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2014세계건축대회서울관

지난 4월, 남아프리카의 더반(DURBAN)이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2014 세계건축대회’의 서울관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던 작업입니다. 폭과 너비 6미터, 높이 3.5미터의 한정된 실내 공간 안에 서울이라는 도시와 건축을 전시하는 공간계획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제출물도 간단해서 (A3 세 장) 토막 시간을 아껴서 서둘러 작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질 만한 공간이 우리에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평범해서 세계적으로는 독특하고, 더불어 건축과 기술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의 형식을 찾아, 그대로 재현하면서 응용하는 것으로 디자인의 방향을 잡기로 했습니다.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는 오래된 관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설픈 은유 보다는 과감한 직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기질이 반영된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이하는, 정리해서 제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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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집

전제

일찍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이끌면서,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말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널리 알려진 말과 함께 곱씹어 보다가,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전 세계인이 감동받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풍경을 찾을 수 있겠다.’ 고 믿게 되었다.

고기집

나라마다 대중들의 의해 오랫동안 다듬어져 하나의 스타일로 정리된 고유의 영업형태, 혹은 공간 형식이 있다. 평범한 일상 문화가 반영된,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미국의 다이너(dinner), 프랑스의 브라세리(brasserie), 영국의 펍(pub), 일본의 이자카야(居酒屋)등이 그 예인데, 대한민국은 고기집(gogijip)을 들 수 있다.

큰 소리로 고함치듯 주문한다.

만나면 함께 둘러 앉아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신다.

눈 앞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다.

구워지자 마자 직접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고,

석쇠가 비워지자 마자 직접 생고기를 올려 놓는다.

젓가락과 술잔을 들고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며 먹는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웃고, 많이 떠든다.

평범한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기질과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풍경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익숙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겠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고기집>이라는 공간 또한, 외국인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일 법 하다.

드럼통을 재활용해서 짜맞춘 동그란 테이블.

테이블 가운데마다 놓인 화로.

그리고 그 화로 위에 굵은 뱀처럼 드리워진 흡기구.

흡기구에 연결된, 천정에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된 덕트들.

넉넉하지 않은 현실에서 가능한 조건을 최대한 실용적으로 활용하고,

고유의 생활양식과 취향은 고집스럽게 지키면서,

필요한 기술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고기집> 풍경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현대적 도시/건축의 인프라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서 고유의 생활양식을 소화해내고 있는지를 발견한다. 현대 기술과 오래된 전통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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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 풍경

<고기집>의 공간 양식(style)을 그대로 빌려와서 전시 공간의 틀로 삼는다.

그 양식(style) 속에, 미디어 아트를 집어 넣는다.

천정 높이, <배기구/스크린>이 보인다.

서울의 건축과 도시 이미지들이, 식당에서 고기 구워먹는 풍경과 교차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드럼통을 개조한 테이블과 투박한 의자들이 촘촘히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덕트에서 나온 흡기구가 매달려 있다.

테이블 주변에 놓인 투박한 의자에 앉아 본다.

테이블 가운데에 <화로/터치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오고 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순간, 한국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상호작용 미디어 컨텐츠로 바뀐다.

터치스크린과 함께, 모니터 위에 드리워져 있는 흡기구가 인터페이스 매개체가 된다.

흡기구를 돌리고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컨텐츠를 감상한다.

<화로/터치스크린> 위에 설치된 흡기구는 천정에 설치된 덕트를 통해 계산대 위에 설치된 <배기구/스크린>으로 이어져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보았던 <배기구/스크린>의 영상은,

일곱 개의 <화로/터치스크린>에서 관람객들에 의해 생산된 내용이었다.

<서울관>은 하나의 <연극무대>이자, 그 자체가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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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작품이 많지 않아서 경쟁이 치열하진 않았고, 그래서 은근히 좋은 결과를 기대했습니다만, 결과는 1차 합격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나름 기발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심사위원 입장에서 이런 식의 디자인을 ‘건축의 영역’으로 선뜻 인정하기 어려워하셨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한 인터피스(interface)만 제안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전시내용을 불분명하게 설정된 ‘멀티미디어 컨텐츠’에 의지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인터피스에 의한 멀티미디어 컨텐츠의 작동방식을 다이어그램이나 그림이 아닌 말로만 설명했다는 점도 지금으로서는 아쉽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고민해 볼 만한 또 다른 공부거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전형으로 굳어진 특정 공간 유형에 대한 탐구가 그것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둘러 정리한 내용으로 결과도 좋지 않았지만,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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