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로의집/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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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안내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상자로 처리된 전시실이 ‘사이 공간’에 ‘끼워지는 듯한’ 구성이었습니다. 콘크리트 덩어리가 유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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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가 곧잘 하는 것 처럼, 콘크리트에 칼집을 내고 달랑 유리 한 장만 아슬아슬하게 끼우지는 못하고, 두툼한 프레임을 두른 모습입니다. 

유리 창틀 바깥으로는 곧바로 ‘자연’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한 뼘 정도의 간격을 띄우고 스테인레스 막대기를 두르고, 작은 자갈을 깔아놓은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간격이 그다지 넓은 것도 아니고, 자갈 위에 낙엽 따위가 떨어져있기도 해서, 왠만큼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겠습니다. 그런데, 잘 보이는지 여부를 떠나서, 콘크리트 덩어리가 땅에, 자연에, 어떻게 만날 것인지, 그 순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건축가의 고민이 느껴지고, 그 점 만으로 높이 평가할 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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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자’들 사이로 바깥의 풍경이 보입니다. 미술관 ‘이응로의 집’이 담아내어 보여주고자 했던, 또 다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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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상자인데, 바깥을 향한 면 하나는 황토로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보면 거대한 ‘황토상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아니, 볼륨으로서의 상자가 아닌, 평면으로서의 면들의 집합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면만 황토로 마감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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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으로는 ‘상자를 이루는 여섯 개의 평면들 중 하나’이지만, 실제의 재료를 갖고, 현실에 서 있는 구조체를 만들다 보면, 딱 떨어지게 평면 하나만 분리해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색깔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기 쉬운 흙덩어리를 다루다 보니 더욱 힘들었겠지요.

아무튼 그래서 옆면까지 살짝 넘치게 둘러야 했고요, 거기에, 사람 손이 혹시라도 닿을 만한 낮은 부분에는 모서리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까지 둘렀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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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상자가 함께 맞물린 부분도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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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자’ 안팎으로 마감재가 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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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을 설명하는 하얀색 도장의 안내벽면은, 상자의 외곽 경계를 규정하는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아니기 때문에, 경계로부터 살짝 물러나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새삼스러운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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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자에 들어가서 전시공간과 사이공간의 경계를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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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바깥에서, 전시 상자의 벽면 하나가 황토로 마감된 모습을 보았었는데, 그런 설정이 내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더군요. 평면으로는 느슨한 느낌의 구성이지만, 요소를 다루는 나름의 문법 상으로는 엄밀한 구축의 논리를 지키고 싶어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 Comments

  1. 건축은 모릅니다만,
    콘크리트와 유리가 인공의 서늘한 느낌이라면 흙과 낙엽이라는 자연이 서늘함을 반감시켜주는 느낌입니다, 좋네요, 전시공간의 노란 불빛과 사이공간의 푸른 빛도 상대적이면서 조화로운 느낌입니다, 이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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