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써니힐즈

[동경]써니힐즈

작년 가을, 잠깐 동경에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켄고구마 선생님의 작업을 찾아갔었습니다.

오모테산도에 놀러간 김에 조금 안으로 들어가, 써니힐즈에 가보았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얼기설기, 어설프게 짜맞춘 바구니 같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교차로 모서리에 위치해있어, 접근 경로가 두 가지 입니다.  다른 골목길에서 접근할 때 보이는 모습.

나무 각재를 얼기설기 묶어 만든 껍데기로 건물 전체를 씌워놓았는데, 확실히 주변의 보통 건물들과 큰 대조가 됩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널리 공감되고 있는 건축의 이미지 -견고하고 단호하게 경계를 이루는 모습- 의 대척점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추구한 결과입니다.

각도가 많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각목들을 X축, Y축, Z축 세 방향으로 배열하면서 교차점에 정확하게 포개지도록 짜맞춰 만든 것입니다. X축과 Y축, 두 방향의 각재를 포개는 것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각각의 각재에 반 정도씩 흠집을 내어 짜맞추면 되니까요. 두 축에 미리 Z축 방향을 염두에 둔 흠집을 낸 뒤 살짝 포개놓고, 마지막 Z축 방향 각재는 살짝 굴리듯 회전해서 밀어넣으면 세 방향의 각재가 정확하게 교차점을 공유하게 됩니다. 언젠가 보았던 다이어그램을 회상하면서 어설프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잘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입니다. ㅠㅠ 이런 내용은 열댓개 문장을 빠곰히 읽는 것 보다 서너개 그림을 가볍게 훓어 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편합니다. 아무튼 이런 기법은 켄고구마 선생이 발명한 것은 아니고, 일본 전통 목공예 기법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본인이 그렇게 밝히고 있는데, 오히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발명한 것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건축의 이미지 -견고하고 단호하게 경계를 이루는 모습- 는 분명 널리 공감되는 이미지이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 돌과 벽돌로 짓는 건물에서 시작되어 철과 유리, 콘크리트로 설명되는 근대건축이 널리 퍼지면서 굳어진 이미지인데요. 목조 건축의 전통을 공유하는 문화권에서는 애매한 경계를 지닌, 부드러운 건축의 이미지 또한 진작부터 공감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지요. 섬세하게 짜맞춘 나무창틀에 얇고 흐믈거리는 종이를 발라서 안팎을 갈라놓는 모습이라든지, 건물 안인지 바깥인지 규정하기 애매한 깊은 처마와 대청마루 같은 공간의 느낌 같은 것에서 발생하는 이미지가 그렇겠지요.

물론 지금 대도시에서 지어지고 있는 절대 다수의 건물들은 여러 이유로 ‘견고하고 단호한 경계’를 갖게끔 지어지고 있습니다. 근대건축의 저력의 결과인데 이제와서는 그 것이 근대건축의 한계가 됩니다. 근대 건축의 한계를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근대 건축이 간과했던 수법(풍토성과 수공예 기법)을 빌려왔다는 데에  묘미가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켄고구마 선생님이 참 영리한 분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굵직하게 흘러가는 흐름의 어느 지점에 자신을 존재감있게 자리매김할 줄 아는 능력! 막상 선생님은 이런 맥락을 지적 허영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고 ‘의성어건축/의태어건축’이라는 말랑말랑한 개념으로 상냥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면모에서 거듭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건물이 하늘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일부러 각재 일부를 삐죽빼죽하게 배열하여, 다양한 차원에서 부드러운 경계를 갖도록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벽면을 반듯하게 바라보면 가지런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시선을 조금만 틀어도 제법 역동적인 모습이 연출됩니다.

세 방향의 각재가 하나의 교차점에서 포개어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는데, 동시에 수 백 수 천 개의 교차점을 공유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가늠이 잘 되질 않네요. 역사와 맥락을 해석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영리함과 더불어, 기술적인 노하우가 다른 건축가는 함부로 따라하기 힘든 스타일의 차별점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스타일은 코르뷔지에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나 미스 스타일의 강철 오피스 만큼 널리 퍼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생산성과 경제성에서 비롯된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 모던건축 스타일의 덕목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친환경성을 향한 목소리가 시게루반 스타일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켄고구마 스타일은 보편성을 얻기 위한, 실천을 위한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차별되는 브랜드 구축을 위한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어찌되었든 한계를 확인하고 대안의 가능성을 주장한 것 만으로 충분히 큰 의미가 있겠지요.

바깥에서는 얼핏 막연하고 압도적인 표현으로 비추어졌던 패턴이 건물 안 창문 너머 풍경에서는 작은 조각이 되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표현으로, 귀여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계단실…

건물 안 계단까지 밀려들어온 껍데기 패턴이 자연스럽게 난간 지지대를 겸하는 장면에서는 많이 흐뭇했습니다.

껍대기 패턴은 짜임새 그대로 테이블 지지대로 응용되기도 합니다.

날씨가 화창해서 조각난 햇볕이 내부 공간으로 밀려들어왔더라면 애매한 경계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가 더 생생하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닥(천정) 구조체는 껍데기 패턴과 일관된 흐름으로 읽혀, 건물 전체의 완성도를 더해주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울창한 숲을 거니는 듯한 감각이 연출됩니다.

외부의 입체 패턴이 납작하게 평면으로 변형되어 칸막이벽으로 응용된 모습.

한참을 바라보아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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