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다정동단독주택/물결지붕집

사진 : 포토리움
사진 : 포토리움

0_들어가며

‘물결지붕집’은 ‘나비지붕집’의 후속작으로, 신도시 단독주택 필지라는 입지조건과 단순한 본체 위에 여러 번 접은 지붕을 올린다는 대강의 조형원리를 공유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결지붕집에서 공간은 조금 더 치밀하게 구성되었고, 동선과 시선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연출되었으며, 구조시스템은 한결 더 효율적으로 발전되었다.

1층평면도
1.주방및식당 2.3.가족실 4.옷방전실 5.욕실 6.옷방 7.다용도실
8.현관전실 9.현관 10.손님방 11.현관창고
2층평면도
1.아드님방 2.따님방 3.가족욕실 4.샤워실
5.부부침실 6.파우더룸 7.화장실 8.샤워실 9.서재
종단면도
1.옷방전실 2.욕실 3.계단아래다락 4.현관 5.손님방
6.주인침실 7.파우더룸 8.샤워실
횡단면도
1.주방및식당 2.가족실 3.계단아래다락 4.옷방 5.보일러실
6.아드님방 7.따님방 8.복도 9.가족욕실

1_가족과 공간구성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와 어린 세 자녀를 위한 집. 가사노동 부담을 최소화하는 공간구성이 우선의 목표였다. 온 가족의 옷장들을 1층 큰 옷방으로 통합, 모든 가족은 귀가하면 일단 1층 세면실을 거쳐 옷방으로 이동,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2층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건축주 부부의 오랜 고민이 담긴 구체적인 요구사항이었다.

건축가는 그렇게 형성된 강제적인 동선에 가족실, 계단, 보이드를 결합하였고, 계단참 벤치와 뻐꾸기창을 열에 맞추어 덧붙였다. 동선과 시선이 가장 긴밀하게 겹쳐지고 교차되는 곳이 가족실이 되는데, 가족실은 빅테이블이 놓임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가족실과 계단은 아기자기한 골목길 같은 느낌으로, 분명히 집 안이지만 뻐꾸기창을 통해 연결되는 인근 침실들에 대해서는 마치 옥외공간인 것 같은 감각을 연출한다. 아파트 보다 더 살기 편한 집이기를 바라는 한편으로, 가족들이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마주치며 서로를 새삼스레 발견할 기회가 자주 생기는 집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진 : 윤홍로
동선과 시선이 모이고 교차하는 가족실.
계단으로부터 연장된 벤치와 테이블.
부부침실의 뻐꾸기창.
사진 : 천경환
왼쪽의 부부침실 뻐꾸기창, 오른쪽 정면으로는 따님방의 뻐꾸기창. 가족실,계단실,복도 공간은, 뻐꾸기창을 통해 연결되는 인근 침실들에 대해서 마치 옥외공간인 것 같은 감각을 연출한다.
1층
2층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이루어진 건물 본체 위에, 고창(clerestory)을 세운다. 아드님방과 따님방 사이, 복도와 욕실 사이 등, 사생활 확보가 중요한 곳이라든지,서향의 햇볕을 가릴 필요가 있는 곳에는 부분적으로 벽을 세운다. 이 것이 지난 ‘나비지붕집’과 달라진 점이다.
지붕

2_물결지붕(구법,구성,효과)

사진 : 천경환

간결한 윤곽의 본체 위에 별개의 지붕을 올려서 두 가지 기하학적 질서를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지난 ‘나비지붕집’에서의 탐구의 연장이다. 평범한 박공 조형 보다는 여러 번 접어 얼핏 평지붕처럼 보이게끔 연출하는 조형이 보기에 더 풍요롭고 감각적이라는 생각, 다락이라는 추가 공간을 얻는 것 보다는 경사 지붕 특유의 공간감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더 낮다는 믿음, 그리고 접힌 지붕과 본체 사이의 고창(clerestory)이 빚어내는 현상학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 등이 담겨있다.

사진 : 천경환
중목 지붕구조체 시공 모습. 하우스컬쳐의 김호기 소장님과 중목전문업체 수피아 덕분에 까다로운 공정을 비교적 순탄히 진행할 수 있었다. (클릭!)
사진 : 천경환
드문드문 보이는 중목기둥(일부는 철제로 보강)은 장식이 아닌, 실제로 기능하는 구조체이다.
(클릭!)

‘나비지붕집’ 지붕구조는 경량구조(각형강관)인데 비해, ‘물결지붕집’의 지붕구조는 중목구조이다. 단열층과 구조층을 겹쳐서 지붕 단면 깊이를 대폭 줄일 수 있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입면을 한결 날렵하게 연출할 수 있었다. 더불어 중목업체의 3D기술지원을 통해 정확한 사양의 부재를 사전 제작, 현장조립할 수 있었다. 또한 중목업체의 기술제안을 통해 나무와 금속보강재를 결합한, 성능과 의장효과를 겸비한 부재를 계획할 수 있었다. 지붕 아래 2층에서는 드문드문 중목구조체들이 보인다. 집의 구성원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순수한 백색 판으로 연출된 추상적인 천정면에 대조되는 긴장감을 연출한다.

사진 : 천경환
지붕의 아랫면, 2층의 천정면은 아무런 조명이나 센서류 없이, 순수하게 하얀 면으로 연출되었다. 복도의 조명은 상부의 트랙조명과 하부의 벽등, 두 레이어로 구성,복도에서 방을 침범하는 빛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붕의 조형과 건물 본체의 평면계획, 두 가지 상이한 기하를 고창(clerestory)과 중목구조체가 매개한다.
사진 : 천경환
(클릭!)
사진 : 천경환
(클릭!)

큼지막하게 접힌 천정은 실내 고창을 관통하여 뻗어 나가는데, 각자 흩어져 자신의 방을 점유하는 가족들이 사실은 하나의 지붕을 공유한 공동체임을 암시한다. 집 전체를 묶어내는 하얀 천정면은 밤에는 빛의 얼룩을 담아내는 반사판이 된다. 본체와 지붕(천정) 사이에 끼워진 고창(clerestory)은 두 이질적인 기하체계들의 충돌을 정돈한다.

사진 : 천경환
공사중인 따님방. 각 방마다 각자의 천정윤곽과 고창(clerestory)모양을 갖는다. 그리고 그 것이 그 방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벽지 문양 같은 마감재가 아닌, 공간의 윤곽과 창문의 모양으로 방의 정체성이 규정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유리고창이 차광이나 차음에는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가족 사이의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방이 호텔 객실처럼 완전히 밀폐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필요는 과연 언제부터 당연한 조건이었나, 의심한다. 불과 몇 십년 전, 방과 방 사이가 종이 한 장으로 구획되었던 때도 있었고,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살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사생활 나누기의 빈 틈에서 가족들이 서로 배려할 만한 기회가 생기고, 각각의 삶이 겹쳐지고 공감될 만한 가능성이 생긴다 생각한다.

사진 : 천경환
고창(clerestory)을 통해 창 너머 보이는 밤하늘과, 반사되어 보이는 실내풍경이 겹쳐보인다. (왠만한 창문들은 커튼으로 가려두기 급급한) 보통의 집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 시선을 하늘로 이끌어준다는 점이야말로 고창(clerestory)의 큰 힘이다.
사진 : 천경환
공사중인 아드님방. 눈높이에는 한 사람 몸의 스케일에 맞춘 작은 창만 간신히 뚫려있어서, 얼핏 갑갑하지는 않을지 걱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방으로 시원하게 뚫린 고창(clerestory)이 연출하는 개방감은 압도적이다.
사진 : 윤흥로
서측면. 고창 너머 사생활과 상관 없는 천정 아랫면이 보인다. 넌지시 암시되는 집안 분위기가 바깥 동네를 향한 메시지가 되리라 믿는다.

고창은 또한 집과 바깥 동네를 이어주는 소통의 가능성이다. 눈 높이에서 아무리 커다란 창문을 뚫는다 해도 밖으로부터의 시선을 의식, 대부분의 시간을 커튼 등으로 닫아 두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면 바깥으로는 닫히고, 오직 집 안에 자리한 중정이나 마당을 향해서만 열린 집들도 많다. 그 결과, 신도시 단독주택동네 밤풍경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대체로 어둡고 황량하다. 물결지붕집에서는, 눈 높이의 창문은 방을 점유한 한 명이나 두 명의 신체를 의식, 작은 크기로 뚫려 있다. 하지만 사방의 고창 덕분에 어둡거나 갑갑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밤에는 고창을 통해 실내의 빛이 바깥으로 새나가고, 사생활 노출과 큰 연관 없는 내부의 천정면 일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제 막 태어나 아직 여물지 않은 동네의 풍경에 온기를 더해준다.  

3_계획

아파트를 버리고 단독주택을 선택한다는 큰 결단을 내린 의뢰인을 위해서 건축가로서 제공할 수 있는 궁극의 서비스는 무엇인지 고민한다. 목가적인 삶을 거론하며 막연한 향수에 호소하고 싶지는 않다. 다락이니 발코니 같은 서비스면적을 거론하며 생색내지는 않으려 한다.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한데 단독주택이기에 가능한 건축의 가능성, 또는 건축 요소의 새로운 구사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 아파트는 집합주택이기에 개체(unit)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리고 수직으로 반복되어 쌓이기 때문에, 각각의 유닛은 평평한 지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붕의 조형과 지붕아래의 공간감을 탐구하는 이유는, 아파트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독주택만의 가능성이 지붕과 지붕아래 공간감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접힌지붕과 고창’이라는 스타일에 동네를 이루는 단위부품으로서 단독주택의 보편성을 획득할 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진 : 윤홍로
평면 계획하면서는 움직임의 리듬과 시선의 방향을 많이 의식했다. 움직임이 멈추거나 움직임의 방향이 바뀌는 포인트에는 보란듯이 근사한 구도를 만들어, 예사롭지 않은 미장센을 연출하려 했다. 현관문을 열어 오른쪽으로 돌면 보이는 장면. 움직임의 방향이 바뀌어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는 곳에는 창문을 정렬, 미장센 연출. 신발 신는 영역, 신발 벗는 영역을 가로지르는 벤치.
사진 : 윤홍로
거꾸로, 바깥으로 나갈 때 마주치는 모습. 바닥에 낮게 깔린 창은, 나가기 전 바깥세상이 지금 당장 어떤지를 미리 짐작하게 해준다.
사진 : 윤홍로
현관전실에서 가족실 방면으로 바라본 장면
사진 : 윤홍로
손님방에서 현관전실을 거쳐 가족실 방면을 바라본 모습. 시선이 길게길게 뻗어나갈 수만 있어도 실내공간이라는 갑갑함을 적지않게 극복할 수 있다. 복도와 문을 정렬하여 ‘시선의 거리’를 최대한 길게 뽑은 결과.
사진 : 윤홍로
2층, 가족실과 결합된 계단을 올라와서 찍은 장면. 역시 복도와 문, 창문을 정렬하여 ‘시선의 거리’를 최대한 길게 뽑은 결과. 접힌 지붕은 고창(clerestory)를 가로질러 크게크게 굽이친다. 그리고 같은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간다는, 한 가족으로서의 의식을 실감하게 해준다.


사진 : 변종석
2층 부부침실.

개요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다정동 2111-2105
용도 : 단독주택
규모 : 지상2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중목구조
건축면적 : 119.9sqm
연면적 : 199.5sqm

관계자
건축가 :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천경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 천경환, 박윤선
시공 : 하우스컬쳐 김호기
인테리어 : 디자인컨설팅 아바드존 전진화
구조 : 위너스
중목 컨설팅 : 수피아
기계 및 전기설비 : 대도엔지니어링

과정1(클릭!)

과정2(클릭!)

과정3(클릭!)

과정4(클릭!)

과정5(클릭!)

과정6(클릭!)

과정7(클릭!)

과정8(클릭!)

과정9(클릭!)

[깊은풍경]반곡동단독주택/나비지붕집

사진 : 최지현
인근 반곡역 앞에서 내려본 모습. 여러 번 접힌 지붕은 이웃 박공지붕 집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결 다부지고 견고한 인상을 연출한다.

0_들어가며

1층평면도
1.진입필로티 2.현관 3. 욕실 4.욕실전실 겸 세면실 5.팬트리
6.식당 7.주방 8.놀이방 9.계단실 10.취미방
2층평면도
1.자녀방 2.옷방 3.화장실 4.욕실전실겸 세면실 5.복도겸파우더룸
6.욕실 7.가족실 8.부부침실 9.발코니
1층
2층
지붕

‘건축가님의 책에 담긴 신선한 디자인 시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메일. 첨부파일에는 새로운 집에 바라는 내용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젊은 부부는 직장 때문에 거처를 원주 혁신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동네에 머무를 요량이다. 그래서 공들여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건축학을 전공한 남편분은 라이프 스타일에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건축자재와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디자인 감각과 집요함은 건축가보다 더 건축가다운 면모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를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웠고,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존중해주려 애쓰셨다.

1_대지와 앉음새

단독주택 블록의 끝, 마을과 숲의 경계에 놓인 땅. 찍어낸 듯 늘어선 필지들 가운데 오직 이 땅만 일그러진 윤곽으로 여러 개의 도로에 접해 있다. 이런 곳이라면,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집의 앉음새를 고민하게 된다.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는 와중에, 건축주는 정사각형 윤곽의 평면을 제안하였다. 단순한 조형이 취향에 맞으며, 겸사 공사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건축가는, 사방으로 열린 땅에 여러 방향으로 동등한 얼굴을 세우는 것은 적절한 액션이라는, 그리고 구심력을 갖고 똘똘 뭉친 조형이라면 갓 태어난 마을에서 소박하지만 묵직한 선언이 될 수도 있겠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2_나비지붕

지붕스터디. ‘여러번 접어서 얼핏 평지붕처럼 보이는 실루엣을 연출’ 한다는 개념으로 만든 대안들.
가장 단순한 조형이 개념에 가장 잘 부합할 때가 있다.
때로는 우연히 발견한 현상을 바탕으로 중요한 개념을 세우기도 한다. 지붕과 본체 사이에 빛이 드나드는 모습은 프로젝트 진행의 큰 줄기를 지탱하는 영감이 되었다.
단순하고 묵직한 본체 위에 가벼운 지붕이 살짝 올라탄 듯한 모습. 스터디모델의 느낌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서, 건물본체는 철근콘크리트구조, 지붕구조는 경량구조(각형강관)를 채택하였다.
박공지붕과 평지붕의 중간 쯤 되는 듯한 느낌을 연출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붕은 ‘지구단위계획지침’(경사지붕)과, ‘수평의 실루엣’(평면과 앉음새에 어울리는 조형)을 동시에 만족하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서둘러 만든 스터디 모형에서 ‘묵직한 본체 위에 살짝 접힌 지붕이 가볍게 올라타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콘크리트 본체 위에 각형 강관 구조체가 올라타는, 주택에서는 드문 구조방식을 채택했다. 덕분에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틈이 생겼고, 그 틈은 고창(高窓/clerestory)이 되었다. 지붕의 아랫면, 2층의 천정은 조명기기나 센서 같은 별도의 요소가 전혀 붙지 않은, 순수한 백색의 면으로 처리되었다. 처음 스터디 모형에서의 이미지를 지켜낸 결과이다.

3_유리바닥

사진 : 천경환
집의 중앙부인 가족실의 바닥, 식당의 천정은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바닥을 지탱하는 철물은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것 보다 더 촘촘하게, 그리고 더 두툼하게 계획하였다. 햇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함이었다.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 틀의 디테일은 건축주가 손수 목가구 장인을 섭외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2층 가족실의 유리바닥은 시원하게 열린 느낌과 공간의 효율을 동시에 원하는 건축주의 바램에서 나온 것이다. 통통한 평면의 갑갑함을 해소하면서 빛과 인기척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상부의 천정, 즉 지붕의 아랫면과 호응하여, 나비지붕집 특유의 공간감을 증폭하고 있다.

4_나비지붕집의 공간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고창(高窓/clerestory). 시선은 막아주고 하늘과 햇볕은 받아들인다. 여름의 가파른 햇살은 구석에 조금, 겨울의 비스듬한 햇살은 깊숙이 들어온다.
고창(高窓/clerestory)은 실내 방의 경계가 되는 벽 상부에도 세워진다. 벽 너머 다른 방의 인기척과 분위기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굵직굵직하게 접힌 지붕의 조형 또한 고창을 통해 막힘없이 넘나든다. 2층의 방과 방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고창이라면, 1층과 2층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유리바닥이다. 유리바닥을 통해 인기척과 너머 공간의 분위기가 전달된다.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면 고창에 필름 따위를 붙여서 경계의 단절 정도를 조정할 수도 있다. 공간의 요구가 새롭게 생긴다면, 높게 접힌 지붕 아래 다락을 만들 수도 있다. 발코니의 사다리를 통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데, 이는 안으로 옴폭 들어간 나비지붕을 점검/관리하기 위함이었다. 본래의 역할 못지 않게, 외향적인 시선을 위한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의미가 더 커지게 되었다.
사진 : 최지현
사진 : 천경환
사진 : 천경환
고창(clerestory)으로 들어온 햇볕은 때로는 유리바닥과 유리난간을 통과하고, 반사하고, 부딪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극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접힌 지붕과 고창, 그리고 유리바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비지붕집 고유의 공간을 연출한다. 얼핏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 안 분위기는 바깥 날씨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극적으로 변화한다. 집안 깊숙이 들어온 햇살은 공간을 관통하고,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빚어낸다.

5_밤의 나비지붕집

사진 : 천경환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을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쏟아졌던 햇살의 흐름은, 밤이 되면 1층에서 2층으로 솟구치는 인공 빛의 흐름으로 역전된다. 공간과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개별 공간의 점유 방식 또한 뒤바뀌게 된다.

사진 : 최지현

낮에 햇살을 받아들이는 입구였던 고창은, 밤에는 내부의 빛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출구가 된다. 그 빛이 집과 거리, 집과 마을을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_맺으며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은 벽, 기둥, 바닥, 계단, 지붕, 그리고 빛 같은, 기본적인 건축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집을 꿈꿀 때, 공간 그 자체의 분위기(atmosphere) 또한 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숫자로 나타나는 면적이나 공간의 효율성, 생활의 편리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가치. 막연히 세련되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스타일과는 다른, 건축 구성 원리의 핵심에 도전하는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안정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개인적인 취향을 적극 추구하는 건축주 부부의 개성 넘치는 삶. 그 삶을 담아내는 무난한 배경을 넘어, 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감을 주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불편한 드라마를 기대합니다.’ 건축주가 보낸 최초의 이메일에 써 있던 문구처럼.

사진 : 천경환
철망난간은 아침햇살에 반응하여 철판계단 위에 섬세한 그림자를 그린다. 철망난간을 쓸 만한 좋은 이유를 발견한 순간.
사진 : 천경환
2층 옷방 방면에서 복도를 겸한 파우더룸을 거쳐 주인침실을 바라본 장면. 얕고 넓은 파우더룸 화장대는 여러 가지 소품들을 찾기 쉽게 늘어놓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복도라는 통과동선을 겸하기에 공간적으로도 효율적이다.
사진 : 천경환
사람 키 높이까지는 계단 내부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나무계단, 키 높이 위 부터는 날렵한 모양과 구조적 효율을 모두 만족하는 철판계단.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은 시각과 시점에 따라서 다양한 표정을 띈다. 때로는 잔잔히 고여있는 수면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에서 반사된 빛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집 안 곳곳을 물들인다. 3중접합유리는 보통의 유리에서 반사된 빛과는 사뭇 다른, 좀 더 질감있는 빛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개요
위치 : 원주시 반곡동
용도 : 단독주택
규모 : 지상2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경량구조
건축면적 : 85.0sqm
연면적 : 153.3sqm

관계자
건축가 :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천경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 천경환, 김혜운, 백정현, 신지은, 진용한
시공 : 건축주 직영
구조 : 김수경 구조기술사
기계 및 전기설비 : 무진엔지니어링

과정1(클릭!)

과정2(클릭!)

과정3(클릭!)

과정4(클릭!)

과정5(클릭!)

과정6(클릭!)

[깊은풍경]패트병으로만든벽

패트병

지난 9월12일, 광명동굴 근처에 위치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패트병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저는 AnLstudio의 신민재 소장님 소개로, 패트병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 틈에 끼어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합니다.


시작

패트병 작업! 가구나 작은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은 이미 많은 작가분들이 활발히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한달이 채 안되는 작업기간 동안, 아무런 배경이 없는 제가 불쑥 끼어들 만한 방향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는 차별되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제안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각진 패트병을 쌓아서 큰 벽을 만드는 작업이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무난하게 쌓아 올리되 물량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안에 색깔있는 무언가를 넣어서 쌓는다면, 벽을 이루는 벽돌(패트병) 하나하나를 픽셀처럼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메시지를 새길 수도 있겠구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가볍게 생각하고 얼른얼른 확인…

아직 병을 어떻게 쌓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단순하게 병을 벽돌처럼 배열하고 글자를 넣어봅니다…

커다랗고 단순한 작업이 될 것이니, 벽에 새겨지는 글자라도 최대한 ‘있어보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벽 길이를 확인하면서 글자 모양을 계속 다듬었습니다.

문득 정말 벽돌처럼 평평하게 쌓는 것 보다는, 자잘하게 지그자그로 쌓아야 구조적으로 조금이라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 아래 스케치)

모델링

얼른 모델링으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봅니다. 평범한 벽돌처럼 쌓기도 하고.

앞서 언급한, 스케치의 아이디어처럼 지그자그로 쌓기도 하고.

그냥 꽉 맞춰서 쌓으면 갑갑해 보일 수도 있으니, 조금씩 간격을 두어 보았습니다. 지그자그의 변 길이가 길어져 구조 안정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되고요. 이렇게 성글게 쌓으면, 쌓아야 할 병의 개수를 줄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그자그로 쌓되, 병뚜껑을 안으로 감추는 식으로 쌓기도 하고. 세번째와 네번째 사이에서 고민하다, 하얀 병뚜껑도 의장 요소(?)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세번째 대안으로 결정했습니다.

 

세번째 대안에 글자를 새기고 전시장에 앉혀보았습니다. 맞춤처럼 딱 맞아서 놀라움.

효과를 짐작하고 스케일감을 확인.

도면

개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들어야 하니, 제작을 위한 도면을 그려야 합니다. 제작에 참여할 분들은 작업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분들일 것입니다. 번잡한 현장에서 착오나 오해 없이, 정확하게 만들 수 있게끔 도와주는 도면이 필요합니다. 익숙치 않은 재료와 구성방식이라 평소에 그리던 건축도면과는 표현방식이 조금 다를텐데, 큰 틀에서의 취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적의 표현방식을 찾아내는 과정이 저는 참 즐거웠습니다. 도면 작업한 아르바이트 학생도, 적어도 겉으로는 즐거워 보였습니다.

나름 상세도면도 그리고, (양면테이프로 접착)

뚜껑끼리 고무줄로 묶어 보강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실행

아래 두 단에 자리잡을 120개의 병에는 물을 가득 채워서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전체 1,800개의 패트병에 일일히 뚜껑을 채우는 것도 큰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버려진 패트병을 모아서 재활용해야 ‘업사이클’이라는 개념에 부합할 것입니다. 하지만 1달 동안의 준비기간 동안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하고, 실제로 작업까지 해서 설치를 마쳐야 하는 여건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글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도 큰 고민이었습니다. 식용색소를 풀어낸 물, 작은 스티로폼 공, 콩 등등, 벼라별 상상을 하고 가격과 시공성(?) 등을 따져보며 검토하였습니다. 완충과 장식을 위해 선물상자 속에 채우는 종이보푸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균등하게 양을 나누고 (아이에게 국수 먹이듯) 1800개의 좁은 입으로 밀어 넣는 것 또한 큰 일이었습니다.

자리잡고 열 맞춰 쌓아 올렸는데,

정확히 수직이 아니다 보니 점점 기울어지다 조금씩 무너지더라고요.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낚시줄로 배후의 벽에 묶어 고정하다 보니, 힘이 몰려서 거꾸로 그 방향으로 와장창 무너지는 충격과 공포.

낚시줄로 배후 벽과 전면 상부 천정, 앞뒤 두 방향으로  묶어 고정하고, 중간중간에 케이블타이로 엮어서 전시 오픈 직전 겨우 마무리. 공간이 좁고 렌즈가 후져서 정면에서는 한 씬에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그자그로 자글거리는 조형이라, 비스듬히 보면 글자가 벽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가 납니다.

소감

앞서 말했듯 실제적인 업사이클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직도 아쉽습니다. 보다 진보된 기술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넓은 공간을 무난하게 점유하며 작지않은 임팩트를 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업들과 함께 전체 전시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말씀

좋은 기회를 주신 신민재 소장님,

재료 탐구와 계획검토에 이어 설치까지 도와주신 김혜운씨,

자리에 맞춰 병을 쌓아올리는 데 도움을 주신 강봄이씨와 권솔희씨,

패트병에 물 넣고 양면테이프 붙이는 작업을 해주신 김종화씨와 김한준씨,

빈 병에 빨간 종이를 채우는 작업을 해주신 박윤선씨,

급한 부탁에 멀리서 달려와 이래저래 크게 고생해주신 정희은씨와 박은정씨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비슷한 작업

[깊은풍경]디자인메이드2010

[깊은풍경]초록풀작목반

[깊은풍경]초록풀작목반

얼마 전에 마무리 지은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입니다.

분당구 분당동, 고만고만한 다세대주택들과 근린생활시설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는데요. 20평 정도 되는 지하실을 임대하고 개조해서 음악연습실로 쓰고 싶다는 것이 의뢰내용이었습니다.

020

건설현장 인부 숙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인데, 내부 칸막이벽과 벽지, 천정 등의 마감재를 철거하면,

021

잘게 나뉘어졌던 공간이 하나의 트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감추어져 있던 보가 드러납니다. 벽에 붙은 기둥이 돌출되어 있고 방습벽이 무릎높이 정도까지만 올라오는 등, 공간의 윤곽이 매끄럽지 않아서 산만해 보이는 점이 일단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022

방음을 위한 공간 벽체를 두르면서 공간 윤곽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체 영역을 설정하였습니다.

023

이 입체영역에는 차음벽 및 흡음벽이 들어서는 한편,

024

불필요한 메아리를 없애기 위해서, 음향의 난반사를 유도하는 목재 패턴벽으로 마무리됩니다. 패턴벽과 흡음벽 사이는 수납공간이 되구요.

101103

다른 시점에서…

301

예상되었던 공간 이미지.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되었습니다.

d001

지향성이 강한 핀라이트 조명을 때리면, 난반사 패턴 벽의 ‘알맹이’들이 마치 독립된 픽셀처럼 빛과 그림자를 담아냅니다.

d002

난반사 패턴 벽과 흡음벽 사이가 얕게는 5센티미터, 깊게는 60센티미터까지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데,

d003

덕분에 다양한 크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효과가 생겼습니다. 이런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입니다.

패턴벽의 일부는 ‘감쪽처럼’ 탈착되어 수납공간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됩니다.

공간의 윤곽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활용성을 포기하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음악연습실에는 접이식 의자라든지 까혼 같은 간단한 악기류, 각종 스피커나 앰프 등, 이렇게 ‘느슨하게’ 넣어둘 만한 소품들이 제법 많습니다.

난반사 패널과 흡음벽 사이 5센티미터의 간격 덕분에 패턴과 그림자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그래서 제법 입체적이고 현란한 효과가 연출됩니다.

g002

g003

난반사 패턴 벽은 바구니, 내지는 울림통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음악연습실과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18밀리미터 두께의 미송합판과 30밀리미터 두께의 구조목을 간단하게 결합하여 만든 패턴인데,

패턴의 크기는 와인병을 넉넉하게 세워둘만한 정도의 크기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만,

물론 책이나 음반 등을 꽂아둘 수도 있겠지요.

g201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추상적인 패턴으로 표현되지만, 사용자(또는 점유자?)와 함께 늙어가면서, 사용자의 생활상이 패턴 알맹이 하나하나마다 스며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트인 공간을 채우는 한가지의 단순한 패턴이지만, 드럼이나 피아노, 롤업 스크린, 그리고 테이블 등의 소품이 놓여지는 위치에 따라서, 다른 표정, 다른 색깔로 스며들어가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드럼 주변에는 드럼 악보라든지, 롤업 스크린 주변의 패턴 벽에는 디브이디라든지, 테이블 근처에는 음료나 종이컵 등의 소품들이 채워지는 식으로 말이지요.

게다가 패턴 알맹이에 이런 소품이 채워질 수록 불필요한 메아리를 막아서 음향 품질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

순수한 예술작품 같은 공간이 아닌, 사용자의 생활로 길들여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모습보다, 일년 뒤 쯤의 풍경이 더욱 기대되는 공간입니다.

 

참고로, ‘초록풀작목반’은 건축주가 지은 음악연습실의 이름입니다.

 

[깊은풍경]함께,대문을 달다

001

성북동에 ‘북정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은 마을 초입에 그려진 벽화인데요. 산 꼭대기 막다른 골목, 일주도로로 둘러싸여 영역감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가 분명한 마을이지요. 작고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동네입니다. 작년 가을, 성북구청 평생학습프로그램 특강을 하면서 수강생들과 함께 답사를 갔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링크 참조)

성북구청_평생학습프로그램

 

002

재개발을 둘러싸고 주민 사이에 갈등이 깊어져, 곳곳에서 이런 흉흉한 벽보를 볼 수 있습니다.

004

마을 구석에 ‘북정미술관’이 있습니다. ‘서울괴담’이라는 극단에서 오래된 작은 주택 한 채를 빌려서 간단하게 수선한 뒤, 마을 사람들의 사진들을 모아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요.

‘아트제안’이라는 예술가 모임에서 ‘마을 사진’의 다음 전시를 이 곳에서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005

006

그런데 미술관에 대문이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프로페셔널한 예술가들의 전시회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라도 대문이 있어야겠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래서 대문을 제작해서 설치하는 것으로 아트제안의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정미술관의 대문이 북정마을의 꾸밈 없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정마을 풍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속적으로 자라난 결과가 되어, 마을 사람들이 아무런 부담이나 위화감 없이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문을 통해서 재개발로 상처 입은 마을 사람들이 위로 받기를 바랬습니다. 그 것이 이번 아트제안 전시의 주된 의도이기도 했습니다.

북정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북정마을 사람들 솜씨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007

재개발로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지만, 마을의 일상 풍경은 대체로 느슨하고 평화롭습니다. 할 일 없는 어르신들은 동네 구멍가게 앞에 모여서 군불을 쬐며 윷놀이도 하고, 대낮에 막걸리도 마시면서 느릿느릿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부서진 가구 조각을 대문을 만들기 위해 가져가도 되겠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은근 놀라워 하시고, 또 많이 즐거워 하시더군요.

008

북정마을에는 곳곳에 오래된 건축자재들을 쌓아놓은 야적장들이 있습니다. 주민들 중에 은퇴 전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많다고 하네요.

009

양해를 구하고 얻어오기도 했고,

010

마을 내 목공소에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011

마을 목공소에서 빌린 회전톱으로 각목을 잘라서 ‘조각보’ 컨셉으로 배열해서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협업해 주신 최준경 작가님.

012

뼈대 사이를 역시 마을에서 줏어 온 가구 조각 등으로 채워보았습니다.

014

최준경 작가님과 북정마을 목공소 김지용 어르신. 회전톱과 타카를 빌려주시고 작업 요령을 알려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017

마무리작업.

018

세워보았습니다.

018_01

벗겨진 페인트와 곳곳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장식효과.

018_2

최준경 작가님이 가져오신 풍경. 을지로에서 구입한 모서리 보강 철물.

019

문 설치는 마침 근처에서 다른 현장 진행하고 계시던 이건우 실장님으로부터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달았네요. 실용적인 대문이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한, 상징적인 대문이겠습니다.

아트제안에 보냈던 작품 설명글입니다.

“북정마을 미술관에 대문을 붙인다.

사람을 가려 들이기 위함이 아니라,

작품을 안정적으로 전시하는 진짜 미술관으로서의 최소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함이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일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마을과 운명을 함께하는 듬직한 가족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마을 여기저기 널려있는 버려진 건축자재들을 조각보처럼 짜맞추어 만든 문이다.

마을에서 함께 늙어온 조각들이기에,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차근차근 고쳐 쓰고 필요만큼 덧씌우며 천천히 살아가겠다는,

소박한 다짐으로 읽어주시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5월10일에 있었던 전시회 개막 풍경.

‘가장 높은 미술관, 가장 낮은 이야기’

022

친구 이상민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023

극단 ‘서울괴담’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024

최준경 작가님

025

하민수 작가님

026

오진령 작가님

….

여기서 모든 작품들을 다 올리면 재미 없을 것 같아서 이쯤에서 생략합니다.

050

6월30일까지, 성북동 북정 미술관에서 전시합니다.

북정마을 풍경도 좋고, 근처에 서울 성곽이나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내셨던 심우장 등, 볼 거리도 은근히 많습니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마을버스 3번 종점.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23길 136-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22113495&code=960202

 

 

[깊은풍경]TS1

0001 copy0002 copy

THK15 투명아크릴판(샌딩처리)+수납상자(기성품)+이동받침대(주문제작)

갤러리 겸 게스트하우스, “수토메(sutome.com)” 에 납품하였습니다.

움직이기 편하도록 받침대에 바퀴가 달았습니다.

독특한 캐릭터가 연상되는 듯한 귀여운 디자인입니다.

특히 갤러리에서 활용하기에 적당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수납상자에 전시 포스터나 브로슈어를 넣어둔 뒤,

필요할 때 마다 테이블 위에 조금씩 꺼내어 올려놓으면 편하겠습니다.

006

수납상자(기성품)를 추가 구입해서 높이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007

아크릴판 무게가 적당히 가벼워서 들어올리는 데에 크게 불편하지도 않고,

동시에 적당히 무거워서, 별다른 장치 없이 그냥 올려놓기만 해도 안정적으로 고정됩니다.

008

독서 책상이나 간이 식탁으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제작문의 :

깊은풍경

016-332-0429 / 02)525-0429 / thescape@thescape.co.kr

 

[깊은풍경]시지프스의집

깊은풍경+송상준,고은별,정민주

(2012/2/8-2/20 A-GENE-DA GROUP EXHIBITION POP!)

집은 삶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집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집을 위해서 살기도 합니다.

한 채의 집을 안정적으로 점유하기 위해, 평생 일하면서 죽을 때까지 매달 일정한 돈을

퍼부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일해야 합니다.

집을 갖기 위해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멈추면 집은 무너집니다.

집은 노동입니다.

0001

전시장 바닥 가운데, 몇 개의 판들이 겹쳐져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허공에 매달린 콤지막한 톱니바퀴가 보입니다.

톱니바퀴에는 손잡이가 달려있습니다.

0002

손에 쥐고 돌리니 톱니바퀴가 굴러가면서 판들이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계속 돌리면 판들이 펼쳐지면서, 집을 이루는 벽이 됩니다.

0003

 

네 명이 함께 톱니바퀴를 돌리면, 작은 집 한 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힘껏 톱니바퀴를 돌리는 동안, 집의 형상이 위태롭게 유지됩니다.

멈추면 금방 허물어집니다.

1001

1002

1003

2001

2002

2003

2004

 

 

[깊은풍경]2011/06_이상의집

와이즈건축의 box mobile gallery 출품 그림.

a4 크기의 지면에,

자유로운 기법으로,

‘이상의 집’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라는 의뢰를 받고

작업한 결과.

01

천경환/이상/천경환/이상/천경환/이상/천경환/이상

Untitled-2 copy

내안에이상

이살고있으

니내가이상

의집입니다

221955_1830167727575_2252424_n

전시 풍경…

 

[깊은풍경]디자인메이드2010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디자인메이드는 재활용을 주제로 매해 열리는 디자인전시회입니다. 전시회는 짧은 기간 동안 최대의 강렬한 체험을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됩니다. 잠깐 동안의 강한 효과를 쉽고 빠르게 만들어내려다 보니, 전시 공간 조성 전후로 많은 폐기물이 발생하게 됩니다. 재활용을 주제로 하는 디자인 전시회의 전시 공간 연출 과정에서 재활용될 수 없는 폐기물이 많이 발생한다는 부조리! 폐기물을 가능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시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전시 취지와 전시 공간 디자인의 개념이 일체가 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전시공간은 완성된 작품을 왜곡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전시장의 모든 요소들은 모든 표현이 제거된 백색을 띄는 것이 보통입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오래된 믿음이었습니다. 전시회의 주제가 재활용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받침대와 벽이 추상적인 백색 배경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정보를 넌지시 전달하는 어떤 느슨한 매체가 된다면, 한결 재미있고 풍성한 체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친환경적인 재료가 아니지만, 플라스틱 수납상자는 다양한 용도로 몇번이든 다시 사용될 수 있기에, 전시가 끝난 후에도 곧바로 폐기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작품이 얹혀지는 받침대와 전시공간을 분할하는 벽을, 속이 훤히 보이는 플라스틱 수납 상자를 쌓아서 만들면 어떨까요? 작업중인 작가들에게 수납상자를 보내고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게 해봅시다. 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들이 수납상자에 쌓일 것입니다. 그렇게 채워진 수납상자로 벽과 받침대를 만든다면, 과정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입니다.

리사이클(recycle)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전시공간이 아닌,

리사이클(recycle)이 실제 구현을 유도하는 전시공간 계획.

완성된 작품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 전시, 해체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

수납상자와 아크릴 상판을 조합, 다양한 받침대와 구분벽을 계획.

공간을 분석하고 질서를 찾아내어 구성 요소를 배열.

수납상자로 연출되는 새로운 풍경.

기성 수납상자를 다루는 데에는 전문지식이 필요 없기에, 설치 과정에서 큐레이터와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전시대 위에는 작품이 전시되고, 수납상자로 이어지는 받침대에는 작품의 재료가 채워져, 작품의 제작 과정 이야기를 넌지시 전달합니다.

어떤 수납상자에는 전시 관련 리플렛을 넣기도 했습니다. 큐레이터들에 의해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해프닝이었지요.

수납상자는 현장에서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넘어서는 쓰임새를 현장의 큐레이터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즐거워하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었습니다. 결과물이 아닌 시스템을 디자인한 디자인으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 : 황효철

사진 : 황효철

사진 : 황효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