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디자인메이드2010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디자인메이드는 재활용을 주제로 매해 열리는 디자인전시회입니다. 전시회는 짧은 기간 동안 최대의 강렬한 체험을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됩니다. 잠깐 동안의 강한 효과를 쉽고 빠르게 만들어내려다 보니, 전시 공간 조성 전후로 많은 폐기물이 발생하게 됩니다. 재활용을 주제로 하는 디자인 전시회의 전시 공간 연출 과정에서 재활용될 수 없는 폐기물이 많이 발생한다는 부조리! 폐기물을 가능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시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전시 취지와 전시 공간 디자인의 개념이 일체가 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전시공간은 완성된 작품을 왜곡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전시장의 모든 요소들은 모든 표현이 제거된 백색을 띄는 것이 보통입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오래된 믿음이었습니다. 전시회의 주제가 재활용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받침대와 벽이 추상적인 백색 배경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정보를 넌지시 전달하는 어떤 느슨한 매체가 된다면, 한결 재미있고 풍성한 체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친환경적인 재료가 아니지만, 플라스틱 수납상자는 다양한 용도로 몇번이든 다시 사용될 수 있기에, 전시가 끝난 후에도 곧바로 폐기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작품이 얹혀지는 받침대와 전시공간을 분할하는 벽을, 속이 훤히 보이는 플라스틱 수납 상자를 쌓아서 만들면 어떨까요? 작업중인 작가들에게 수납상자를 보내고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게 해봅시다. 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들이 수납상자에 쌓일 것입니다. 그렇게 채워진 수납상자로 벽과 받침대를 만든다면, 과정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입니다.

리사이클(recycle)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전시공간이 아닌,

리사이클(recycle)이 실제 구현을 유도하는 전시공간 계획.

완성된 작품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 전시, 해체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

수납상자와 아크릴 상판을 조합, 다양한 받침대와 구분벽을 계획.

공간을 분석하고 질서를 찾아내어 구성 요소를 배열.

수납상자로 연출되는 새로운 풍경.

기성 수납상자를 다루는 데에는 전문지식이 필요 없기에, 설치 과정에서 큐레이터와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전시대 위에는 작품이 전시되고, 수납상자로 이어지는 받침대에는 작품의 재료가 채워져, 작품의 제작 과정 이야기를 넌지시 전달합니다.

어떤 수납상자에는 전시 관련 리플렛을 넣기도 했습니다. 큐레이터들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해프닝이었지요.

수납상자는 현장에서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넘어서는 쓰임새를 현장의 큐레이터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즐거워하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었습니다. 결과물이 아닌 시스템을 디자인한 디자인으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 : 황효철

사진 : 황효철

사진 : 황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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