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체르베니카멘/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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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벽돌로 꿈틀거리는, 두툼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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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가니, 복도로 연결된 몇 개의 방이 나왔습니다. 그 중 하나, 우물이 있는 방의 모습인데,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촬영되었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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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포위되어 고립될 때에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끔, 우물을 팠다고 하네요.

정면에 보이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뚫려있는 작은 구멍들은, 과거 우물 위로 어떤 구조체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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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바깥으로 통하는 천창도 있었고, 뚫렸다가 막힌 것처럼 보이는, 여러 종류의 구멍들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사연이나 기능이 읽히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오히려 소통이 되지 않기에 신비감이 배가 되는 듯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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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벽에는 드문드문 작은 턱이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촛불이나 램프 등을 올려놓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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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 올린 두툼한 벽에는 신비로움이 저절로 깃드는 것 같습니다. 벽을 이루는 여러 종류의 낱낱의 층들이 시간과 맞서다가 부분적으로 벗겨져서 속에 품고 있던 온갖 이야기들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창문이나 문의 윤곽에서 나타나는 두툼한 단면을 통해서 나를 지켜주는 혹은, 나를 구속하는 벽이라는 건축적 장치에 관련된, 감성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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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께로 인해서, 벽에 뚫린 구멍이 그냥 평면상의 구멍이 아닌 입체적인 공간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에 자리잡아서, 내부공간도 외부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이라 부를만한 상황인데요. 부피를 가진 공간이다 보니 안에 빛이 담겨서 마치 커다란 조명등처럼 연출되는 효과가 생기기도 하고, 아무래도 공간이다 보니, 공간의 윤곽이나 방향에 따라서 빛의 방향이나 결을 의도한 대로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안팎으로 통하는 풍경(시선)의 방향이나 양 또한 통제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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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두고 싶은 스케일의, 견고하게 짜인 방. 을 뒤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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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내려왔던 계단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다른 결의 빛으로 채워진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방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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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나 성당도 아니고, 궁전도 아니고 그냥 창고였으니까, 지으면서 공간의 스케일이나 형상을 통해 특별한 감흥을 연출하려는 의도는 별로 없었겠습니다. 요구되는 체적을 당시 가능했던 기술을 동원해서 다른 생각 없이 구현했을 뿐이었을 텐데, 공간 안에, 방 안에 마치 어떤 영혼이 깃들여있는 듯 느껴지더라고요. 재료와 빛의 힘 덕분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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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보이는 문을 통해, 창문의 상대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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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진에서 위에서 말한 내용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나네요.

안과 밖의 경계에 자리잡은, 안도 밖도 아닌 또 다른 공간.

커다란 등의 갓처럼, 빛을 품은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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