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초록풀작목반

얼마 전에 마무리 지은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입니다.

분당구 분당동, 고만고만한 다세대주택들과 근린생활시설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는데요. 20평 정도 되는 지하실을 임대하고 개조해서 음악연습실로 쓰고 싶다는 것이 의뢰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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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인부 숙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인데, 내부 칸막이벽과 벽지, 천정 등의 마감재를 철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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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나뉘어졌던 공간이 하나의 트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감추어져 있던 보가 드러납니다. 벽에 붙은 기둥이 돌출되어 있고 방습벽이 무릎높이 정도까지만 올라오는 등, 공간의 윤곽이 매끄럽지 않아서 산만해 보이는 점이 일단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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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을 위한 공간 벽체를 두르면서 공간 윤곽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체 영역을 설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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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체영역에는 차음벽 및 흡음벽이 들어서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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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메아리를 없애기 위해서, 음향의 난반사를 유도하는 목재 패턴벽으로 마무리됩니다. 패턴벽과 흡음벽 사이는 수납공간이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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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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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되었던 공간 이미지.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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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성이 강한 핀라이트 조명을 때리면, 난반사 패턴 벽의 ‘알맹이’들이 마치 독립된 픽셀처럼 빛과 그림자를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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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 패턴 벽과 흡음벽 사이가 얕게는 5센티미터, 깊게는 60센티미터까지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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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다양한 크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효과가 생겼습니다. 이런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입니다.

패턴벽의 일부는 ‘감쪽처럼’ 탈착되어 수납공간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됩니다.

공간의 윤곽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활용성을 포기하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음악연습실에는 접이식 의자라든지 까혼 같은 간단한 악기류, 각종 스피커나 앰프 등, 이렇게 ‘느슨하게’ 넣어둘 만한 소품들이 제법 많습니다.

난반사 패널과 흡음벽 사이 5센티미터의 간격 덕분에 패턴과 그림자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그래서 제법 입체적이고 현란한 효과가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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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 패턴 벽은 바구니, 내지는 울림통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음악연습실과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18밀리미터 두께의 미송합판과 30밀리미터 두께의 구조목을 간단하게 결합하여 만든 패턴인데,

패턴의 크기는 와인병을 넉넉하게 세워둘만한 정도의 크기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만,

물론 책이나 음반 등을 꽂아둘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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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추상적인 패턴으로 표현되지만, 사용자(또는 점유자?)와 함께 늙어가면서, 사용자의 생활상이 패턴 알맹이 하나하나마다 스며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트인 공간을 채우는 한가지의 단순한 패턴이지만, 드럼이나 피아노, 롤업 스크린, 그리고 테이블 등의 소품이 놓여지는 위치에 따라서, 다른 표정, 다른 색깔로 스며들어가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드럼 주변에는 드럼 악보라든지, 롤업 스크린 주변의 패턴 벽에는 디브이디라든지, 테이블 근처에는 음료나 종이컵 등의 소품들이 채워지는 식으로 말이지요.

게다가 패턴 알맹이에 이런 소품이 채워질 수록 불필요한 메아리를 막아서 음향 품질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

순수한 예술작품 같은 공간이 아닌, 사용자의 생활로 길들여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모습보다, 일년 뒤 쯤의 풍경이 더욱 기대되는 공간입니다.

 

참고로, ‘초록풀작목반’은 건축주가 지은 음악연습실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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