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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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게 휘감기는 면으로 연출된 난간과, 엄청난 길이로 뻗어 나온 캔틸레버 건물 본체 사이. 주변의 낯익은 건물들이 낯선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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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한 알루미늄 패널 마감의 건물본체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노출콘크리트 덩어리는 충분히 현란한 조형입니다. 하지만 표면이 매끄럽고 색깔이 차분해서 디디피는 오히려 조용히 배경으로 후퇴하고, 사이로 보이는 길 건너 거대 쇼핑 건물들이 마치 주인공처럼 도드라지는 모습입니다. 맥락에 대한 아무런 존중 없이 일방적으로 들어선 조형이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현실에 대해서 배경, 혹은 액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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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캠퍼스센터(eccp) 효과와 비슷합니다. 워낙 이질적이기 때문에 배경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일상에 대한, 서울의 풍경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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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해 마련된 역사유적의 흔적과 맥락 없이 둥실 떠오른 거대한 금속 덩어리. 그 사이로 보이는 거대 쇼핑몰 건물들. 간단한 구도 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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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님의 안내를 따라 이 곳으로부터 건물 내부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입구가 워낙 많다 보니 입구마다 번호를 붙여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번호 간판이 아쉽습니다.

알루미늄 패널 마감 부분의 입구 간판들은 매끄러운 조형감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해서 마치 피부 위의 문신처럼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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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이정표나 안내문들도 마찬가지였구요. 디자인 의도와 그 의도를 구현하는 완성도가 충분히 공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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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노출콘크리트 부분의 간판은 아무래도 아쉬운 거죠. 아쉬움을 접어두고, 입구로 들어갑니다. 미끈하게 한 덩어리로 연출된 건물이라, 사람과 직접 만나는 부분의 스케일 감각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 출입구들이 한결같이 사람 몸의 스케일을 크게 뛰어넘지 않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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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또한 이음새 없이 매끄럽게 연출되어 있었습니다. 동굴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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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감각은 계속 이어집니다. 주변의 다른 방이나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서는 복도가 살짝 확장되는데, 복도 높이 가득 꽉 차게 접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키가 의식되는 높이만큼만 살짝 휘어지며 접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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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의 높이 차이로 자연스럽게 공간의 쓰임새가 나뉘어지는 효과도 일어납니다. 천정 높은 부분은 흘러가는 공간이고, 천정 낮은 부분은 움직임이 잠시 멈추는 공간입니다. 표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공간 연출 의도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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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기호들도 매끄러운 표면에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겨냥하는 방향의 끝만 살짝 튀어나온 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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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전 등의 뚜껑들도, 최대한 매끄러운 벽에 스며드는 식으로 디자인되었네요.

그에 비해 비상구 표시 램프나 콘센트 박스가 살짝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조금 아쉬웠고, 옥의 티였습니다. (남이 열심히 잘 해 놓은 건물 보면서 까탈스럽게 따지자니 조금 멋쩍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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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의 공간답게 벽이 기울어져 있는데, 가끔씩 뚫려있는 화장실 출입구에서 드러나는 벽의 단면 윤곽을 통해 구체적인 표정을 가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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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의 끝, 또 다른 출입구 너머로, 그 유명한 ‘이간수문’이 보입니다. 두툼한 창틀 때문에 깔끔하게, 온전히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처마 높이 또한 그렇습니다. 처마 너머 이간수문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끔 높이를 설정할 수는 없었을까요. 주인공이 액자 테두리 안에 깔끔하게 들어오도록 말이죠.

다른 문들을 보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의 스케일에 맞는 크기로 뚫려있는 경우가 많았고요.

외부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길게 찢어진 창문과 함께 문을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유리 창문의 높이는 사람 몸의 스케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널리 트인 외부공간에 면해서 뚫린 문의 경우, 문 자체의 크기는 변함 없지만, 문 언저리부터 표면을 옴폭 들어가게 접은 식으로 연출되기도 했는데요. 기본적으로 정해진 스케일 감각은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서 섬세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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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간수문에 면한 출입문의 경우도, 문 자체의 크기는 복도 높이에 맞춰 그대로 유지한다 하더라도, 바깥의 처마 높이는 다소 높게 가져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문에서 처마 아래 공간으로 이간수문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죠. 아마도 구경하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사정이 있었겠지요.

어쩌면 이렇게 옴폭 후퇴해서 처마 밑 공간을 만든 것 부터가, 이간수문과의 관계를 의식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으로 나와서 문을 보았는데요. 오간수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과 맞닿고 있네요. 앞서 보았던 매끄러운 노출콘크리트가 아닌, 입체 문양이 돋아있는 노출콘크리트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성벽을 의식한 디자인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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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간수문을 통과하면, 여러 가지 시간의 켜가 하나의 풍경에 모여있는, 놀라운 모습이 보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동대문운동장조명탑/거대쇼핑몰/한양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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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감기듯 흘러가는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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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문에서 보았던 알루미늄 패널의 흐름을 닮았습니다. 의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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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게 흘러가던 알루미늄 패널 벽면에서 문득, 퉁명스러운 표정의 문이 보입니다. 투박하게 잘려지는 모습에서 멋 부리는 문이 아닌, 장비 반입 등의 실용적인 요구를 위해 설치된 문이라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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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패널 벽은 알루미늄 타공 패널로 슬쩍 바뀌었다가, 이내 노출콘크리트 벽체가 됩니다. 타공 패널은 바람이 드나드는 급배기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재료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전체 덩어리의 윤곽은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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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올라가는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비로소 이 곳이 ‘공원’이었음을 실감합니다. 날렵하게 마름모꼴로 잘려진 바닥판이 디디피 이미지와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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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뚜껑 또한 마름모꼴인데, 랜덤 패턴의 구멍이 뚫려있네요. 바닥 포장 돌판의 문양과 이어지는 수법임을 이해하겠습니다. 다만 돌판 패턴에 똑 똘어지지 않게 맞추어진 모습은 조금 의외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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