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이웃하는마을

지난 2월,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주관하는 설계 공모전,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heritage tomorrow project)에 제출했던 작업을 뒤늦게 정리해서 포스팅합니다. 미니맥스(minimaxarchitects.com)의 민서홍 소장님과 이원재 소장님과의 협업이었고, 깊은풍경에서는 서다은 인턴이 수고해주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나름 자신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었습니다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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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heritage tomorrow project)는 우리 시대의 한옥을 탐구해보자는 취지의 공모전으로, 올해(2014년) 네 번째 열렸습니다. 대지는 서울시 동소문동 일대로, ‘40년대 지어진 ‘도시한옥’과 ‘80년대 지어진 ‘다세대주택’으로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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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선도로 뒤켠, 고만고만하게 들어선 다세대주택들과 근생건물들 사이로 둘러싸인 ‘도시한옥’ 마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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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주택과 도시한옥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접근성이나 도로상황, 부동산 경기 등, 여러 요인들의 조합을 통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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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지기에서 제공한 공모지침과 논문, 연구서, 토론 녹취록 등을 토대로 나름 고민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흔히 ‘한옥’이라고 부르는 건물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특정 재료나 스타일의 집이 아닌, ‘지금의 한국’이라는 현실적인 조건 아래에서 평균적인 삶을 담아내는 보편적인 집의 형식을 한옥이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지의 남쪽 반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한옥’ 뿐 아니라, 북쪽 반을 차지하고 있는 ‘다세대주택’ 또한 ‘한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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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도시한옥’은, 기존 한옥의 구법이나 재료, 그리고 마당이나 문간방 같은 공간구성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필지 조성에 맞추어 차곡차곡 배열될 수 있게끔 변형된 형식입니다. 이른바 ‘수평 고밀도’에 적응한 결과인데요. 한동안 널리 지어지다가, ‘수직 고밀도’라는 당연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80년대에 등장한 ‘다세대주택’에 보편적인 주거 양식의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다세대주택’은 효율적인 수직동선 덕분에 작게 나뉘어진 필지의 스케일감각을 유지하면서 일정부분 고밀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음이나 그늘, 냄새 등, 주거환경이 별로 좋지 않다든지, 평면이 핵가족의 형식에 맞추어 경직되어 있다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기준층 평면 면적이 적어서 코아(계단) 면적 대비 활용면적이 좁다는 등의 단점이 있습니다.

‘도시한옥’을 마당을 둘러싸는 채의 조직 방식과 스케일감을 유지하면서 ‘성글게’ 수직으로 쌓되, 수직동선을 배후의 ‘다세대주택’으로부터 빌어온다면, 각각의 유형이 갖는 장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괴리감이나 위화감 없이 주변 도시조직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밀도를 성취하면서 기존 도시조직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개발방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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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늘어서있는 도시한옥의 얼굴과 채와 마당의 조직형식을 유지하면서 성글게 쌓아간다는 아이디어를 표현한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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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스케치를 스케치업으로 간단하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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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의 스터디를 통해 프로그램별로 색깔을 칠하고 지붕을 얹는 등,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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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방식을 다이어그램으로 정리. 1. 기존 상황. 도시한옥과 다세대 주택의 공존. 2. 도시한옥에서 채의 구성과 마당의 배열에서 참조 패턴 추출. 그리고 다세대주택의 간격 및 밀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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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세대주택의 수직동선및 설비계통을 통합하여 도시한옥의 ‘뼈대’로 활용. 4. 추출된 패턴에 맞춰 도시한옥 쌓아올리기. 연두색은 커뮤니티 시설로, 다세대주택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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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도시한옥 ‘성글게’ 쌓아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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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도시한옥 블록 저층부. 북측 다세대주택 블록 저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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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글게 쌓인 도시한옥 블록. 녹색과 노랑색이 커뮤니티 시설입니다. 채와 마당의 조직 형식 및 스케일감각과 더불어, 단순한 요소들의 군집에서 느껴지는 감성 또한 도시 한옥에서 지켜가야 할 유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이나 햇볕 등 환경적으로도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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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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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 부분 확대. 채의 스케일감각은 부분적으로나마 북측의 다세대주택 블럭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1층 도시한옥의 경우, 남측의 대문에서 마당을 통하는 진입과 함께, 다세대주택과 공유하는 수직동선으로부터의 진입, 두 경로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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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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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평면 부분 확대. 다세대주택 블럭과 도시한옥블럭이 수직동선을 공유하는 상황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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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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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평면 부분 확대. 다세대 주택과 도시한옥 모두, 1인침실+사무실, 1인침실X2, 2인침실+ 거실 등으로, 유연하게 활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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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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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평면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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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 판넬. 주어진 스케일로 요구된 도면들을 한정된 면적의 판넬에 채운 결과입니다.

투시도+배치도+개념도

판넬 속 배치도. 수직 고밀도를 확보하면서 주변 도시조직과 위화감 없이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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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넬 속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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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 저녁 풍경. 미니맥스 이원재 소장님이 멀리 미국에서 시간 쪼개어 고생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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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넬 속 부분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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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넬 속 부분투시도. 도시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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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넬 속 부분투시도. 다세대주택. ‘채의 감각’이 음각의 공간으로 깎이는 형식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설명글을 덧붙이는 것으로 포스팅을 마치려합니다. 실제로 판넬에 들어간 글은 여기에서 상당부분 더 축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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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typology) : 건물의 유형은 삶의 방식이 기록된 유전자다. 다양한 유전자의 확보가 생존 경쟁력으로 직결되듯, 다양한 건물 유형의 공존이 건강한 도시 조직의 바탕이 된다. 유전자가 개개 세포나 기관이 아닌 ‘정체성에 대한 정보’인 것처럼, 유형은 부품이나 재료가 아닌 ‘형식에 담긴 의미’를 뜻한다.

태도(design mind) : 쓸모 없는 유전자가 없듯, 쓸데 없는 유형도 없다. 당장 시장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유형에서도 경제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유용함을 찾을 수 있다. 대지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형들을 진화의 실마리로 삼는다. ‘도시한옥’과 ‘다세대주택’이 공존하는 지금 대지의 풍경을 ‘고밀화’의 과정이라 이해하되, 정해진 결과를 위해 소멸될 ‘잠정적인 풍경’이 아닌, 꾸준하게 다듬어져야 할 ‘일상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인다. ‘고밀도’와 ‘도시조직의 연속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기존 도시 조직에 위화감 없이 스며드는 상황을 목표로 삼는다.

전략(design strategy) : 합필하여 일괄 개발하되, 합필 전 건물들의 스케일 감각을 유지한다. 개별 개발의 단점을 극복하고, 여러 유형들이 각자의 장점을 살리며 서로 의지하고 이용하는 구도를 만든다.

도시한옥의 우성 유전자 : ‘칸’이 ‘마당’을 끼고 선형으로 배열되는 독특한 공간 구성. 마당을 통한 자연과의 소통. 겹쳐 보이는 지붕의 조형 효과. 저렴한 재료를 익숙한 방식으로 짜맞추는 소박한 태도. 구축적인 어휘와 촉각적인 재료에서 비롯된 친근함.

도시한옥의 열성 유전자 : 단층. 저밀도.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의 마당.

다세대주택의 우성 유전자 : 직통계단과 기준 평면으로 구성되는 공간 및 설비의 수직 확장성. 위압적이지 않은 스케일. 사방으로 열릴 수 있는 개방 가능성.

다세대주택의 열성 유전자 : 코어 면적 대비 기준층 면적의 협소함. 인근 건물로부터의 사생활 침해. 핵가족을 전제로 계획된 공간 구성.

(다이어그램_101) 기존 상황 : 다세대주택과, 도시한옥이 공존하고 있다. 동측면 두 채의 도시한옥은 한옥으로서의 공간 특성이 제거되고 상업시설로 개조되어있다.

(다이어그램_102) 다세대주택 배치 재구성 및 도시한옥 공간모듈 정리 : 기존 다세대주택의 덩어리 감각과 밀도를 유지하면서, 배치를 여유 있게 재조정한다. 상업시설로 개조된 도시한옥들은 다세대주택으로 ‘고밀화’하는 한편, 기존 도시한옥의 ‘칸’과 ‘마당’의 배열에서 정리된 패턴을 도출한다.

(다이어그램_103) 수직동선, 설비계통 재구성 및 도시한옥 수직 확장 : 개별 건물에 흩어져 있던 수직동선과 설비계통을 묶어서 공간효율을 높인다. 정리된 패턴을 근거 삼아 새로운 한옥을 느슨하게 쌓아 올린다. 들어올려진 한옥들은 새롭게 조성된 수직동선과 설비계통을 뼈대로 엮어진다.

(다이어그램_201) 띄워진 지붕과 음(negative)의 지붕 : 지붕은 집의 상징이자 독립된 채의 표현이다. 허공에 띄워져 입체적으로 겹쳐 보이는 지붕들은 기존 한옥 마을 풍경의 이미지를 확장한다. 다세대주택의 1층에는 한옥 지붕의 공간감에서 유추된 ‘음의 지붕’을 만든다. ‘음의 지붕’들은 한옥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친근한 보행자 환경을 조성한다.

(다이어그램_202) 마당과 스크린 : 마당을 한옥 공간감 재현의 근거이자 수직 확장의 참조로 삼는다. 마당의 윤곽을 따라서 반투명의 스크린을 배열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생활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마당의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법규 적용 : 지하철역이 근처에 있거니와, 좁은 골목길에서 다량의 차량 유입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주차 대수는 최소로 계획한다. 도로사선제한 규정을 존중하되, 도시한옥 부분은 입체적으로 형성된 ‘공극’을 통한 채광과 환기 효과를 인정하여, 일정 부분 완화 적용한다.

주거 유닛(unit) : ‘1인 침실+사무실’, ‘1인 침실+1인 침실’, ‘2인 침실+거실’ 등,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는, 유연한 주거 유닛(unit)을 계획한다. 더불어, 공간과 설비를 공유하여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보다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한다.

결론 : ‘도시조직의 연속성’과 ‘고밀도 개발’의 동시 성취. 비약과 단절을 최소화하는 개발방식의 제안. 다양한 유형의 건물 속에서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면서 다양한 삶의 풍경이 풍성하게 펼쳐지는, 도시 속의 작은 도시.

(다이어그램_301) 수직 동선과 설비계통의 공유 : 각각의 건물에 흩어져있던 시스템을 정리해서 모은 결과이다. 공간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느슨하게 쌓아 올려진 한옥들을 효과적으로 묶어준다.

(다이어그램_302) 구조 : 다세대주택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보 구조를, 도시한옥 은 칸의 구분과 가구 구조가 재해석된 철골구조를 적용한다. 코어의 철근콘크리트 전단벽이 두 시스템을 연결,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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