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준/바람의조형 현장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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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타미 준 / 바람의 조형’ 전시회. 홍대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현장수업 다녀왔어요.

벚꽃 아래서 기념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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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없어하진 않을까, 시간이 남아서 뻘쭘하면 어떻게 하나, 나름 걱정을 했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뿌듯했습니다. 관람 후 소감을 나누었는데, 수준 이상의 감상평을 이야기해서 놀라기도 했구요.

설명글, 도면, 모형, 동영상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시작하는 입장에서의 두근거림과 앞으로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이 많이 부러웠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비해 지금의 내 모습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잃어버린 과거의 내 모습을 학생들에게서 발견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게다가 이타미준의 스타일 자체가 저로서는 과거를 회상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서글펐습니다.

전시회 내용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두 번째 관람이었는데 그리 지루하지 않았어요.

정리하는 차원에서, 몇 주 전, 처음 관람했었을 때 페이스북에 남겼던 소감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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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준 전시회 많이 좋았다.

확실히 초기작에서는 다케야마 세이나 스즈키 료지 같은, 당시 또래(?) 일본 건축가들과 공통된 스타일이나 건축관이 많이 느껴졌다. 부유하듯 팽창하는 도시 속에서 땅 속 깊이 각인되듯 건물 하나를 새겨 넣겠다는 식의 태도. 강인한 벽. 좁고 어둡고 밀도 높은 공간. 진짜 재료의 사용 등등. 같은 지역, 같은 시대 건축가로서, 세상을 향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슷하게 대응했다고 이해할 일이겠다. 그 후 줄곧, 회화를 비롯한 순수미술을 통해 꾸준히 단련하면서 관점이나 태도를 다듬고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후기작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한국성’이 나로서는 물씬 느껴지진 않았고. 다만 스타일이나 재료 사용에서 한결 유연해 진 듯한 모습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기저에 깔린 태도와 관점은 시작하면서부터 끝내실 때 까지,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결과는, 묵직하게 고집스러우면서도 유연하고 여유로운 태도가 묻어 나오는 듯한 모습.

제주의 비오토피아(?) 박물관 연작을 다룬 동영상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벌레, 꼬마아이, 할아버지. 다양한 주체들이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공간을 어떻게 물들여서 어떤 공명을 이끌어내는지를, 그리고, 빛이나 소리, 물기 같은 다양한 현상들이 어떻게 공간을 스쳐 지나가며 채우는지를. 서두르지 않고 담담이, 그리고 샅샅이. 세련되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 동영상만으로 배가 많이 불렀다.
감각에 집중하는 태도라든지, 감각의 정수를 낱낱이 분리해서 각각의 건축에 나누어 담고, 그 것들을 모아서 컴플렉스를 만든다든지 하는 발상은, 사실은 아주 새롭거나 참신한 것은 아니다. 바람 박물관은 안도가 설계한 바람의 교회가, 물 박물관은 역시 안도가 설계한 나오시마의 호텔이 반사적으로 연상되었다. 심지어는 이소자키의 작품에도 비슷한 발상의 작업이 있다. 태도나 관점, 그리고 그 것을 담아내는 형식에서, 기발하도록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했다기 보다는, 부단히 갈고 닦아서 내놓았다. 는 편에 가까운 것 같다.

안도다다오를 훌쩍 뛰어넘는 점이 있다면, 앞서 말한, ‘묵직하게 고집스러우면서도 유연하고 여유로웠다.’ 는 측면인 것 같다. 재료나 디테일, 그리고 건물 곳곳에 놓인 의외의 소품에서 그렇게 느꼈다. 이 점에서는 이타미준이 안도다다오보다 훨씬 더 ‘진품스럽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후기작에서는.

나 따위가 이러쿵 저러쿵 함부로 말을 한다는게,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름 정리해 두고 싶어서. 주절주절 끄적거려보았다.

아! 그리고. 정교하게 단련된 마음과 근육의 피로가 느껴지는, 회화와 도면의 중간 쯤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그림들. 그리고, 오랫동안 공들여서 손으로 깎고 붙인 모형들이 많이 반갑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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