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듯, 시그램빌딩은 찻길로부터 뒤로 물러서, 작은 광장을 만들고 있는 앉음새로도 유명합니다. 광장이라는 게 별게 아니라, 아주 평평하게 잘 조성된 빈 땅인데요, 올라서면 기분이 제법 좋아지더라구요. 거대한 무대 위에 올라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건너편에는, 익히 들었던대로, som 의 “레버하우스”가 서있었습니다.
시그램빌딩과 여러모로 대조가 되는 작품.
묵직하고 기념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 시그램빌딩과는 다르게, 여러 면에서 경쾌하게 연출된 디자인입니다. 유리의 색깔도 그렇고, 스팬드럴을 쉐도우박스(그림자상자)로 처리한 점도 그렇고요. 건물의 모서리를 캔틸레버로 처리해서 기둥의 존재감을 지워버린 점도 큰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층의 포디움으로 모든 대지를 거의 덮어버린 장면 또한.
사진을 찍을 때에는 워낙 시그램빌딩에 압도당한 나머지, 레버하우스는 조금 시큰둥하게 지나쳤었는데,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됩니다. 시그램빌딩과 함께 고층 오피스 빌딩의 전형을 함께 제시한 작품이기도 한데 말이죠.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서 건물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 저기 좀 더 가까이에서 찍어 볼 걸…” 하는 식의 후회가 좀 듭니다.
다시 시그램빌딩 전면 광장. 바닥의 돌 나누기 모듈은 당연히 로비 내부의 바닥 모듈과 일치되어 있었을 것이고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유수의 건축가들로부터 끊임 없이 참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
적막한 휴일의 도심. 명작을 순례하고 나오는 학생들…
광장 한가운데에 배수구가 있었는데, 이런 모습 또한 지어진 당시의 기술적인 한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지금 짓는다면, 라데팡스에서 보았던 것처럼, 건식 패널로 이중 바닥을 조성하고, 빗물 따위는 오픈조인트로 처리된 바닥 패널의 이음새로 스며들게 처리했을 텐데 말이죠.
바닥에는 뭐…. 건물에서 반사된 빛이 얼룩얼룩 물들고 있었습니다.
뭔가 다양한 이벤트가 우발적으로, 활발하게 벌어지는 살아있는 광장이라는 의미보다는,
시그램 빌딩이라는 명작에 접근하기 위한 준비공간 쯤의 성격이 강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