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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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맞이해주는 인사가 한결 밝고 명랑했고,
커트할 때에는 조금 더 밀도가 깊은 집중력이 느껴졌고,

심지어는 머리를 직접 감아주기도 했다.
(보통 견습생들이 해주기 마련인데, 그리고, 늘 그랬듯 무척 바쁠 터인데.)
머리 감겨주는 솜씨가 이렇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견습생들과 차원이 다르더라.
머리를 “잘” 감는 것 만으로 온 몸의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구나!

드라이를 끝내고 뒷덜미를 털어주면서 하는 인사에는 보통때 보다 조금 더 깍듯한 절도가 실려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연선생님”에게 처음 머리를 맡긴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잠깐 파리에 다녀오기 전에도 머리를 했었으니까, 적어도 2004년 봄 정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그러니 햇수로 5년 정도가 되어가는 듯. 가벼운 시간은 아니겠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005년 초, 바깥에 나가있느라 6개월 동안 자르지 못했던 긴 머리를 맡기러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주던 모습…

잘 어울릴 것이라는 끈질긴 권유를 받으면서도 몇 달 동안 줄곧 우유부단해 하다가,
(나름 큰 결심으로) 내내 기르던 머리를 짧게 쳐달라고 했을 때,
의외로 흥분하며 들떠하던 표정과 목소리…

만삭이 된 모습으로, 휴직하기 전 마지막 손님이라며 제자에게 인수인계해주던 기억도 나고,

몇 개월 뒤, (내가 왔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복직했다며 문앞까지 나와서 인사해주던 모습도 기억 나고.

세월이 쌓이고 익숙해지다 보니, 미용실 갈 때에는 왠만하면 미리 전화를 걸어서 “연선생님” 출근하셨냐고 확인하기도 하고,

확인전화 안 하고 갔다가 출근 안 했으면 그냥 되돌아 오기도 하고.



지난달에는 손님이 너무 밀려있어서 30여 분 동안 기다리다가, 원장 선생님의 강제로 다른 아저씨한테 머리를 맡겼었는데, 사실은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더랬다. 위치상으로는 거울을 통해서 눈길이 마주칠법도 한데, 무지 바빠보이는 모습을 보고 나름 일하는데 방해될 것 같아서 인사도 안 했었는데. 괜히 “선생님한테 머리하고 싶었는데 원장선생님이 다른 사람한테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어요.” 뭐 이런말을 하기도 뭐하고 말이지.



아닌게 아니라 커트할 때 평소와 다르게
조금 어색할 정도로 내내 묵묵하게 열심히 가위질만 하다가,

막판에 간단한 몇 마디만 나누었다.

“2,3주 만에 오신거죠?”
“한달 만에 온 건데요.”
“그 때 다른 사람이 해줬잖아요.”
“네”

연선생님도 그랬던게다. 신경쓰였던게다.
(크허… 쓰다 보니 내가 봐도 내용이 좀 유치하고 웃기긴 하다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라구.)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연선생님이 카운터까지 따라오며 깍듯하게 인사한다.

“다음에도 또 오세요!”

역시, 평소와 많이 다르다. 당연한 사실을 힘주어 말하니 좀 이상하다.
오랜 단골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생각하거나 느슨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읽었다.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보통때 보다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을 담아서 인사했다.

“예,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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