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06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살림터로 통하는 문이 보입니다. 비슷한 스케일과 방식으로 살짝 구겨진 모습이 익숙한 느낌입니다. 워낙 낯선 스타일인 데다가, 공간의 구성이나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의 의미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단서들이 많이 생략된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라 불친절한 인상이 강하지만, 그래도 출입문처럼 사람과 직접 만나는 부분에서는 나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바닥 패턴도 그렇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살펴 보았듯 ‘미래스러운’ 이미지를 의식해서였는지 마름모꼴로 재단된 돌나뉨이 인상적인데요. 기본 마름모 모듈이 가끔씩 분할되기도 하고, 다른 재료로 변주되는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건물의 외관을 지배하고 있는 디자인 방법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정해진 모듈 속에서 스케일이라든지 재료가 변주되어 깔리는 모습인데, 엇비슷한 톤이라 요란해 보이진 않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그 차이가 도드라지게 드러납니다. 발로 느껴지는 질감의 차이도 분명하겠지요. 황량할 수도 있는 공간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연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질감차이를 통해 동선을 유도하거나 공간을 분할하는 등의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살림터로 들어가면,

유명한 ‘콘크리트 육교’가 나옵니다. 자하하디드가 디자인을 훼손하지 말라는 고집을 부렸다는 일화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공간의 이용 방식을 제한한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던 시설이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들어서면서 처음 만났던 거대한 육교와 재료와 스타일을 함께하는, 마치 형제와도 같은 시설입니다. ‘살림터’라는 공간의 개념에 걸맞는 공간 스케일과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적당히 북적거리고 흥청거리는 느낌이 연출되어야 하는 장터의 분위기.

육교 아랫면의 조형도 볼만했는데요. 이 정도 스케일에서 펼쳐지는 이런 식의 스타일이 오히려 정말로 ‘자하’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조체로 적당히 분할되는 면들 중 일부는 상하부 공간이 소통되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투사하는 수법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되었는데, 다만 프로젝터를 설치하는 방식이 조금 아쉽더라구요.

계단을 타고 ‘육교’로 올라갑니다. 계단의 디딤판과 챌판, 그리고 난간이 하나의 몸처럼 짜여진 노출콘크리트 계단과 형강 따위로 조립된 계단은 오르내리면서 겪게 되는 체험의 면에서 아무래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탄탄하게 솟아오른 지형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린 타공판을 통해 바깥의 풍경과 햇볕이 적잖게 들어옵니다. 환한 낮에 겉에서 보기에는 그냥 꽉 막힌 커다란 금속 덩어리같은 인상이었고, 부분적으로 사용된 타공판은 지루함을 덜기 위한 장식일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실내 공간 구성과 잘 맞물려 계획된 면모도 있었네요.

겉에서 보이는 조형을 위한 타공패널과 내외부 공간을 ‘진짜로’ 나누는 유리면 사이에 생기는 애매한 공간에 화분들을 늘어놓았는데요. 이런 장면도 그냥 매끈하고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인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나름 두툼한 경계를 갖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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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포스팅에서 공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띠, 또는 끈이나 틈으로 표현했던 요소가, 살림터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에서는 두툼하게 변주되어 천정의 조명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높이에서 공간을 내려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즐겁고 의미 있는 체험입니다. 아래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공간의 분위기와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하는 기회가 됩니다. 바닥에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동그란 모양의 급배기 그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배경 때문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급배기 그릴 같은 요소가, 살림터처럼 정처없이 뭉실뭉실 꿈틀거리는 공간에서는 본의 아니게 강력한 의장 요소가 됩니다.

다양한 시점을 통해 전시되는 상품들과 벌어지는 상황을 살펴보는 재미.

살림터로 들어서기 전의 전실, 로비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는 앞선 포스팅에서 보았던 것처럼 건축가 디자인의 맞춤형 안내 데스크가 있었는데요. 존재감이 강한 것은 좋은데 다소 과장된 느낌이었습니다. 안내 데스크 가운데에 나뭇줄기 처럼 생긴 기둥을 세우고 모니터를 올려놓았는데, 열심히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진 않더군요.

아무리 열심히 디자인한다고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곧잘 펼쳐지고, 그래서 생각지 않았던 요소들이 추가적으로 붙게 되기 마련인가 봅니다. 임대료를 내고 입주한 업체의 조바심을, 세를 내준 입장에서는 외면하기 힘들었겠지요. 안내데스크가 워낙 강렬하게 디자인되어서인지 평범한 아이템과 함께 늘어선 모습이 필요 이상으로 튀어 보이고 어색해 보이더군요. 도전적인 디자인을 할 수록 치밀하고 주도면밀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한편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공간 구석구석까지 일관되게 ‘비스듬하게’, ‘둥글둥글하게’ 디자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벽면에 영상을 투영하여 안내기호를 대신한 모습은 앞선 포스팅에서 보았습니다만 여전히 인상적이었고요. 투영된 영상의 모서리 윤곽 또한 둥글둥글하게 연출한 모습도 좋아 보였습니다. 집요하게 일관된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물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미끈한 표면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패널 분할 패턴은 몇 번을 보아도 매력적입니다. 등간격의 그리드 패턴이 곡면에 투영되면서 일그러져 만들어진 패턴이라, 패턴의 밀도나 방향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상의 힘의 흐름이랄지, 공간의 흐름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암시된 흐름이 실제 건물 주변을 회유하는 동선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콘크리트 난간 부분은 알루미늄 패널 스킨과 만나기 직전 끊어집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보았던 내용인데요. ( http://jaeminahyo.com/?p=20820 ) 저 정도 벌어진 틈새를 통해 어떤 안전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는지, 간단한 안전 펜스를 둘러놓은 모습이 어색해 보입니다. 공공 시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아니, 갖추어야 할 수 밖에 없는 보수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앞서 표면에 새겨진, 일그러진 그리드 패턴을 통해 가상의 힘의 흐름, 공간의 흐름 따위를 의식하게 된다고 말했었는데, 정말로 그렇습니다. 움직임을 권하는, 산책을 유도하는 조형물이라 말할 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적어도 이제까지 서울에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경쾌함이나 상승감 같은 운동에 관련된 인상을 피상적으로 연출하는 조형물이나 건축물은 더러 있었는지 몰라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직접적으로, 그리고 세련되게, 건물 안팎의 공간감을 일그러뜨리면서까지 운동을 권하는 건축물은 없었습니다.

표면을 균등하게 나누는 그리드에서 비롯된 패널 나뉨 패턴이 공간의 일그러짐에 반응하여, 마치 움직임을 유도하는 ‘화살표’로 작동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하나의 ‘동굴’을 두고 다양한 높이로 연결되는 몇 개의 동선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사람 몸이 닿는 높이까지는 패널 모서리에 안전판이 붙어있었는데, 이런 요소 또한 앞서 보았던 급배기 그릴 처럼 본의 아니게 은근히 눈에 잘 띄는 의장 요소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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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그리드 패턴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발걸음에는 저절로 가속이 붙습니다.

동굴의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풍경은,

요란하고 어지러운 서울의 일상입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산책’과 함께 ‘성찰’을 권하고 있었네요.

계단이 패널과 만나느냐, 콘크리트에 만나느냐에 따라 처리방법이 달라집니다. 워낙 구축의 방식이나 태도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마인드로 디자인된 건물이다 보니, 전통적 방식으로, 익숙한 방식으로 비평할 거리가 궁하고, 그래서 이 정도의 디테일이 참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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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향에서 보니, 계단의 윤곽에 맞추어 패널을 재단하는 방식은 쓸 데 없이 소모적인 일이었겠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벽면과 계단이 간격을 두고 살짝 떨어져 있는 모습을 통해 이렇게 공정이나 구법에 관련된 사연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각적으로 근사해 보이는 것은 물론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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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끝에서, 일그러진 그리드 패턴은 시선을 하늘 방향으로도 이끌어주네요.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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