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로의집/09

전시실 깎두기 덩어리들을 바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개념적으로는 ‘깍두기’의 한 면만 흙벽으로 마감되어야 하는데, 재료의 한계 때문인지 옆의 벽면으로 살짝 말아 들어간 모습이 보입니다. 말아 들어간 약간의 폭이 벽의 두께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선홈통이 눈에 띄는데, 저 정도의 요소를 많이 거슬린다고 생각하여 옹벽에 매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경우는, 선 홈통을 드러내되, 두 개를 나란히 두어서 거꾸로 적극적인 의장요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보았던, 급배기구가 두 개 나란히 놓아둔 상황과도 비슷) 단순한 원통으로 처리해서 그나마 괜찮아 보입니다. 이 경우에는, 넓은 벽면에 별다른 줄눈이나 의장요소가 없는 상황이라, 크게 거슬리게 보이진 않는 듯 합니다.

비스듬하게 멀리서 보면, 선홈통이 제법 훌륭한 의장요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흙벽과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맞닿는 모서리 언저리가 좀 더 짜임새 있어 보입니다.

드레인과 선홈통이 만나는 부분에 커다란 상자를 두지 않고, 원통 모양이 충실히 드러나게 하는 상황입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흙벽 상부에 후레싱을 두면서 살짝 (10센티미터 정도?) 차양을 둔 모습입니다. 모든 깍두기가 아닌, 이 깍두기 하나만 이렇게 되어있었는데요. 사진 찍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관찰해 보니, 이 깍두기만 지붕의 경사가 흙벽 방면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거에요. 빗물이 넘쳐 흐르면서 흙벽면을 타고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 개의 깍두기 중, 오른쪽 하나만 ‘차양’이 있어서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이 보입니다. 중간 깍두기랑 왼쪽 깍두기는 지붕의 경사가 흙벽 반대편으로 낮아지고 있거든요.

흙벽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재료인 것 같습니다. 색이나 질감이 자연스러워서 어색하게 튀지도 않고요. 다만, 앞선 포스팅에서 아크릴 코너가드를 둔 것을 보았듯, 모서리 부분이 깨지기 쉽다든지, 손에 흙 가루가 묻어 나온다든지 하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무튼 또 흥미로운 점은, 조금씩 누르고 다져가면서 쌓아간다는, 구축의 과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수평의 층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오래된 지층의 단면을 연상케하는 패턴이 보입니다.

 

흙벽의 수평 패턴의 폭이 노출콘크리트에서 드러나는 나무널쪽의 폭과 대충 비슷해 보이는 것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이 것도 수평으로 방향을 맞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흙벽, 노출콘크리트, 그리고 아연도 강판. 궁합이 잘 맞는 재료의 조합입니다.

풍경에 스며들어간 모습.


3줄요약

1. 작년 초, 마음 먹고 조성용 선생님이 설계하신 ‘이응로의 집’ 에 구경갔었는데요.

2. 논리가 명쾌한 건물이라 이해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3. 곳곳에 이런 미술관이 많이 들어섰으면 좋겠습니다.

 

2 Comments

    1. 네….. 장소와 기능과 이미지가 잘 어우러진 좋은 건물이었습니다…^^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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