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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레스 스틸 “핀”이 가지런하게 무한 반복되는 단순한 구성인데, 시점에 따라서, 그리고, 나중에 보시겠지만 시각에 따라서, 자못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입면과 오른쪽에 보이는 건너편 입면 표정이 많이 달라 보이죠.

왼쪽에 “1” 이라고 써 있는 정사각 표지판이 보이는데, 출입구 번호판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을 오고가면서 번호가 매겨집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왼쪽에는 1,3,5,7… 하는 식으로 홀수 번호 문들이, 오른쪽에는 짝수 번호 문들이 있는 것인데, 호섭이의 말로는 파리시에서 주소를 메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추상적인 번호로 문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모던”해 보입니다. 차갑고 강렬한 공간의 카리스마와도 잘 부합하는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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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커튼월에는 2번문, 그리고 (작아서 잘 안 보이지만) 4번문… 뭐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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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방향 멀리온 (앞서 보았던 “핀”이 붙어있는) 들이 등간격으로 늘어서 있는데, 이 간격이랑 “랜드스케이프”를 떠받들고 있는 자잘한 “보” 의 간격이 맞추어져 잇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바닥 돌 패턴 세 개 줄이 합해져서 멀리온 하나 간격과 맞추어져 있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등간격으로 딱딱하게 맞추어진 세로 간격에 비해서, 커튼월의 가로 간격은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이런 연출이 또한 바깥에서 보이는 밸리 입면의 표정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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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 진입하는 바닥은 비탈길인데, 비탈길의 “참”에는 양 옆 커튼월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왼쪽에 문 경첩이 보이는데요.) 참과 비탈길이 접하는 돌 한 판은 살짝 더 가파르게 깔려있었습니다. 제가 단면을 그릴 때에는 저 곳에만 한 단의 계단을 두었었는데, dd 단계 이후에 단 없이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계획을 바꾸었나 봅니다. 뒤늦게 바꾼 흔적이 돌 한판 만 조금 가파른 식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밸리”의 재료도, 애초에는 여러가지가 검토되었었는데요. 미테랑 도서관이나 요코하마 오오산바시 터미널처럼 “이뻬” 로 깔아버리는 대안도 있었고, 오래된 유럽 도시의 길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블스톤” 으로 깔아버리는 대안도 있었고요.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결국은 두툼한 화강석으로 결정되었는데, 아주 잘 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지역성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밸리 입면의 회색 색조와도 잘 어울려 보입니다. 질감은 많이 다르지만 색조가 엇비슷해서 단순한 공간의 힘을 증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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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힘이 느껴집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구요.
용기, 대담함, 결단력, 의지…..

저 길을 통해 매일 등하교를 하는 학생 하나하나의 가슴에 이런 “장소의 메시지” 가 심겨질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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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구성이지만 몇 가지의 요소들로 인해 적잖게 현란한 효과가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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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나뉨에 맞추어 핀과 핀을 결속하는 얇은 가로부재가 연결되어 있는데, 유리표면과 살짝 떨어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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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과 핀을 연결하는 볼트들이 과감하게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런 자글자글한 요소들도 입면의 표정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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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볼트의 개수는 핀의 너비에 따라 변하고 있었고요….
핀의 표면이 “미러” (거울) 처리되어 있었는데, 평활도가 많이 떨어져서 우글거리는 모습이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만, 호섭이 부인 (제수씨) 말로는, 목업을 보면서 로컬업체에서는 다시 해야겠다고 한데 비해, 페로측에서는 오히려 이 편을 훨씬 더 흡족해 했다고 합니다.

그 말 듣고 다시 보니 이렇게 우글거리는 것이 더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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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월을 수직방향으로, 정면에서 보면 앞서 언급했던 핀들의 가로방향 결속부재라던지, 핀의 세로 방향 연결 볼트들로 인한 효과가 도드라 보이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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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비스듬하게 보아도 그런 효과들이 아주 잘 보입니다.
완전 현대적인 랜덤패턴인데, 그냥 무늬만 패턴이 아니라 실제 구조 요소로 이루어진 “깊은” 패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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