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천수각이 보였습니다.
몇십년 전, 원인 불명의 화재로 홀라당 다 타버린 것을 콘크리트로 재현한 것이 지금 보이는 천수각이라고 합니다. 재료와 공법이 바뀌긴 했지만, 크기나 모양은 예전 원작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콘크리트로 다시 지으면서 내부를 전시관으로 꾸미고 맨 꼭대기 층은 전망대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꼭대기 전망대를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다시 고치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무튼, 가슴 두근거리게 할 만큼 멋진 모습입니다.
늘씬하고 위엄 넘치는 모습이 나가토나 야마토 같은, 2차대전때의 일본군 전함의 함교를 연상케 합니다.
급한 마음에 앞으로 달려가면 석축 너머로 몸을 슬쩍 숨깁니다.
천수각을 향해 올라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석축 사이를 헤집고 통과해야 합니다.
전에 말한 것 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고 군사적인 이유로 조성된 작은 미로인데,
지금은 마치 “공간체험장치”처럼 느껴지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보았던 망루는 어느새 바로 근처에 서 있었고…
석축 사이 공간으로 풍덩 뛰어들어갑니다.
지금은 석축만 보이지만, 원래는 저 석축들 위에 바깥에서 보았던, 총구가 달린 나무 누각들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조용하게 거니는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전투가 한창이었을 때에는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아수라장의 한복판이었을 공간입니다.
구석으로 가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 너머로 또 다른 석축이 나타납니다.
문득 뒤돌아 보니 아까 보았던 망루가 여전히 나를 째려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