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입니다.
하얀 벽을 배경으로 단순한 선처럼 표현되고 있는 손스침이 보기 좋았고, 한편으로는,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벽의 역할이라고 하면, 비바람과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공간을 구획하여 쓰임새를 담는다는 것 등을 우선 떠올리게 되는데, 그에 못지 않게,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달한다는 의미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야기를 담아서 전달하기 위해 지어진 듯한 건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담은 벽.
1,2층을 연결하는 계단 언저리는, 흔히 보는 계단실이나 로비, 홀 등에서의 구성과 얼핏 비슷해 보입니다만,
요즈음의 건물 유형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복도’와 ‘방’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병원, 호텔, 학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쭉 뻗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벽으로 나뉘어진 방들이 나열되는 형식이 아닙니다. 그냥 방들의 연속인데, 문과 문을 연결하는 동선의 영역이, 오직 바닥에 깔린 양탄자를 통해, 마치 복도처럼 암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당연한 듯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방-복도 식의 유형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계급이 세분화되고,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복잡해짐에 따라 다듬어져서 만들어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앞서 1층에서 보았던 것처럼, 벽이 워낙 두툼하다 보니, 건물 안팎을 관통하는 창문 언저리 또한 두툼하게 됩니다.
창 너머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물들어, 어두컴컴한 내부 공간에 대조되어, 창문 언저리가 ‘빛의 공간’, ‘빛의 방’이 되는 효과가 생기는데요.
솔리드와 보이드, 음과 양이 역전되어, 빛의 볼륨이 양감을 띄면서 도드라지는 효과가 나는데, 잘 알려진 대로, 르 코르뷔제의 롱샹 성당에 응용되기도 하고요.
복도 구분 없이 줄줄이 연결된 방에는, 영화로웠던 과거를 보여주는 온갖 보물들이 놓여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컬렉션이 되는 것이고, 성은 박물관이 되는 것이고.
막다른 방에는 온갖 병장기류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워낙 개인적인 관심사라, 후루룩 넘어갔네요.
건물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여기가 건물 속인지, 길바닥인지 헷갈리는 상황.
병장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던 막다른 방의 반대편, 또 다른 막다른 곳에는, 아주 커다란 방이 있었습니다. 디귿자로 꺾어지는 양탄자가, 이 방이 막다른 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지요.
유물을 전시하는 방식으로는, 이런 방법이 제일 좋습니다. 공간 속, 원래 점유하고 있던 방식 그대로 놓여져 전시되는 방식. 장소의 의미, 유물의 의미 모두 생생히 전달되는.
나란히 뚫려있는 창문들이 인상적입니다.
창문과 창문 언저리의 깎여진 공간, 창문 앞과 옆에 놓여있는 가구들과 가구 위에 놓인 소품들까지. 여러 요소들이 맞춤처럼 짜여져, 장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