. 전면 LED 패널.
거듭 설명했던 대로, 공적인 메시지와 사적인 광고가 번갈아 채워지는 거대한 전광판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사업대지에서 목격하게 되는 수 많은 현수막들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유가 되었다. 디지털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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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거리로 통하는 대문인 동시에, 마리오 아울렛이라는 사적 재산의 일부를 가리는 장애물이기 때문에, 점유하는 시간을 나누며 공적 필요와 사적 욕구가 하나의 장치를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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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전 포스팅에서 설명했던 내용인데, 배후의 특정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대한 홍보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찌라시 뿌리기”라는 행위를 미디어와 건축으로 응용한 것이라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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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의 “퍼블릭 룸” 들 중에서 유일하게 거리와 평행하게 배열된 RM2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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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럭으로 만들어진 “뜬 벽”에 미디어 아트가 투영된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보았던 상황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미디어 아트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구현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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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럭과 붉은 벽돌 등, 사업대지에서 목격되는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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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서 발견되는 공장의 건축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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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과 박공지붕과 가로 띠 창…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이 요소들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이벤트가 벌어질만한,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일부 영역에만 지붕을 설치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영역이 한정되면 이벤트의 의미와 힘이 한결 부각될 것이다. 

사업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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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 시스템의 일부로써, 그리고 각종 조명이나 미디어 아트 프로젝터 따위를 설치하는 포스트로써,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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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뜬 벽”을 지탱하는 구조 기둥과 굴뚝에 연결된 케이블에 의해 지탱된다.
물론 이렇게 가뿐하고 간단하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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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로띠창”은 이벤트를 설명하는 전광판이 된다.
예를 들어, 야외에 매대를 늘어놓고 의류를 세일한다는 등의 이벤트가 펼쳐질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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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벽은 공간의 분위기를 쉽게 바꿀 수 있게 한다.
공간을 규정하는 가장 단순하고 힘 있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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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굴뚝, 가로띠창, 그리고 뜬 벽.
이벤트를 지원하는 아주 간단한 건축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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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벽은 대지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어지는데, 바깥면은 반투명한 캔버스로 마감되어 통일감을 준다. 바깥이 단순하게 통일되면, 안쪽의 다양함이 더더욱 부각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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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지에서 발견되는 현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잡지나 웹의 근사한 이미지에서 쇼핑하듯 골라내어 뚝딱 줏어온 것이 아닌,

대지에서 읽어낸 현상에서 일구어내는 디자인.

디자이너 개인의 사사롭고 엉뚱한 욕심에서 비롯된 해프닝같은 작품이 아닌,

“깊은 풍경”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

동감프로젝트/재료와이벤트_1.7

뜬 벽으로 규정되는 각각의 “방” (PUBLIC ROOM) 의 전개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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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아울렛 사거리에 접한 첫번째 “방”…
뜬 벽면 전체에 LED SCREEN 적용.
배후의 거리 전체를 위한 홍보 및 위치 알림, 광고판 등의 역할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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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방” 중 유일하게 차로와 평행한 방향으로 긴 방이다. 

마리오아울렛 사거리 방면으로부터 유입된 유동인구의 흐름을 가속화하기 위한 “멀티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흐름과 평행한 방향으로 좁고 긴 공간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어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공연이나 패션쇼, 영화상영 등의 이벤트는 지양되며,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천천히 걸어가면서도 컨텐츠 전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갤러리 형식의 미디어 상영 공간이 된다.

컨텐츠는 순수예술에서부터 공공캠페인, 상업 광고 등, 다양할 수 있겠다.

흰색으로 도장된 콘크리트 블럭 벽체는 인근 공장의 분위기에서 차용된 것인데, “멀티미디어 쇼”를 위한 캔버스/배경이 된다. “쇼”가 펼쳐지기 애매한 한낮에는 다소 황량하고 지루한 모습일 수도 있겠는데, 그 극복을 위해 간단하고 깔끔한 그래피티가 그려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지상에서 떠올라 있기 때문에 깨끗한 유지보수가 가능할 것임.) 그래피티와 “쇼”가 겹쳐지면서 생기는 의외의 효과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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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점토 벽돌에 담쟁이 덩굴. 
(물론 붉은 점토 벽돌은 인근 옛 공장건물에서 사용된 사례를 참조한 것이다.) (클릭!)

RM_02 와 RM_03 사이의 잠깐의 완충공간(BUFFER)이자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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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의 흐름과 수직된 방향으로 깊숙하게 위치한 좁고 긴 형상이기 때문에, 보행과 차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도 긴 시간동안 지속되는 각종 이벤트들을 무난하게 담아낼 수 공간.

패션쇼와 콘서트, 벼룩시장 등의 이벤트가 벌어진다.

콘크리트 블록 벽체 위에 새겨진 스텐실은 현재 대지에서 발견한 현상 (클릭!) 에서 참조한 것이다. 앞서 RM_02 에서 언급한 그래피티와 마찬가지로, 벽이 떠있기 때문에 스텐실 또한 원하는 이벤트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정제된 형태로 깔끔하게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부여된 공간의 범위를 벽체에 스텐실로 표현하여 지정하는 식으로 벼룩시장이라는 이벤트를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보았다. 나중에 간단한 개념 투시도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도장된 벽돌이나 콘크리트 블럭 등은 인근 공장의 재료에서 참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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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_04 와 RM_05 사이에 위치하여, 두 방의 이벤트가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완충역할을 하는 작은 “방”. 다소 활기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인 옆의 방들과는 다르게 정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인근 공장 건물에서 참조된 콘크리트벽면에 약간의 덩굴이 얹혀진다. 일부 벽면에는 예술작품이 인쇄, 혹은 그려진 패브릭 캔버스가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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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장 넓은 방.
가장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고, 가장 다양한 활동(집회, 영화상영, 전시 등)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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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_06 과 RM_08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도록 설정된 작은 방. RM_3, RM_5 등, 비슷한 성격의 방이 이미 있지만, 그들과 조금 다른 재료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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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_04 와 같은 유형의 방이다.
담겨지는 이벤트의 종류를 다르게 함으로써 차별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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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_07, RM_05, RM_03 과 같은 유형의 방인데, 재료와 구법의, 벽 높이의 변화에 의한 공간감의 차이 등으로 차별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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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패션몰 사거리에 접한, 거리 전체의 입구이자 얼굴 역할을 하는 방으로, 사실상 RM_01 과 같은 유형,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RM_01 과 RM_10 의 기능 중 흥미로운 것은, 내부의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의 구체적인 내용과 위치를 전달함으로써, 그 이벤트들을 좀 더 활성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RM_06 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또는 “RM_08 에서 잠시 후 7시 부터 영화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등등의 메시지 표현, 전달.) 멀티미디어를 통해 공간 배열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례가 되리라 믿는다.

이 것은 상업광고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앞서 보았듯, 주변의 건물을 가리고 있는 “뜬 벽” 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완충”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공백으로 비워진 벽면들도 있다. (담쟁이 넝굴 따위로…) 그런 벽면으로 가리워진 건물이나 상가는, 물리적인 위치 상으로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다른 “미디어 벽면”을 광고의 수단으로 할당받게 될 것이다. 위치상으로 불이익을 받는 만큼, 좀 더 큰 공간을 할당받는다던지, 좀 더 효과적인 노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던지 하는 식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겠다.

현재 대지에서 성행하고 있는 전단(찌라시)돌리기의 “디지털 멀티미디어 버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만약 현실화 된다면, “디지털 멀티미디어 버전 찌라시 돌리기”가 “오리지널 아나로그 찌라시 돌리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 아니면 두 가지 양태가 공존하게 될 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롭겠다.



건축이 무엇인가를 담기 위한 그릇이라면, 그릇에 담겨질 내용의 디자인이 그릇 디자인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형의 해프닝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무리가 뒤따르게 마련이며, 본질적으로는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철저한 분석과 자유분방한 상상을 통해 할 수 있는데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특히 공공의 거리를 디자인하는 이런 프로젝트에서는 더더욱.

이 제안을 더 발전시킬 기회를 갖게 된다면, 재료와 구법에 대해 한층 더 구체적으로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 대지 현황에 대한 좀 더 깊은 분석을 통해 담겨질 이벤트들의 성격과 적용될 재료 조합을 좀 더 정교하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휴지통, 벤치, 가로등, 신호등, 가판대 등의 스트릿 퍼니쳐들이 뜬 벽 및 뜬 벽을 지지하는 기둥에 어떤 식으로 통합되어 거리의 풍경 속에 “종합” 될 수 있을지 탐구하도록 하자.

그리고, 개념적으로 작성된 몇 개의 투시도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거리의 분위기를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 (포토리얼한 투시도는 하라고 해도 못 함.)



혹시 여유가 된다면, 서울특별시의 “관광특구” 지정의 의미와 정확한 의도, 그리고 기존 “관광특구” 사례들에 대한 분석 등을 해 볼 생각이다. 이 분석을 통해 주어진 사업비를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거리를 “헤집어놓을” 수 있을지, 이 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요란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