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6

지난포스팅(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5)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굵직한 루버로 드문드문 채워진 투과성있는 껍데기는 앞서 말했듯 또렷한 윤곽의 완고한 표정을 지닌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좋은 대비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키 큰 나무들과도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가능한 많은 빈틈을 지닌, 그리고 약간의 무작위성이 가미된 느슨한 패턴이 자연에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인상을 주겠지요.

앞서 언급했듯, 건물 1층 바깥은 열주가 늘어선 필로티로 되어 있어서 표피의 루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두툼한 경계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필로티 바닥 (갤러리?)은 높이 변화 없이 평평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건물을 둘러싼 땅은 끊임 없이 꿈틀거리고 있기에, 땅과 만나는 부분은 계단으로 보정되어야 합니다. 바로 앞선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 뒤켠은 높이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큰 길에 면한 건물 앞면은 높이 차이가 제법 나게 됩니다.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단으로 건물 전면을 길게 채웠는데, 결과적으로 다소 엄숙한 표정을 띄게 되었습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길게 늘어선 계단 구석에 문득 묵직한 통돌이 놓이고, 이 건물이 이 곳에 이런 식으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새겨집니다.

100미터에 육박하는 건물 전면을 계단으로 채우느라, 휠체어 접근 경로는 옆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표지판을 뜬금없이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여유의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계단 속에 경사로를 넣을 수도 있었겠는데, 굳이 계단으로 꽉 채워버린 모습에서 건축가의 고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집착이 있었기에 건물 구석구석, 이 정도의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서 로비 언저리를 둘러 본 몇 주 뒤, 내부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건물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진들을 통해서 짐작했던 풍경들이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기대 이상으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로비에서 올려보았던 네모난 천창이 5층 구내식당 중정의 수공간 바닥이었네요. 바닥이 아닌 바닥과 천정을 겸하는 요소이자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경계이기에, 이 수공간은 상상이 멈추는 목적지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다른 상상으로 도약하는 의식의 시작이 됩니다. 빛나는 연못 바닥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이 곳에 다다르기 얼마 전에 겪었던 로비의 풍경을 알게 모르게 의식할 것이고, 그러한 의식의 흐름은 건물 전반의 입체적인 구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식과 이해의 도약이 회사의 실적으로도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해볼만 합니다.^^ 높은 천정의 공간이 두뇌활성에 도움을 준다는 뇌과학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니, 그냥 막연한 기대는 아닐 것입니다.

10센티 미터의 물은 바람을 비롯한 각종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표면이 아닌 덩어리로서의 표정을 드러냅니다. 그만큼 바로 아래 로비 공간은 생기를 띄고 꿈틀거리겠지요.


3줄요약

  1. 요즈음 완공된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에 구경갔었습니다.
  2. 역시 대단했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습니다.
  3. 아모레퍼시픽에 취직해서 매일매일 이 건물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5

첫인상을 심어주는 중요한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물 전체의 일부분일 뿐인데 볼거리와 고민하게 하는 장면들이 참 많기도 많더라고요. 멀리온과 바닥 돌 나뉨의 선을 맞추는 것은 사실 설계를 하면서는 기본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건물 관찰하면서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게되는 장면인데…

멀리온과 바닥 돌나뉨의 선을 맞춘다면, 당연히 유리난간의 나뉨과도 맞춰야 할텐데요. 무심코 넘어갔던 장면입니다만. 나중에 건설 진행에 관련되었던 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더라구요.

아트리움으로 올라가기 전, 지하 식당가에서 찍은 사진인데,

에스컬레이터 하부, 기둥과 기둥의 사이 같은 애매한 공간에 플랜트박스를 설치하는데, 별도의 화분 등을 가져다 놓지 않고, 이런 상황, 이런 아이템까지 건축설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어와 전반적인 디자인의 톤에 맞추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1층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널리 알려진대로 건물 외벽면 경계를 따라서 회랑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자전거 거치대 같은 아이템도 기능과 상황과 건물 전체의 디자인 톤에 호응하여 맞춤으로 디자인했더라고요. 정사각형과 정육면체 윤곽의 비례는 당연히 건물 전체,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로비 공간의 윤곽을 염두에 둔 것이었겠지요. 두툼하고 묵직한 철의 물질감 또한 노출콘크리트와 통하는 느낌입니다. 기능적으로도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회랑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다니면서 때로는 바깥으로 나와서 바깥 모습을 찍었는데, 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패브릭 같은 이미지로 읽히기도 하고,

위치와 시점에 따라서는 차갑고 추상적인 기계덩어리 같은 이미지로 읽히기도 하더라고요.

세로 방향으로는 얼핏 대나무처럼도 보이고, 단면으로는 비행기 날개를 연상케하는 굵직굵직한 루버가, 가로방향으로는 점검통로와 루버 지지를 겸한 가로 루버가 놓여있는데요. 오피스건물에서의 근무 경험을 돌아보면, 이미지 연출을 위한 사치 만은 아닐 거라 짐작합니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햇볕(직접광이든 간접광이든)이 들어와서 모니터 읽기가 힘들어지는 일이 제법 있었거든요.

물론 건물의 경계를 두툼하게 만들어서 다소 부드럽고 폭신해 보이게 하는 역할이 큽니다. 유리와 금속패널로 명쾌하고 폐쇄적인 경계를 만든 주변의 옛 오피스건물과 좋은 대비를 보여주고 있네요. ‘의성어 의태어 건축’으로 대표되는 켄고구마 선생님의 문제의식과도 통하는 이야기겠지요. 문화적 배경은 달라도 현대 건축의 한계와 문제에 대한 진단은 고만고만하게 공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지대 겸 점검통로 역할을 하는 가로방향의 루버가 굵직굵직한 세로방향의 루버에 섬세한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가 연출되기도 하고요.

가로방향의 루버에 세로방향 루버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도 역시 기대 이상의 효과가 연출되고,

그림자가 회랑에 드리워질 때는 회랑의 경계가 놀랄 정도로 풍요로와지기도 하고,

회랑바닥과 열주에 섬세한 그림자 패턴이 생기는 것을 정신없이 바라보다 문득, 건물 안 사무실의 풍경은 얼마나 근사할지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4

조각난 햇볕에 실려 들어온 잔물결 그림자와 더불어, 거대한 아트리움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던 것은 아트리움을 에워싸고 있는 발코니 같은 공간과, 그 곳에 놓인 가구들과, 발코니 안쪽 끝 유리 너머 보이는 또 다른 공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유리 너머 붉은 커텐이라든지 (흡음을 위해서 강당에 설치한 것인데, 유리벽으로 일관되게 마감되면서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변적인 커텐으로 드러낸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유리너머 진열대를 밝히는 간접조명들이 각각의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었고, 단조로운 톤으로 꽉 짜인 공간이 줄 지도 모를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었습니다.

점점이 놓인 가구들이 멀리서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구요. 정식 오픈 전이라 텅 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면 더 활기가 돌겠지요.

오돌도돌한 화강석 바닥에 아주 잘 어울려보이는 가구.

화강석 바닥과 노출콘크리트는 비슷하게 연한 회색톤이라, 사람들과 가구들을 돋보이게 하는 무난한 배경이 됩니다. 안전요원 유니폼이 노출콘크리트 색과 비슷한 회색인 것도 우연이 아니었겠지요.

앞서 말한, 둘러싸고 있는 발코니 같은 공간과 온갖 가구들, 유리 너머 보이는 건너편 공간들의 풍경들 덕분에 이 공간이 아트리움이나 로비가 아닌, 사람들이 모이고 이벤트와 해프닝이 벌어지는 살아있는 광장 같은 풍경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운데가 비어있다 보니, 보통은 가운데에 있을 코어가 사방의 구석에 있었는데요. 기둥에 살짝 가려지긴 했지만 가운데 아트리움을 향해 열려있었습니다. 세 개층의 코어 입구가 한 눈에 보이는데, 시선이 권력이라는 흔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감옥의 간수가 된 것 같은 묘한 쾌감이 들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통행을 막는다기 보다는,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식에 가까운 게이트. 마음 먹는다면 못 건너갈 높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저 게이트를 넘어간다고 해도, 승강기나 개별 실로 들어갈 때에는 인식표가 필요하니까, 별 의미가 없지요.

건축적인 통제 장치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식으로 연출한다면, 공간이 시원스럽게 이어지는 연출에 방해가 되겠고, 심리적으로도 압박이 되겠지요. 그게 건물의 이미지를 불친절하고 폐쇄적으로 만들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담장이나 게이트 같은 몸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건축적인 요소는 가급적 존재감을 희미하게,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럽게 연출합니다. 실제적으로는 카메라나 인식표 같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도 작동할 수 있는 기술적인 성취로 통제를 하고요.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3

앞선 포스팅 (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2 )에서 격자 하나하나가 제각기 점멸되는 모니터의 픽셀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런 감상을 뒷받침하는 사진들을 몇 개 더 올립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도 찍었네요.

이런 장면에서는 예전에 연필 뎃생 연습할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물론 지난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말했듯 시점의 위치와 햇볕의 방향에 따라 밝고 어두운 패턴이 달라지는데요. 입주해서 일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조형만으로는 헷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패턴을 길잡이로 삼을 법 합니다.

로비를 이루는 꼭대기, 3층으로 올라가면 구조체의 옆구리가 가지런히 겹쳐 보이고,

잔물결 그림자가 일렁이면서 구조체를 타고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잔물결 그림자는 당연히 빛과 함께 흘러넘쳐 건물 구석구석으로 퍼집니다.

날씨가 맑아서 햇볕이 쨍하게 날카로워지기라도 하면 그 효과가 사뭇 현란해집니다. 천창을 가진 천정 높은 아트리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연한 풍경이긴 한데,

그런데 그냥 조각난 햇볕이 아니라 잔물결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빛이라서 생동감이 넘칩니다. 꿈틀거리듯 바들바들 떨리는 빛인지라, 산들바람 부는 울창한 숲 속 나무들을 비집고 들어온 조각난 햇볕같기도 하고요.

잔물결의 일렁임으로 번역된 바람의 흐름이 조각난 햇볕을 따라 로비 깊숙한 구석까지 내려 꽂힙니다.

아주 간단한 트릭인데 감성을 건드리는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표현만으로 따진다면 미디어 아트 등으로 훨씬 더 현란한 효과를 쉽게 연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음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2

로비로 올라가서 처음 눈길을 끌었던 것은 탄탄하게 세워진 유리난간…

유리난간으로는 이례적으로 삼중유리를 썼습니다. 유리는 투명하니까 몇 장을 겹치든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겠는데, 모서리에서는 유리의 두께가 의외로 눈에 잘 들어옵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에서는 이 정도의 존재감을 갖추는 것이 어울리는 표정인 것 같습니다. 안전을 염두에 둔 계획이겠는데, 표현의 의미도 만만치 않게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스침을 겸하는 상부의 금속 띠는 난간이 끝나면서 유리의 윤곽을 따라 액자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데,

필요한 상황에서는 판으로 확장되어 칸막이가 됩니다. 재치있는 흐름의 디자인이 보기 즐거운데, 다만 이런 흐름이 키가 다른 유리들이 구십도로 맞붙는 부분에서는 조금 어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놀라운, 압도적인 공간. 아무나 이런 공간을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공간 속을 튕겨다니면서 둔해지고 은은해진 온갖 소리들이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느낌. 소리의 느낌만으로 공간의 스케일이 암시가 되고, 그 것이 공간의 색깔이 됩니다. 일반적인 사무소건물 로비라기 보다는 커다란 기차역이나 공항 같은 느낌에 가까운데, 그 곳에서 곧잘 느꼈던 여행의 설레임까지 무의식적으로 연상되고, 그런 감정이 공간을 경험하는 감흥의 일부가 됩니다.

엄격하게 정돈된 또렷한 윤곽의 공간 속, 군데군데 에스컬레이터가 유연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이런 생동감이 공간 체험의 설레임을 더해주고 있었지요.

 

정사각형 윤곽의 평면을 갖는 거대한 공간인데, 가운데는 정사각 패턴의 천창이 놓여있습니다. 그 위는 아시다시피 건물 덩어리의 가운데, 텅 빈 외부공간으로 이어집니다. 수 십 킬로미터 스케일에서의 도시적 맥락을 염두에 두며 계획된 건물 덩어리 계획이 내부 공간 구성에까지 명쾌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개 층은 되어 보이는 두툼한 깊이의 구조체는 물론 여러 종류의 힘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천창 위 물결이 자아내는 빛무리를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위로 올라가 시선이 높아지면, 고개를 한껏 젖혀야 겨우 보였던 두툼한 구조체의 옆면이 바로 눈 앞 가까이에서 넓게 펼쳐집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방향, 밝기, 바람의 세기 등등의  요인들이 조합되어 일으키는 잔물결. 구조체는 그 잔물결이 튕겨내는 빛의 일렁임을 받아내는 스크린이 됩니다.

아주 단순한 패턴인데, ‘깊이’가 있다보니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데요.

천창 위 건물덩어리들이 자아내는 그림자 때문에, 반복되는 네모난 구멍들이 받아내는 빛이 제각기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구멍하나하나가 모니터의 광점같은, 제각기 다른 빛을 뿜어내는 픽셀같은 모습이 됩니다.

각각의 픽셀들이 연출하는 빛과 어두움의 패턴 또한 시점과 날씨에 따라서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1

며칠 전,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에 다녀왔습니다.

신용산역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지하철과 연결되는 이 통로를, 지상 로비로 직접 연결되는 공식적인 주출입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생각한 모양입니다. 경계를 문이라는 선으로 규정하지 않고, 통로라는 공간으로, 두툼하게 설정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하철역이나 지하도는 경제성이나 내구성, 그리고 평범한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의식하여 무난하게 디자인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식으로 조성된 공간에 길들여진 무딘 감각을 충분히 씻어내고 들어오라는 제스춰로 보였습니다. 마침 회색톤의 반광택은 지하도에서의 광택나는 하얀색 질감과 앞으로 펼쳐질 밝은색의 노출콘크리트 질감 사이의 중간 정도인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의 성격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네요. 레이져로 맞춤식으로 도려낸 패널을 조합하니, 그라데이션 효과 같은 것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배후 가새에 구멍 낸 알루미늄 판을 비스로 고정했는데, 이 정도는 눈에 크게 거슬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시공성도 좋겠구요.

가까이에서는 알루미늄판의 두께가 확인이 됩니다. 글자로 도려지는 부분 언저리는 투명아크릴 따위로 고정한 듯.

천정 패턴에서 새어 나온 빛이 거리를 두고 벽에 부딛쳐서 빛무리가 생기고, 그 빛무리가 벽 패턴과 겹쳐져서 풍요로운 효과가 연출되네요. 사진으로는 구멍 난 패널 위에 듬성듬성 하얗게 붓터치라도 해놓은 것 같습니다만, 평면 위에 빛이 내려앉은 모습은 물감칠을 한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입니다. 천정과 벽 사이 모서리 언저리를 관통하고 있을 빛의 궤적과 공간의 부피가 의식됩니다. 디자이너도 이런 상황까지는 아마 예상을 못 했을 것입니다. 대체로 실현된 것은, 상상했던 것 보다 뭐라도 더 많은 것들이 구현됩니다. 좋은 계획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묵직하고 두툼한 문틀에 아주 작게, 일관된 폰트로 새겨져있는 안내 문구.

열고 들어가면 펼쳐지는 아케이드. 천정과 바닥의 정사각형 패턴은 조만간 펼쳐질 압도적 풍경을 암시하는, 복선입니다.

일관된 폰트가 새겨진, ‘미러’ 처리되어 존재감을 감춘 안내판도 좋네요.

바닥에도 이어지는 정사각 패턴. 화강석 혼드마감인데, 한국성, 한국의 질감, 한국의 정서를 생각할 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재료입니다. 오히려 외국 건축가의 작업에서 한국성을 의식하고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을 볼 때가 많습니다.

아케이드가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로비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입니다.

에스컬레이터 옆면을 제작사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스테인레스판으로 끝내지 않고 두툼한 콘크리트벽을 덧붙였는데, 기성복이 아닌 맞춤옷 같은 느낌으로, 공간 전체, 건물 전체의 품격이 올라가는 효과가 난달까요. 기둥과 벽에서의 질감이 일관되게 반복되어 디자인 개념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혹시 점검이나 정비의 문제는 없을지 모르겠는데, 다 검토를 했겠지요.

에스컬레이터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서는 쉽고 무난한 곡선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단순한 조형으로 이루어진 전체 건물의 디자인 색깔에 잘 어울리는 구성입니다.

오픈하기도 전인데 벌써 이런 흠집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원색의 두툼한 코너 가드 같은 것을 붙인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미니멀리즘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걸레받이 없는 벽, 코너가드 없는 모서리를 만들 요량이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요.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2 로 이어집니다.

 

 

[기고]깍지집

보건소(보편적인건축사무소) 신작, ‘깍지집’에 대한 비평이 공간지2018년6월호(SPACE607)에 실렸습니다.

모처럼 좋은 건물을 관찰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 나아가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면에는 생략된 내용이 있어서, 편집부에 의해 수정되기 전의 원고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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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는 ‘보’편적인 ‘건’축 사무’소’를 줄인 말이다. 줄여서 만든 이름이 건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엉뚱한 단어가 되니,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들 정도로 각인이 된다. 왜 이름을 이렇게 붙였는지, ‘보편’의 뜻은 무엇인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반사적으로 질문이 연달아 튀어나오고, 흘러가듯 이어지는 대화에는 가속이 붙는다. ‘보건소’와 ‘건축사무소’. 의미는 완전히 다른데 대략의 맥락은 통한다. 보건소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적은 부담으로 널리 보급하는 곳이다. 그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건축설계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바램을 담아 붙인 이름이라 한다. 정말로 ‘보건소 같은 건축사무소’라면 속칭 ‘구청 앞 허가방’을 연상할 수도 있겠는데, 지향하는 바가 정확히 그 지점에서 머물고 말 것이었다면, 역설적으로 이렇게 눈에 띄는 키치 스타일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상규 소장은 매스스터디즈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닦았기에, 그에게는 매스스터디즈의 유전자가 담겨있을 것이다. 매스스터디즈의 전위적인 스타일과 ‘보편’이라는 얌전한 단어가 겹치는 지점에서, ‘보건소’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기 넘치는 디자인실험을 추구하되, 받아들이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고 만들기에 그리 까다롭지는 않은 어느 일정 범주 안에 들어오게끔, 그래서 ‘보편’이라는 굴레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게 하고자 한다는 포지셔닝. 더 나아가, ‘보편성’에서 찾아낸 문제의식을 디자인의 실마리로 삼되, 결과적으로는 보편의 영역을 보다 넓게 만들고 싶다는 야심. ‘보건소’라는 재치 있고 함축적인 이름과 전상규소장의 실무 이력, 그리고 그의 차분하고 소박한 표정과 말투에서 대략 이 정도의 지향점을 짐작해 본다.

지난 몇 년간 보건소는 그런 짐작에 들어맞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역삼동 일대에 지어진 몇몇 근린생활시설들이 아주 좋은 예다. 강남대로의 엄청난 유동인구를 의식하여 눈에 띄게 도전적인 조형을 자랑하는데, 그러면서도 시각적 표현이나 재료와 구법에서의 실험은 ‘사업성(이익이 남는다.)’과 ‘범용성(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다.)’이라는 기준을 크게 해치지 않은 작업들이었다. 한두개의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네다섯번의 연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보건소의 작업이 건축주로부터 ‘강남번화가의 소규모 상업건물’이라는 맥락에서 충분히 ‘보편적’이라 인정받았음을 알려준다.

일산 근처 택지개발지역에 자리잡은 점포주택 ‘강녕재’는 건물 덩어리의 벽돌 외피가 둥글게 휘어지면서 주차장 필로티 상부로 스윽 스며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벽이 천정이나 바닥으로 휘어지듯 이어지는 수법은 현대건축에서 오래된 클리셰이고, 아직은 새롭지만 더 이상 참신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수법이 동네 점포주택의 흔한 필로티 주차장에서 불쑥 등장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신선해 보였다. 뻔한 정답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은평뉴타운의 ‘깍지집’은 벽돌을 전면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강녕재’로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연작의 흐름 위에 있다. 요즘 몇 년 동안 듀라스택의 콘크리트 블록, 큐블록S시리즈는 일명 ‘와이드벽돌’로 불리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가로 방향으로 기다란 비례감과 더불어, 같은 질감의 다양한 색깔을 갖추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단순하고 매끄럽게 연출된 덩어리 안에 세 가구가 마치 퍼즐처럼 입체적으로 얽혀 있는데, 세 가구는 각각 다른 색깔의 블록으로 마감되어 있다. 그래서 가구와 가구가 접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색깔의 블록들이 맞물리게 된다. (이렇게 맞물리는 모습에서 ‘깍지’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보통 비례의 벽돌이었다면 다소 신경질적으로 얄팍하게 맞물렸을 텐데, 와이드벽돌 특유의 길쭉한 비례 때문에 다소 느슨하고 여유 있게, 이어지듯 맞물리는 연출이 된다. 콘크리트라는 공통된 질감 안에서 조금씩 변주되는 색깔 차이이기에 조잡한 느낌도 크지 않다.

옥상 발코니에는 와이드벽돌을 얼기설기 쌓아서 투과율이 높은 벽을 만들었다. 긴 벽돌을 사용해서 투과벽을 이중으로 쌓다 보니, 높은 투과율에 비해 의외로 시선은 (신기할 정도로)많이 차단된다. 세대별로 다른 색깔의 벽돌을 사용하기에 세대를 구분하는 투과벽 역시 두세가지 색깔의 벽돌들이 빈 허당을 매개로 입체로 얽히게 되는데, 아주 간단한 발상과 명쾌한 규칙으로 생성된 디자인이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은, 제법 풍성한 효과를 빚어낸다. 앞서 언급한 ‘깍지’와 더불어, 그토록 널리 쓰였으면서도 이제껏 활성화되지 않았던 와이드벽돌의 잠재력이 비로소 제대로 드러나는 듯한 장면이다. 앞서 ‘강녕재’에서처럼 뻔한 정답을 뒤늦게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료 건축가의 입장에서 반가움과 낭패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한편, 출입문 위에 붙은 날렵한 철판 캐노피 위에 굳이 무거운 벽돌을 얹은 것은, 루이스 칸의 저 유명한 ‘아치가 되고 싶어하는 벽돌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선뜻 동의하기 힘든 장면이다. 와이드벽돌은 자신이 캔틸레버 철판 위에 위태롭게 올라타게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상규 소장은 건물 전체를 벽돌로 감싸려는 의도의 결과라고 설명하는데, 설명을 듣고 찬찬히 살펴보니, 작은 장면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건물 전체의 디자인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고, 거리에 접한 건물의 표정을 한결 상냥하게 꾸며주고 있다. 철판위에 놓인 벽돌 마구리는 의외로 눈에 잘 띄는데, 물론 그 집 고유의 색깔을 띤 벽돌이다. 뭔가 간질간질하고 귀여운 제스처인데, 앞으로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 거리의 풍경을 좀 더 밝고 훈훈하게 연출하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된다. 사실, 본래의 디자인은 요양원을 등지는 부분의 건물 외벽이 그대로 휘어져 올라가 지붕으로 연결되는 내용이었는데, 시공사의 역량 부족과 그로 인한 불신 때문에 건축주 추가부담으로 지금의 모습 (칼라강판 지붕)이 되었다고 한다. 원안처럼 지붕까지 벽돌로 마감되었더라면, 철판 캐노피 위에 얹혀진 벽돌과 함께 한층 더 일관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구현되었을 것이다.

이제껏 거론한 몇몇 장면들을 통해, 보건소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법론을 짐작해본다. 큰 획으로 굵직하게 설정한 단순한 디자인 개념을 경쾌하게 밀어붙이는 즐거움. 작은 부분까지 일관되고 끈질기게 연출하려는 노력. 재료의 고유한 특징과 잠재력을 끈질기게 찾아내는 동시에 고정관념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집요하지만 경직되지는 않은 태도.

물론 아쉬움도 있다. 건물을 이루는 일부 요소들은 건물 본체에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추가된 해프닝처럼 보인다. 그리고 길에 면해 드러나는 건물의 얼굴은 실내에서 요구되는 창문의 크기와 배치가 다듬어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다시피 빚어진 디자인이라, 지금의 이 모습으로는 갈고 닦여 빚어진 ‘예쁜 얼굴’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인상의 원인은, 앞서 짐작한 획 굵고 대범하게, 그리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보건소의 디자인 태도에 닿아 있고, 그래서 이런 식의 몇 가지 장면을 통해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논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임의로 설정한 디자인 주제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데에 집착하는 한편으로, 특정 시점이나 장면에서의 고정된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에는 그만큼의 관심은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은 매스스터디즈, 더 나아가 오엠에이의 작업에서 가끔 엉뚱한 허점 같은 것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워지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라 생각한다. 쉽고 명쾌한 개념을 직설적으로, 경쾌하게 전개하는 그 만큼, 기왕이면 세부적으로 예쁘게 다듬어지기도 하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인데, 이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습관이나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결코 강요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보편적인 건축 사무소는 동료 건축가가 쉽게 활용할 수 있고 건물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보편성의 윤곽을 꾸준히 야금야금 넓혀가고 있다. 나를 비롯한 동료 건축가들은 보편적인 건축 사무소의 소박한 작업들을 양분삼아, 또 다른, 더 넓은 보편을 만들어낼 것이다.

디자인 열심히 하는 소규모 건축사무소가 생존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들 중 하나가 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