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white plaza

아무튼, 자료를 정리해 둔다는 차원에서 바젤에서 보았던 건물들 사진을 계속 올립니다.

리스트 중에 눈길을 끌었던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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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차드 마이어는 논쟁의 중심자리에서 미끌어진 지 오래된 건축가이죠.
저도 그다지 좋아하는 건축가는 아니구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건축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한 두개 정도는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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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어설프게 합성을 했는데. 굉장히 어색해 보이네요.
직접 보니, 생각보다 좋았어요. 상상처럼 푸석하거나 허하게 보이지도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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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아는 사람….
리차드 마이어 뉴욕 오피스에서 지었다… 마지막 부분은 이쯤 되지 않을까.

이렇게, 건물의 명패가 건물 외벽 패널에 “전사”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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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바닥의 돌이 오픈조인트로 깔려 있었어요. 돌 나누어 놓은 것도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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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출입구 들 중 하나. 여러개의 볼륨들로 조형유희를 해 놓은 것 처럼 보이는데요.
왼쪽 구석에 모를 따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어요. 딱히 저 시점에서 저 각도로 시선을 열어주어야 할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장난을 쳐 놓은 것치고는, 아무리 인생 자체가 매너리즘인 건축가라지만, 조금 심한 것 같기도 하고요.

가까이 다가가니, 구석에 빨강색 글자를 붙여놓은 것이 보이더군요.
더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하니,
모서리 조인트 사이로 경첩 같은 것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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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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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전… 내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연결송수관 쯤 되는 것 같네요.
빨강 알파벳 에프자는 물론 파이어의 첫글자 겠죠.

문을 닫아 놓고  다시 보니, 수납장의 존재가 뚜렷하게 부각되더군요.

그냥 무턱대고 장난친 것이 아니었고, 이렇게 기능을 암시하기 위한 코드였다는 것이죠.
지금은 그냥 덤덤하게 사진을 올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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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보면… 보면 볼수록 새로온 것이 보이고…. 그냥 책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각별하게 다가오더군요.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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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전처럼, 입면의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에 어떤 코드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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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의 경우는, 책으로 보았을 때에는 별로 였는데, 직접 구경하면서 아주 좋아하게 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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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마이어는 르코르뷔제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고, 그의 작품어휘를 직설적으로 번역하는 식으로 디자인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런 장면에서는 라뚜렛의 영향이 느껴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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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전면의 벽이 눈길을 끕니다.
역시 소화전의 경우에서처럼, 그냥 장난을 쳐놓은 것이 아니라, 배후의 기능을 암시하기 위한 코드였다는 것이죠. 왼편 아래의 바닥과 맞붙은 곳에 있는 개구부는 벽 너머에 막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요. 또한 그 개구부 근처에 이렇게 길다란 모양의 무언가가 (이경우엔 테이블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체부가 테이블 앞에 서서 가방을 내려놓고 우편물을 정리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우체부의 구두라던지, 가방이 저 개구부로 보이게 되겠죠. 뭐 그런 상상도 재미있고.
그리고, 오른편의 세로모양으로 절개된 개구부 사이로 우편함의 줄눈이 보이잖아요.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다시 벽을 보니, 벽의 개구부들이 배후의 테이블과 우편함의 배치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물론 개구부의 구체적인 비례라던지 위치 등을 정하는 데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심미안이 작용했겠지만,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동기라던지 힘은 기능의 코드화에 있었다는 것이죠.

아무튼, 앞에서 보았던 소화전과 함께 생각해 보면,
건물 전체가 이런 식의 코드의 집합이라고 해도.. 그다지 큰 과장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읽어냈던 것은 이 정도 였지만,
사실은, 두 번째 사진에서 보았던 복잡한 입면들, 그 수많은 요소들이 어떤 구체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세요. 너무 선의로 해석하려는 것일까요?

한때 설계수업 때 모형을 만들면서, 한가지 재료, 한가지 색상만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던 때가 있었죠. 지금도 그러나? 아무튼… 마치 르코르뷔제 초기작품들 처럼, 하양 종이 한가지로만 모형을 만들도록 말이죠. 색깔이나 질감등이 추가되면, 조형의 의도가 흐려지거나, 순수한 조형의도 이상의 것이 우발적으로 개입될 수도 있으니까….

리차드 마이어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조형의 코드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백색 알미늄 패널만을 고집하는 것이겠죠. 아우, 진작에 다 알고 있었던 내용들인데, 직접 가서 보고 느끼게 되니, 각별하게 다가오네요. 안도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도 넓은 의미에서 같은 부류로 넣을 수 있겠죠.

화려한 색깔, 다양한 질감의 재료를 사용해서 모형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 내 기억으로는 렘콜하스인데, 생각해보면, 이런식의 조형의 코드들…. 엘리트 건축가 사이에서만 소통되는 특별한 어휘들…. 이런게 결국 “스타일”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잖아요. (예전에 렘콜하스가 신건축주택공모전에서 “스타일없는집”이란 주제를 내걸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한편으로는 헤르조그같은 사람들은 또 다른 방향이고.

아…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요?
현대 건축의 지형도가 아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될 수 있을 듯….
(아.. 피곤해 죽겠는데, 이건 또 무슨 삽질이람….)

1. 리차드 마이어: 기능의 코드화를 부각하기 위한 조형의 추상화.

2. 렘콜하스: 기능의 코드화가 아닌, 기능의 직접적인 인용. 또는 우발적인 상황 그 자체를 충실히 반영하는, 그냥 그런거. 이래저래 둘러가지 않고, 꾸미지 않고, 황당하도록 그냥 그래서 재미있는 것. 리차드 마이어식의 코드…. 전통적 의미에서의 스타일을 조롱하고 냉소함.

3. 헤르조그(초기작) : 조형의 추상화로 인해 희생되고 간과되었던 구축과 물성에 주목.

………..

그냥 지적유희일 수도 있고. 과시욕에서 비롯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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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별 안내판인데요. 1층엔 왼편사진처럼 되어있고.
각각의 다른 층에는 오른편 위사진처럼 모여 있던 안내판 들 중에 해당 내용만 달랑 달려 있구요. 화장실도 같은 식으로 되어있고.

마이어 건물을 구경하면서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코드를 하나둘씩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또 다른 것은,
모든 것들이 마이어 스타일에 가장 적합하고 어울리도록 되어있더라는 것이죠.
다 허여멀건했던 것이 말이죠.

이거 말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앞에서 한참 생각해 보아도,
별 뾰족한 대안이 안 떠오르구요.
다 안성맞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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