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용두동주택/01

작년 말에 계약하여 진행하고 있는 용두동주택, 설계과정을 정리합니다.

두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 위한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의뢰인은 두 가족의 유일한 공통분모로, 한 가족에서는 아들이고, 다른 한 가족에서는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공간의 조직으로 번역한 결과’가 ‘건축’이라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계약 전 의뢰인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힘주어 드린 말이기도 합니다. 두 가족의 미묘한 관계, 구성원들의 독특한 관계를 공간의 조직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 디자인의 큰 축이 될 것입니다. 의뢰인이 가장 많이 풀어놓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성향. 자신이 원하는, 그들 사이의 바람직한 새로운 관계.

첫번째 협의. 가장 많이 공들여 한 작업.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공간목록을 간단히 그림으로 정리,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협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개별 공간의 크기와 특성, 그리고 관계를 확인합니다. 더 넓어야 할 공간들, 더 좁아도 될 공간들, 떨어뜨려야 할 공간들, 연결해야 할 공간들. 하나로 합쳐도 될 공간들.

배치대안 탐구

배치대안 탐구. 아내와 아들을 위한 블럭, 의뢰인을 위한 블럭, 그리고 부모님을 위한 블럭. 세 개의 블럭들을 대지 안에 늘어놓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건물과 땅의 관계. 건축가의 제안에 의뢰인의 고민이 더해집니다. 적절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것으로 첫번째 협의 마무리. 법규, 일정, 규모, 배치를 함께 고민하며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초반 공감되었던 배치대안

두 가족과 의뢰인. 독립된 세 덩어리를 주어진 대지 안에 느슨하게 늘어놓는 것으로 일단 시작합니다. 의뢰인을 두 가족 사이의 독립된 중재자로 규정한 대안입니다.

평면 다듬기

스케일 감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인형을 평면 위에 세우고, 동선, 시선, 공간의 흐름 등을 편하게 스케치합니다.

모델링

첫번째 대안을 얼른 입체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에 좋아하시던 의뢰인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집니다. 며칠 뒤 전화로 피드백이 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자라서 자신의 가정을 꾸릴 미래를 생각하면, 가운데에 자리잡은 자신의 블럭과 오른쪽 부모님 블럭을 붙이는 편이 좋겠다 하십니다. 엇비슷한 세 덩어리 보다는 크고 작은 두 덩어리가 낫겠다는 말씀이죠. 느슨하게 늘어선 모습이 보면 볼 수록 어정쩍하고 불편해 보인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대지 한가운데까지 들어올 수 있어야 하겠다는 의뢰인 부모님의 의견을 전달합니다.

모델링

피드백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맞추어 다시 구성하니 확실히 땅에 편하게 자리잡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길에 면한 아내와 아들을 위한 블럭 일부를 필로티로 처리, 자동차가 마당 깊숙히 들어오게 합니다. 토목 공사 범위는 늘어나지만, 이렇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아보입니다. …. 그리고, 평지붕이 좋다 말씀하셨던 의뢰인께 ‘접은 지붕’을 슬그머니 올려서 보여드립니다. 조곤조곤 설명드리니, 얼굴을 빤히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보니까 나도 이게 좋다. 하고싶으신 대로 하시라. 하고싶으신 거 또 없느냐.”

네번째 협의

이번에는 의뢰인과 부인이 함께 오셨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많아서 대화창구를 의뢰인으로 통일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자리가 필요합니다. 서슴없이 의견을 풀어놓으실 수 있도록, 커다란 도면을 준비하고 편하게 낙서할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의뢰인과 건축가가 함께 그리는 그림입니다.

건축설계는 분명히 전문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건축 안팎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비추어보면, 그리고 집을 짓는 행위가 동물로서의 본능임을 비추어보면, ‘보통사람’의 직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의뢰인은 자신이 살아갈 장소를 주체적으로 꾸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건축가보다 땅을 더 깊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 땅’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나까요. 그래서 건축설계는, 특히 집 설계는, 건축가와 의뢰인 둘의 협업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곳에 포스팅에 대한 감상이나 의문을 남겨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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