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책네권

예능프로그램과 스타리그와 온갖 홈쇼핑방송들에 푹 빠져 눈의 초점이 풀린 채 정처없이 끝없이 함몰되어가는 와중에도, 그래도 가끔은 책을 읽으려 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에 나름 힘껏 싸지른 후, 다소의 무기력에 빠져있는지라, 더더욱.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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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 겐고“의 “약한건축

작년 늦은 봄에, 안개님 추천으로 읽은 책인데,
건축가 “쿠마 겐고”라는 사람에 대한 재발견의 측면에서 오히려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책.
그냥 건축 잘 하는 유명한 일본건축가들 중 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솜씨 좋은 외골수 장인이라기 보다는, 넓게 멀리 보는 안목과 두터운 인문적 배경이 균형있게 갖추어진 엄청난 내공의 교양인이었다.

현실에 대한 불평을, 누구나 뻔히 느끼고 있는 식상한 불만을,
막연하게, 피상적으로 토로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또 널렸다.

작은 아뜰리에 건축가들은 대형 프로젝트를 잡을 기회가 없다느니,
좋은 프로젝트는 유명한 스타 건축가들이 다 해 먹는다느니,
자본의 논리에 건축과 도시는 병들어간다느니,
혹은, 턴키때문에 망해간다느니.

하지만, 그런 현상이 어떤 배경에 의해 일어나기 시작했는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

쉽고 무책임한 불만을 멈추고
현상 너머의 배경을 깊게 꿰뚫어 바라보는 사람은 참 만나기 힘들다.
그 사람이 바로 “쿠마 겐고”

읽은지 제법 오래 되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한참 읽다가 문득, “아, 이 사람처럼 늙어가고 싶구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실무에 질식하지 않고, 지적 균형을 잃지 않고, 늘 깨어있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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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연말에 읽은 책.

나는 촌스럽게도 “안도 다다오”를 여전히 사랑한다.
예전엔 그의 건물들을 사랑했는데,
지금은 그의 글을 더 사랑한다.

그의 글이 그의 건물을, 그의 삶을 꼭 닮아있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니 삶이니 성공이니 다 떠나서,

내 글은 안도 다다오의 글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거기에 소설가 김훈 조금 추가…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괜시리 눈물이 나려고 한다. 부러움의 눈물이다. 부끄러움의 눈물이다. 후회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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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건축을 묻다” -예술, 건축을 의심하고 건축, 예술을 의심하다-

권위를 벗어버린, 하지만 학문적 정교함과 품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역작.

건축에 관련된 해묵은 의문과 편견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어가며 시작된 느슨한 산책은,

“건축은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재조직하는 작업이다.”라는,

어디에선가 몇차례인가 들어보았음직한, 흔한 이 한 문장을 찾아내기 위해

길고 복잡한 건축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의외로 스케일이 큰 벅찬 장정(長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유, 이런 책이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건축의 역사는 진작에 이런 식으로 조망되었어야 했다.

모르겠다. 놀라운 책이다. 서현교수님은 대한민국 건축계의 자랑이다.

존경을 아끼고 싶지 않은 자랑스러운 교수님이다.

정말 오랜만에 나름 빡세게 머리 굴려가며 읽었다.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챕터에서 챕터로 넘어가는 내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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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내 글이나 생각에서 “알랭 드 보통”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누노군이 했었는데,
몇 주 전, 내 책을 읽은 회사 상무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 그래서 사서 읽었다.

건축을 바라보는 정서는 나와 비슷한 구석이 조금 있어 보이는데, 다만, 한 켜 더 깊이 들어가서, 좀 더 보편에 연결될 개연성이 높은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나는 당장의 느낌에 대한 묘사에 장황하다면, 이 사람은 그 느낌의 뿌리에 대해 좀 더 넓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훨씬 예리한거지. 아예 “체급”이 다른거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내 입장에서야 비교해 주시는 것 만으로 감지덕지이긴 하다.

프랑스 사람이어서 그런지, 번역서라서 그런지, 문장은 내 취향과 거리가 있었고, 그래서 편한 책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딱히 번역이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문학적인 기교가 좀 들어가있는 문체라서 그러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공감이 가고, 가끔은 깜짝 놀랄 통찰도 보였지만,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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