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옥재/07

img_1326584_1358111_6

건물 바깥으로 나와서 바깥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img_1326584_1358111_1

주렁주렁 메달려있는 장식들 중 어떤 것은 그냥 장식이었지만, 어떤것은 구조적으로도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img_1326584_1358111_3

뒤로 돌아가서 집옥재와 팔우정의 연결부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고건축양식으로된 다층 건물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낯설어 보입니다.
창호지가 아닌 유리창호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겨울에 추운 우리나라의 기후와 온돌로 대표되는 특유의 난방방식 때문에 건물을 고층으로 안 지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읽은 또 다른 이야기로는, 고려시대때까지만 해도 2, 3층의 고층건물이 제법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나라에서 고층건물을 금지시켰다고도 합니다. 사치를 금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말이죠. 비슷한 사례로, 조선시대에는 민간건물의 규모를 100칸 이하로 규제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것이 원인이고 어느것이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층 건물이 없었다는 사실이, 상업과 물류의 기능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하고 농업만 비대하게 발달했던 조선의 비정상적인 산업구조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img_1326584_1358111_7

집옥재의 옆 벽돌벽을 바라보았습니다.

img_1326584_1358111_4

무비판적으로 차용된 양식이긴 하지만, 그냥 보기에는 미니멀하게 처리된 넓은 벽돌벽이 제법 우아해 보입니다.

img_1326584_1358111_5

앞에서도 보았지만 처마 끝의 벽돌 처리가 보면 볼 수록 희한해 보였습니다.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로 나뉘어지는 와중에, 박공지붕의 구조부재를 반영하는 테두리의 윤곽은 붉은 색과 검은 색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img_1326584_1358111_2

돌로 된 기단의 요철은 건물의 뒷면에 이르러 과감하게 생략됩니다.
형편과 정성의 한계라기 보다는 컨텍스트의 반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img_1326584_1358111_0

집옥재의 뒷면입니다.
앞서 보았던 둥근 창문의 형상이 벽돌과 돌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