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반곡동단독주택/나비지붕집

[깊은풍경]반곡동단독주택/나비지붕집

사진 : 최지현
인근 반곡역 앞에서 내려본 모습. 여러 번 접힌 지붕은 이웃 박공지붕 집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결 다부지고 견고한 인상을 연출한다.

0_들어가며

1층평면도
1.진입필로티 2.현관 3. 욕실 4.욕실전실 겸 세면실 5.팬트리
6.식당 7.주방 8.놀이방 9.계단실 10.취미방
2층평면도
1.자녀방 2.옷방 3.화장실 4.욕실전실겸 세면실 5.복도겸파우더룸
6.욕실 7.가족실 8.부부침실 9.발코니
1층
2층
지붕

‘건축가님의 책에 담긴 신선한 디자인 시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메일. 첨부파일에는 새로운 집에 바라는 내용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젊은 부부는 직장 때문에 거처를 원주 혁신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동네에 머무를 요량이다. 그래서 공들여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건축학을 전공한 남편분은 라이프 스타일에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건축자재와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디자인 감각과 집요함은 건축가보다 더 건축가다운 면모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를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웠고,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존중해주려 애쓰셨다.

1_대지와 앉음새

단독주택 블록의 끝, 마을과 숲의 경계에 놓인 땅. 찍어낸 듯 늘어선 필지들 가운데 오직 이 땅만 일그러진 윤곽으로 여러 개의 도로에 접해 있다. 이런 곳이라면,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집의 앉음새를 고민하게 된다.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는 와중에, 건축주는 정사각형 윤곽의 평면을 제안하였다. 단순한 조형이 취향에 맞으며, 겸사 공사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건축가는, 사방으로 열린 땅에 여러 방향으로 동등한 얼굴을 세우는 것은 적절한 액션이라는, 그리고 구심력을 갖고 똘똘 뭉친 조형이라면 갓 태어난 마을에서 소박하지만 묵직한 선언이 될 수도 있겠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2_나비지붕

지붕스터디. ‘여러번 접어서 얼핏 평지붕처럼 보이는 실루엣을 연출’ 한다는 개념으로 만든 대안들.
가장 단순한 조형이 개념에 가장 잘 부합할 때가 있다.
때로는 우연히 발견한 현상을 바탕으로 중요한 개념을 세우기도 한다. 지붕과 본체 사이에 빛이 드나드는 모습은 프로젝트 진행의 큰 줄기를 지탱하는 영감이 되었다.
단순하고 묵직한 본체 위에 가벼운 지붕이 살짝 올라탄 듯한 모습. 스터디모델의 느낌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서, 건물본체는 철근콘크리트구조, 지붕구조는 경량구조(각형강관)를 채택하였다.
박공지붕과 평지붕의 중간 쯤 되는 듯한 느낌을 연출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붕은 ‘지구단위계획지침’(경사지붕)과, ‘수평의 실루엣’(평면과 앉음새에 어울리는 조형)을 동시에 만족하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서둘러 만든 스터디 모형에서 ‘묵직한 본체 위에 살짝 접힌 지붕이 가볍게 올라타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콘크리트 본체 위에 각형 강관 구조체가 올라타는, 주택에서는 드문 구조방식을 채택했다. 덕분에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틈이 생겼고, 그 틈은 고창(高窓/clerestory)이 되었다. 지붕의 아랫면, 2층의 천정은 조명기기나 센서 같은 별도의 요소가 전혀 붙지 않은, 순수한 백색의 면으로 처리되었다. 처음 스터디 모형에서의 이미지를 지켜낸 결과이다.

3_유리바닥

사진 : 천경환
집의 중앙부인 가족실의 바닥, 식당의 천정은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바닥을 지탱하는 철물은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것 보다 더 촘촘하게, 그리고 더 두툼하게 계획하였다. 햇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함이었다.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 틀의 디테일은 건축주가 손수 목가구 장인을 섭외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2층 가족실의 유리바닥은 시원하게 열린 느낌과 공간의 효율을 동시에 원하는 건축주의 바램에서 나온 것이다. 통통한 평면의 갑갑함을 해소하면서 빛과 인기척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상부의 천정, 즉 지붕의 아랫면과 호응하여, 나비지붕집 특유의 공간감을 증폭하고 있다.

4_나비지붕집의 공간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고창(高窓/clerestory). 시선은 막아주고 하늘과 햇볕은 받아들인다. 여름의 가파른 햇살은 구석에 조금, 겨울의 비스듬한 햇살은 깊숙이 들어온다.
고창(高窓/clerestory)은 실내 방의 경계가 되는 벽 상부에도 세워진다. 벽 너머 다른 방의 인기척과 분위기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굵직굵직하게 접힌 지붕의 조형 또한 고창을 통해 막힘없이 넘나든다. 2층의 방과 방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고창이라면, 1층과 2층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유리바닥이다. 유리바닥을 통해 인기척과 너머 공간의 분위기가 전달된다.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면 고창에 필름 따위를 붙여서 경계의 단절 정도를 조정할 수도 있다. 공간의 요구가 새롭게 생긴다면, 높게 접힌 지붕 아래 다락을 만들 수도 있다. 발코니의 사다리를 통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데, 이는 안으로 옴폭 들어간 나비지붕을 점검/관리하기 위함이었다. 본래의 역할 못지 않게, 외향적인 시선을 위한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의미가 더 커지게 되었다.
사진 : 최지현
사진 : 천경환
사진 : 천경환
고창(clerestory)으로 들어온 햇볕은 때로는 유리바닥과 유리난간을 통과하고, 반사하고, 부딪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극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접힌 지붕과 고창, 그리고 유리바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비지붕집 고유의 공간을 연출한다. 얼핏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 안 분위기는 바깥 날씨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극적으로 변화한다. 집안 깊숙이 들어온 햇살은 공간을 관통하고,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빚어낸다.

5_밤의 나비지붕집

사진 : 천경환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을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쏟아졌던 햇살의 흐름은, 밤이 되면 1층에서 2층으로 솟구치는 인공 빛의 흐름으로 역전된다. 공간과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개별 공간의 점유 방식 또한 뒤바뀌게 된다.

사진 : 최지현

낮에 햇살을 받아들이는 입구였던 고창은, 밤에는 내부의 빛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출구가 된다. 그 빛이 집과 거리, 집과 마을을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_맺으며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은 벽, 기둥, 바닥, 계단, 지붕, 그리고 빛 같은, 기본적인 건축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집을 꿈꿀 때, 공간 그 자체의 분위기(atmosphere) 또한 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숫자로 나타나는 면적이나 공간의 효율성, 생활의 편리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가치. 막연히 세련되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스타일과는 다른, 건축 구성 원리의 핵심에 도전하는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안정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개인적인 취향을 적극 추구하는 건축주 부부의 개성 넘치는 삶. 그 삶을 담아내는 무난한 배경을 넘어, 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감을 주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불편한 드라마를 기대합니다.’ 건축주가 보낸 최초의 이메일에 써 있던 문구처럼.

사진 : 천경환
철망난간은 아침햇살에 반응하여 철판계단 위에 섬세한 그림자를 그린다. 철망난간을 쓸 만한 좋은 이유를 발견한 순간.
사진 : 천경환
2층 옷방 방면에서 복도를 겸한 파우더룸을 거쳐 주인침실을 바라본 장면. 얕고 넓은 파우더룸 화장대는 여러 가지 소품들을 찾기 쉽게 늘어놓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복도라는 통과동선을 겸하기에 공간적으로도 효율적이다.
사진 : 천경환
사람 키 높이까지는 계단 내부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나무계단, 키 높이 위 부터는 날렵한 모양과 구조적 효율을 모두 만족하는 철판계단.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은 시각과 시점에 따라서 다양한 표정을 띈다. 때로는 잔잔히 고여있는 수면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 천경환
유리바닥에서 반사된 빛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집 안 곳곳을 물들인다. 3중접합유리는 보통의 유리에서 반사된 빛과는 사뭇 다른, 좀 더 질감있는 빛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개요
위치 : 원주시 반곡동
용도 : 단독주택
규모 : 지상2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경량구조
건축면적 : 85.0sqm
연면적 : 153.3sqm

관계자
건축가 :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천경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 천경환, 김혜운, 백정현, 신지은, 진용한
시공 : 건축주 직영
구조 : 김수경 구조기술사
기계 및 전기설비 : 무진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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