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디자인의힘/스위스프랑화폐

작년여름 잠깐 들렀던 스위스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것들 중에서….
대단한 것은 아닌데, 아쉬운 마음에 짚고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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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면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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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스위스는 아직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죠. “스위스프랑”을 사용하는데요.
그중 10프랑 짜리 지폐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지.. 전위적이고, 화려하고, 세련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가져다가 붙이고 싶습니다.

왼쪽면에 보이는 사람은 스위스태생 프랑스건축가 “르코르뷔제”입니다.
건축가가 지폐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 건축설계종사자로서 참 부럽게 느껴지고요. 그리고 “문화예술인”에 대해 존경과 존중을 아끼지 않는 풍토 또한 좋아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그가 디자인한 공동주택의 입면이 보이고, 그가 창안해 내었던 모듈러 비례체계가 보이고요.

디자인만 보면….

뭐 할 말이 한두가지겠습니까만….

1. 우선 지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와 나머지 텍스트들의 방향이 직각으로 엇갈려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그림과 숫자를 중심으로 인지하려면 지폐를 세워야 하고,
발행기관 및 고유번호를 비롯한 기타 정보를 중심으로 읽으려면 지폐를 눕여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엄청나게 강조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 같고요.
그에 비해 (무려!) 앞뒤 4개국어로 기재된 발행기관명과 가치를 문자로 기재(Dix Francs/십 프랑)한 텍스트, 그리고 고유번호 등이 세련되게 배경의 세로줄무늬 쯤으로 인지되는 효과도 생기는 듯 합니다.

이런 전략이 충분히 유효한 것이…

뻔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 (스위스 국립 은행에서 발행한 “십프랑”짜리 돈이다.)를 4가지 언어로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쉽게 읽힐 수 있게끔 위계를 설정하여야 하는데,

글자체를 다양하게 하거나 크기의 변화를 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방향을 달리하여 인지되는 방법의 차원을 달리하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보다 고차원적이랄까.. 강력하고 세련된 수법이라 생각된다는 것이죠. 아유.. 잘 정리가 안되네. 암튼….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했다면 미쳤냐고 했겠죠. 우리나라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디자인의 전위성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것을 가능케하는 진보적인 분위기와 여유가 너무 부럽습니다.

2. 그리고 언급하고 싶은 것이, 가장자리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원화나 일본의 엔화, 미국의 달러화의 경우는 네방향으로 4,5미리미터 정도의 여백이 두툼하게 있죠. 그런데 이게 실용적인 이유에서의 여백이라기 보다는, 관습적인 심미안의 만족을 위해 둘러놓은 것입니다. 인쇄술과 종이 절단기술이 지금처럼 정교하지 않았을 때의 “습관”이 그냥 남아있는 것이죠. 심미적으로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그런 식의 안정감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낡은 개념이라고 봅니다. 마치 이발소 그림의 번쩍거리는 황금색의 두툼한 액자처럼 말이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사방으로 2미리미터 정도의 여백이 있는데요. 네 방향을 빙 둘러가며 관찰해보면 색깔로 뚜렷하게 분할된 부분도 있지만, 서서히 여백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배경그림에 여백이 흡수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화면의 반을 경계로 칼같은 단절이 이루어지는 등, 고전적인 액자형식이 아닌, 굉장히 유동적인 상황을 연출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모더니즘의 정신이 엿보인다고나 할까요.

3.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세로 방향으로 길게, 이분의 일로 접히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화면 분할이 세로방향 정가운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화면분할 역시
가장자리 여백 또는 테두리처럼 배경그림에서는 통합되어 있다가, 상부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그 분할이 뚜렷해지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세련되어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쪽 그림 아래에 보이는 고유번호가 뜬금없이 화면 가운데에 서 있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세로방향으로 길게 접어보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화면배치가 앞에서 말한 텍스트 방향설정과 여백처리 등과 함께 유동적이고 가벼운 화면을 연출해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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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세련되어 보이고 좋게 보이는 것은 취향차이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지폐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3줄요약.

1.건축가와 건물이 지폐의 모델이 되었다는 문화적인 부러움을 우선 들 수 있고요.

2.화면분할, 각종 정보와 텍스트들의 배치, 컬러코디네이션 등 그래픽 디자인에서의 온갖 치열한 고민들… 습관과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고민들이 분명하게 읽히기 때문이고요.

3.모델선정의 문화적 배경과 그래픽 디자인에서의 고민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탈권위적이고 기능적이고 따스하고 세련된 지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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