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서울시립도서관/서대문

얼마 전 응모했던 공모전으로, 로프트도시건축사사무소 최지영 소장님과의 협업. 결과는 1차 심사 탈락.

계획

서울시립도서관/서대문 은,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요거점도서관들 중 하나입니다. 지역도서관인 동시에 거점도서관이라는 점을 감안, 저층부에서는 전면도로와 주변공원과 다양한 방식으로 촘촘히 이어지는 태도를, 고층부에서는 단일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이 주된 디자인 방향이었습니다.

더불어, ‘책보다 매력적인 미디어’ ‘독서보다 쉬운 쾌락’이 넘쳐나는 요즈음, 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의미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책과 책, 책과 사람, 시설과 사람 등을 이어주고, 또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했구요. 그래서 타이틀을 ‘이어주는 도서관, 드러내는 도서관’으로 정했습니다.

전면도로와 배후공원의 지형차이를 극복하는 주출입구 및 연결통로. 그 위에 차곡차곡 어린이열람실, 멀티미디어열람실, 일반자료열람실이 쌓입니다. 단면투시도 시점을… 협업했던 최소장님은 아래쪽을 선호했었는데, 저는 위쪽을 패널에 넣었습니다만. 지금 보니 아래쪽이 더 많은 정보를 더 직관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전면도로에서 보이는 모습. 무인도서대출반납기, 각층으로 책을 옮기는 덤웨이터샤프트, 주출입구, 대형버스주차장 등이 ‘한 눈에 읽기 좋게’ 가지런히 배열된 모습입니다. 대형버스 정류장과 드랍오프 존을 넉넉하게 계획한 것은, 보다 작은 지역도서관들을 지원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접한 공원에서 보이는 모습.

카페, 강연실 등 프로그램 배열과 계단, 느슨한 경사로, 테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촘촘히 이어준다는 의도가 담긴 계획입니다.

도서관의 가장 큰 존재의의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책을 모으고 관리하고 빌려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관련된 작동방식을 효율적으로 조직하여 잘 이어주고 잘 드러내는 것이, 책과 독서의 위기에 처한 요즈음, 거점도서관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무인도서대출반납기를 공원과 전면도로가 만나는 모서리에, 그 바로 배후에 자동화서고를, 자동화서고 바로 옆에 덤웨이터와 종합안내데스크를 배치합니다. 그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긴밀히 이어질 때 도서관은 잘 작동하고, 함께 이어진 모습이 잘 드러날 때, 의미있는 풍경이 연출됩니다. 잘 이어지고 잘 드러날 때 비로소 다음 세대 도서관을 향한 진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체

스크린 지지구조체 (1차)

스크린 지지구조체 (2차)

스크린

건물 본체 외부에 간격을 두고 가벼운 스크린을 두릅니다. 따가운 햇살을 걸러내고 인접 아파트와의 시선 간섭을 완화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스크린과 본체 사이, 쾌적하고 아늑한 사이공간을 창출하기 위함입니다. 못지 않게, 완고한 느낌의 콘크리트와 깊이감 없는 표피로 대표되는, 평범한 아파트 풍경과 대조를 이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수직루버와 익스팬디드메탈로 이루어진 고층부 스크린은 비례와 조형을 통해 종이책의 낱장을, 알루미늄 단판으로 이루어진 중층부 스크린은 가지런히 접은 종이가 연상되기를 기대합니다. 중층부 스크린에 새겨진 개구부 패턴은, 종이 위에 가지런히 인쇄된 문자 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크린을 찢어내고 돌출한 유리상자는 테마열람실입니다. 특정 주제의 도서 큐레이팅 또는 모임을 위해 임대되는 공간입니다. 수 많은 익명의 열람석들 중 하나가 아닌, 약속된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아늑한 ‘방’입니다. 도서관 바깥을 향해서는 객석을 향해 펼쳐진 무대 또는 쇼케이스처럼 작동하기를 기대합니다. 드러내고 이어주는 전략들 중 하나.

도면

지하1층 평면도 : 통행로를 겸하는 하역공간. 상부 다목적홀로 연결되는 별도의 화물승강기 등이 어필 요소.

지상1층 평면도 : 드랍오프존, 버스주차장, 하역차량임시주차장 등을 여유있게 둔 것은 거점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당선작에서는 보행연결 위주로, 최소한의 지하주차장 출입구 및 버스주차장으로 계획한 점이 많이 다릅니다. 무인도서대출반납기와 자동화서고를 일체화하고, 덤웨이터 및 통합안내데스크와 붙여 계획한 것을, 도면이 아닌 다른 시각수단으로 추가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주출입구에서의 접근경로와 부출입구에서 북카페를 거쳐 접근경로의 결절점에 다목적홀의 라운지와 오픈키친을 둔 것이 나름 매력포인트.

지상2층 평면도 : 인접 대지 지형 고저차이를 이용, 다목적홀을 두 개의 레벨에서 진출입가능하게 계획.

지상3층 평면도 : 공원을 의식, 넉넉하게 발코니.

지상4층 평면도 : 아래층 유아/어린이열람층과 위층의 일반열람실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리시설과 멀티미디어 열람 프로그램 배치. 자원봉사자실, 용역사무실, 숙직실을 지상층 쾌적한 자리에 배치한 것이 나름의 자랑입니다. 가운데 계단은 1,2층의 관통 통로를 입체적으로 연장한 것인데, 조금 더 ‘풍요럽게’ 다듬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지상5층 평면도 : 일반열람실

지상6층 평면도 : 스크린을 뚫고 외부로 돌출한 테마열람실

단면도1 : 최상층 측면창은 동쪽, 공원을 향한 방향성 의식. 천창 보다는 측창을 좋아합니다.

단면도2 : 지상1,2층으로 연결되는 다목적실. 그리고 공원에서 살짝 내려와 이어지는 북카페.

소감

얼마전에 현상설계 도전 관련 푸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만. 당선작 및 2차심사 대상작들을 보니, 무엇이 모자랐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됩니다. 작품들 하나하나에 저마다 다른 방면으로 저희 작업보다 잘 풀었다! 고 보이는 지점들이 확실히 있습니다.

당선작을 보자면. 외피계획전략이 저희 제출작과 통하는 면이 있어 재밌게 생각했습니다. 큼지막한 나무로 계획한 루버 이미지는 확실히 직관적으로 보다 친숙하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루버로 외부소음을 줄일 수도 있다는 설명 또한 재밌었습니다. 루버 조형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심사평이 여럿 나오는데, 그 만큼 다른 부분에서 탁월했다라고 해석합니다.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당장의 조형이나 이미지 보다는 건물의 전체적인 앉음새와 공간/프로그램 조직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원과 연결되는 레벨을 커다란 필로티로 풀어서 정말로 공원이 연장된 일부분으로 연출한 것은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봅니다. 필로티를 공공의 통행 가능한 영역으로 풀면 내부공간 면적에 들어가지 않겠는데. 나름 음미해볼만한 트릭이 아닌가 합니다. 필로티 군데군데 섬처럼 유아열람실을 넣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리 차원에서 출입구를 최소한으로 계획하라는 지침 내용이 있는데, 지침에 어느 정도로 따를 것인가는 역시 계획에 따라 자신감있게 결정할 일입니다. 다만, 심사평을 보면, 내부공간 가구 배치계획을 중요하게 보신 것 같은데, 여기에는 의견이 다릅니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가구계획이 잘 되어 있는가를, 현상공모전 심사 단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볼 일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저희 제출작에 담겨있는 나름의 가치들을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읽어주시지 못했다는 불만도 스멀스멀 기어올라옵니다. 그만큼 잘 표현해서 설명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생깁니다. 건물 전반의 구성을 설명하는 입체 다이어그램을 패널에 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평면을 좀 더 짜임새있게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아쉽고. 전반적인 공간/프로그램 구성을, 좀 더 공원과 한 몸이 될 정도로 과감하게 계획하지 못한 것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런데 다만 이 것은 결과론인 것 같습니다. 개념적으로야 얼마든지 공원과 한 몸 처럼 계획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리스크는 커질 텐데,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적절한 선일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도서관 현상 설계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데, 계속 낙선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열 번 도전에 한 번 당선이면 매우 높은 승률이라고도 합니다. 낙선이 쌓이는 만큼, 결과에 상관없이, 나름의 역량이 늘어가는 것이 스스로 느껴지기도 하고, 감이나 눈치같은 것도 (제 딴에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전에 제출했던 몇 번의 도전보다는 그래도 이번에 한결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자부도 해봅니다. 어차피 같은 낙선이지만 그래도 느낌은 다릅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며 도전을 이어가려 합니다. 함께 고생하신 로프트도시건축사무소 최지영 소장님, 그리고 강민우씨, 구민종씨, 표준우씨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관련링크

이전도전들/광탄구름도서관

이전도전들/남부어린이도서관

당선안및심사평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