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거리풍경/03

거리풍경 계속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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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의 답글에서 잠깐 말했었지만, 거리 풍경이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은 이유들 중 하나가 마감재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알루미늄 패널이나 법랑 패널 등, 세월의 때가 묻을 수 없는 재료가 거의 없고, 대부분 이렇게 벽돌마감이더라구요. 건물 자체는 그렇게 공을 들인 디자인이 아닌, 평범하거나 평범에도 못 미치는 디자인인데, 그런 건물들이 모여서 뿜어내는 거리의 분위기는 그렇게 천박하진 않더군요. 아니, 천박하지 않다기 보다는, 불쾌하게 천박하지 않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운 거리,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에 개개의 건물이 예쁘냐, 안 예쁘냐, 잘 디자인 되었냐 등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오히려 엄청나게 잘 디자인된 건물들이 모인 거리보다는 이렇게 각각의 평범한 건물들이 잘 코디되어있는 거리가 더욱 아름다운 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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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벽돌로 마감된 고층 건물인데, 넘쳐나는 덩치를 감당해 내지 못해서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앙증맞은 장난을 해 놓은 사례입니다. 창문 패턴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수평띠로 덩어리를 분절하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장식물을 군데군데 붙여 넣기도 하고.

 

예전에는 이런 건물을 보면서 분노에 치를 떨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귀여워 보일 뿐입니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혹은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어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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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근대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건물들도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단순한 패턴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디자인입니다.

건축가의 자의식을 발견할 수가 없는 건물.

그런데, 다듬어지지 않는 어설픈 자의식이 과잉으로 발현된 건물보다는 차라리 이런 건물이 아름다운 거리풍경을 연출해내기에는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성적인 배경의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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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부에 달려있는 가고일들이 웃음을 자아내는 건물입니다.

미국문화가 태생적으로 품을 수 밖에 없는 공허함이랄지, 키치스러움이 은근히 느껴지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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