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비아둑에서만났던할아버지

기억과 감흥이 더 이상 “휘발”되기 전에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이런 글은 특히 제 자신을 위한 기록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긴 모든 블로그의 글들이 그러하겠지만.

(이런 글은 더 미루면 올리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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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리옹역 부근에 “비아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파리 도착 직후 일부러 가이드 북 없이 막무가내로 헤메고 다디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요. 보시다시피 예전에는 고가철로로 사용되었던 시설인데, 지금은 그 고가다리의 단위아치마다 공예, 예술 관련 가게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재생”의 아주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저 아치 모양이 무슨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의 입면처럼 그냥 겉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가게 하나하나의 단위공간을 이루고 있는 진짜 아치라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가게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문을 지탱하는 나무와 철로 이루어진 구조물의 디테일이 인상적이었구요, 가게 하나하나의 “컬렉션”들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아둑”의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비아둑에서 우연히 만났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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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잃고 가게 하나하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켄터키 할아버지처럼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빙그레 웃으면서 저를 바라보고 계시더라구요. 건축관련종사자는 아니지만, 건축에 조예가 깊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게전면의 구조물 디테일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에 관심이 갔었나 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브라질리안인데, 프랑스에어라인의 기술스텝으로 파리 근교 디즈니랜드 근처에 살고 있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파리 구경을 한다고 합니다. 건축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저처럼 이런저런 건물을 구경하는 것을 아주 즐기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아키텍”이라고 하니까 너무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함께 비아둑의 창호디테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구요. 여러 모양과 재질의 부재들이 이루어내는 긴장과 균형. 그리고 그러한 힘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건물을 짓는 마음가짐에 대한 장시간에 걸친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건축가 자신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마음에서 좋은 디자인, 좋은 건축이 나온다나.

학교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류의 말씀을 들었다면 코웃음을 치고 넘어갔겠지만, “일반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예사롭지 않게 들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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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메일과 전화번호, 이름 등을 교환하고…
꼭 연락하고 집으로 찾아오라고 그랬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습니다.
연락처를 적은 쪽지는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지금쯤 불쑥 연락해 볼까나….
마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였는데.

…………………..

유럽에서의 체류가 두달여가 넘어가는데요.
생각보다 건축에 조예가 깊고 애정이 깊은 “일반인”들이 많더라구요.
라뚜렛에서는 르 코르뷔제 작품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취미라는 어떤 스페니쉬 부부를 만나기도 했었고요.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전문가”로써 더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저를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솔직히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구요. 붙임성이 많은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에 탁월한 편은 더더욱 아니구요. 그런데 낯선 곳으로 여행에 나서게 되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 걸고 길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것이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구요. 순진한 마음에 외국인이랑 이야기 해 보았다… 라는 것이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아.. 생각해보니, 깊은 관계에 서툴고 얕은 관계를 즐긴다.. 라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익숙치 않다”라는 점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것에 일단 호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것이 생활이 되면 그러한 “반사적인 호감”도 없어지겠죠.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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