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풍경]세종시단독주택/02

구체적인 평면계획이나 공간구성은 훗날 기회가 있을 때 정리해서 드러내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개략적인 내용을 보여드리기로 합니다.

1층을 놓고,
그 위에 2층을 놓고,
지붕을 올리기 전, 지붕과 2층 벽면 상단 사이에 고창(clerestory)를 끼웁니다.
차양, 루버, 선홈통 같은 요소들도 중요하지요.
이제 그 위에 앞선 포스팅에서 탐구했던 지붕을 올립니다. 지난 원주 나비지붕집에서는 각형강관으로 뼈대를 삼았었는데, 이번은 중목구조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구조층과 단열층을 겹칠 수 있어 지붕 두께를 대폭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접히는 지붕 단면 형상에 맞추어 부재단면을 가공할 수 있으니, 실내 천정 마감면을 만들기에도 조금은 편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주 나비지붕집에서는, 아무래도 처음 시도하는 형식이다보니, 시공과정에서나 사용이나 관리 면에서 교훈으로 삼을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원주 나비지붕집의 스타일을 한층 고도화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하늘 어디엔가에서 모형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올망졸망하게 접힌 면들이었는데, 눈높이에서는 사뭇 다른 인상이 느껴집니다. 어떤 시점에서는 원근감 덕분에 지붕의 방향성, 운동성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의도는 아니었는데, 마치 조각난 지붕 용마루들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진입하는 도로에서 보면, 역시 의도는 아니었는데, 지붕이 한방향으로 솟구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포스팅은 과거의 기록입니다. 몇 주 뒤, 지구단위계획지침 해석 관련 뜻하지 않은 마찰을 겪게 되고, 지붕 디자인에 변화가 생기가 됩니다.

[기고]언북중학교다목적강당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신작, ‘언북중학교다목적강당’ 비평이 공간지 2019년3월호 (SPACE 616)에 실렸습니다.

저는 이런 기회가 참 좋습니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고, 좋은 건물을 구경할 기회가 되거니와,

비평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힘이나 글쓰는 힘을 단련하는 계기도 해서요.

지면에는 분량의 한계도 있고 편집부가 원하는 글의 방향도 따로 있어서, 글의 일부가 생략되기도 했고,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진 감이 있습니다. 물론 편집부의 요구를 따라 다듬으면서 글의 완성도가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최종 원고에 생략되었던 부분을 결합하여 이 곳에 올립니다. 더불어, 언젠가는 비평글이 아닌 작업으로 공간지에 참여하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겨울의 끝자락, 아침 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기자와 나에 비해서 건축가는 제법 늦을 모양이었다. 건축가를 기다리는 사이 체육관 안을 미리 둘러보고 싶었는데, 수위실 인터폰 너머 행정실은 허락하지 않았다. 행정실의 반응을 뒤늦게 전하는 기자에게 건축가는 옅은 미소를 띄웠다. 발주처와 건축가 사이 벌어졌던 ‘구조적 불화’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던 터였다. 건물을 둘러보는 중간중간 건축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아이디알은 설계공모전 당선을 통해 압구정초등학교와 언북중학교, 두 학교의 다목적강당을 설계하게 되었다. 큰 사무소는 이렇게 작고 귀찮은 일에 덤벼들려 하지 않았고, 정보력이 부족한 작은 사무소는 이렇게 재미있을 법한 일이 있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갓 시작한 작은 사무소로서는 감사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기쁨과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건축에 대한 열정과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믿음만으로 덤벼든 어린 건축가에게, 선수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오던 ‘판’은 상냥하지 않았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건축가에게 모든 과정이 낯설었다. 건축가의 정성과 소신은 느닷없는 고함 소리에 묻히기 일쑤였다. 발주처는 건물의 주인인 자신들을 두고 ‘감리자도 아닌 설계자’가 왜 벽돌의 미묘한 질감 차이에 집착하는지, 왜 방음벽 패턴에까지 신경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건축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현장소장의 마음이 빛났다. ‘감리자도 아닌 설계자’에게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를 걸어 디테일을 협의했다. 그래도 공사비 삼백만원을 아끼기 위해 전동커튼 대신 시커먼 필름지로 ‘빛의 상자’를 덕지덕지 발라버리는 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밝은 회색빛의 컨트롤 조인트가 벽돌벽을 보란듯이 가로지르는 것도, 번쩍거리는 스텐레스 난간 기둥이 세워지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사태’에도 불구하고, 언북중학교 다목적강당은 평범한 학교 건물 이상의 세련된 스타일과 높은 완성도를 성취하였다.

 

건축가의 설명에 따르자면, 그들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위해서라며 알록달록한 원색을 쓰거나 아기자기한 장식을 다는 것이 아니라, 두어 개의 단정한 재료로 물성의 섬세함과 단아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단순한 톤의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빛과 그 속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비평자의 생각으로는) 원색의 요소나 곡선의 모티브를 붙이는 식으로 ‘디자인을 덧씌우는’ 흔한 수법은, 사실은 아이들을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격리하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욕망과, 예산투입의 성과를 쉽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관료들의 바램, 그리고 편하게 짓고 싶어하는 시공사의 희망이 절충된 결과일 뿐이다. 건축가가 믿는 ‘건축의 가치’와 건축가가 집중하고자 하는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은 ‘아이들이 쓸 건물’이라고 가릴 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특정한 형태적 어휘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명하지만, 아이디알의 작업들에서는 분명 일관된 흐름이 느껴진다. 그들은 ‘해야 하는 말’의 틀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뽑아내며, 설명될 필요가 없거나 설명될 수 없는 말은 아예 건드리지 않는다. 가령, 해결해야 할 과제(장스팬의 대공간)에 대한 기술적인 해결(참신한 구조시스템)을 통해 공간의 스펙이 아닌 공간의 가치(생동하는 공간감)를 창출한다. 없어도 되는 무언가를 무의미하게 덧붙이기 보다는, 굵직굵직하게 벽면을 접고 자르고 겹쳐서 스케일의 부담감을 극복한다. 그리고 그렇게 접고 자르고 겹쳐서 생긴 거대한 균열을 내부 공간 연출의 유력한 단서로 삼는다. 길다란 직육면체 윤곽으로 짜인 트러스는 넓은 지붕을 지탱하는 핵심 구조체이자, 어두운 체육관 속으로 빛을 끌어들이는, ‘빛의 상자’이다. ‘빛의 상자’는 무뚝뚝하고 거대한 벽돌 덩어리를 적절히 갈라놓는 동시에 긴밀하게 묶어내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톱니처럼 튀어나온 ‘빛의 상자’는, 밖으로는 흔한 박공이나 볼트(vault)와는 사뭇 다른, 기념비적이고 단호한 표정의 스카이라인을 연출한다. 안으로는 균열된 틈을 통해 확장되는 공간감, 그리고 거대한 공간의 윤곽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은 미묘한 긴장감과 생동감을 연출한다. 촘촘히 늘어선 루버는 밝게 빛나는 ‘빛의 상자’와 어두운 필로티 사이의 어색함을 세련되게 풀어주고 있다. 야구공을 막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기능과 함께.

 

얼핏 무뚝뚝해 보이지만 언북중학교 체육관은 넓게 펼쳐진 운동장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살펴보면 살펴볼 수록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그 것은 ‘학교 이야기’도, ‘체육 이야기’도, ‘아이들 이야기’도 아닌, 그냥 ‘건축 이야기’이다. 탄탄하고 정갈하게 짜여진 담백한 건축 이야기. 그 것이 곧 건축가가 공공을 향해 풀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 아니겠는가.

 

한편으로는, 건축가가 추구하는 ‘건축의 가치’ 속에 기존 맥락에 대한 배려가 자리잡을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 건축가는 기존 학교건물에서 ‘건축적인 가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모듈이든, 패턴이든, 어휘든, 재료든, 새 건물을 디자인하면서 옛 건물에서 참고할 만한 것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그게 비평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지점이었다. ‘건축적인 가치’는 ‘건물’이 아닌 보는 이의 ‘시선’ 속에 있다고 믿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엄격한 모더니스트로서의 당연한 태도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그런 단호함 덕분에 관료주의와 타성을 돌파해서 이 만큼이나 성취해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가의 태도를 존중하는 한편으로, 형편없이 평범한 일상에서 나름의 가치를 찾아내려 하는 따스함까지 갖추게 되었을 때의 작품을 자꾸 기대하고 싶어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오랫동안 지켜보며 배우고 싶고,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희망1 : 과정과 교훈을 건축가는 일일이 정리해서 매뉴얼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 이 ‘판’에 들어오고자 하는 또래 건축가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건축가는, ‘그새 경쟁률이 높아져서 이제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웃는다.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또 하면 더 잘 할 자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희망2 : ‘건축의 가치’에 아이들은 반응한다. 어느 날, 언북중학교 학생 하나가 막무가내로 설계사무소에 찾아왔다. ‘공간이 너무 좋아, 시간 날 때마다 체육관 안에 들어가 서성거린다’면서, 건축가를 붙잡고 건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이어지던 건물 이야기는 어느새 진로상담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깊은풍경]나비지붕집/전원속의내집 게재

월간전원속의내집 표지

월간 전원속의내집 2019년 1월호에 ‘나비지붕집’이 소개되었습니다. 급박한 일정에서 애써주신 편집장님과 최지현 작가님, 그리고 흔쾌히 취재 허락해주신 건축주께 감사드립니다.

전원속의내집 첫번째와두번째페이지
전원속의내집 세번째와 네번째 페이지
전원속의내집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페이지
전원속의내집 일곱번째와 여덟번째 페이지
외부 전경
ⓒ최지현
이웃집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나비지붕집. 나비모양으로 여러 번 접힌 지붕은 이웃 박공지붕 집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얼핏 평지붕인 것 같은 납작한 실루엣을 연출, 붉은색 벽돌마감과 더불어 탄탄하고 야무진 이미지를 연출한다.
ⓒ최지현
2층 가족실 전경. 접힌 지붕 모양 그대로 실내에서는 천정이 된다. 벽은 천정의 저점까지만 올라가고, 벽과 천정 사이 세모난 틈은 유리로 채워진다. 틈을 관통해서 천정판은 막힘 없이 이어진다.
ⓒ최지현
1층. 상부 유리바닥을 통해서 2층 가족실의 공간 분위기가 식당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정사각형 윤곽의 통통한 공간이지만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유리바닥에는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러그를 깔거나 반투명 필름을 붙이는 식으로 개조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
ⓒ최지현
낮은 계단은 수납공간을 품은 목계단으로, 높은 계단은 캔틸레버 철판으로 날렵하게 연출했다. 오른쪽 구석, 낮은 바닥으로 처리된 곳은 놀이방 겸 게스트룸.
ⓒ천경환
2층, 옷방, 욕실, 주인침실을 잇는 복도 겸 파우더룸. 한 켠에 마련된 화장대는 깊이는 얕지만 폭이 넓어서 활용도가 높다. 해링본 패턴의 원목마루는 바닥을 실제보다 넓어 보이게 한다. 건축주의 센스.
ⓒ천경환
계단 중간, 1층과 2층의 경계. 2층의 고창으로 들어온 빛은 관통하고, 부서지고, 때로는 반사되며 공간 구석구석을 물들인다. 
ⓒ최지현
가볍게 둥실 떠다니는 듯한 2층의 분위기와 납작하게 가라앉은 1층의 분위기가 한 눈에 보이는 장면.
ⓒ천경환
밤이 되면 유리바닥은 빛의 바닥이 되어 1층의 인공광을 2층으로 솟구치게 한다.
ⓒ천경환
해질녘 2층 가족실 풍경.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의 방향 뿐 아니라 공간의 색깔도 바뀐다. 지붕 모양 대로 접혀진 천정판은 빛을 담는 스크린이 된다.
ⓒ최지현
해질녘의 모습. 낮에 햇살을 받아들이는 입구였던 고창은, 밤에는 내부의 빛과 공간감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출구가 된다.

보다 자세하게 정리된 내용은 이 곳으로…

[깊은풍경]반곡동주택/06

완공 사진

 

며칠 전, 잡지사에서 소개해주신 사진작가님이 사진을 찍는 사이,

제 나름대로 소니 똑딱이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매체에 실리기 위한 사진 촬영이기에 가구나 소품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찍었는데,

지난 포스팅에 올렸던 인스타그램 사진들에 비해 어색하고 경직된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마구 어지러운 모습의 인스타그램 사진들이 더 나아보입니다.

 

사진작가님의 관점과 제 관점이 다를 것이기에,

매체를 통해 발표되는 사진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기대 됩니다.

사진촬영은 결국 상상과 구현의 차이를 확인하는 일이고,

그래서 뿌듯함과 후회가 교차하게 됩니다.

뿌듯함과 후회 모두,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설계자이자 감리자로서, 마감 공사 막판에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고,

시공사 없이 직영으로 모든 공사를 진행하는 건축주께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송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여러모로 배려해 주시고,

외부 매체 발표를 흔쾌히 양해해주신 건축주 내외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층 주방에서 계단과 놀이방, 창 너머 데크를 바라보는 시점. 이전 포스팅에서 올렸던, 인스타그램을 의식한 정사각형 프레임과는 조금 다른 느낌.

거꾸로, 놀이방에서 주방쪽을 바라보는 시점. 어두운 동굴같은 공간이 보이는데, 덕분에 노출콘크리트의 견고한 느낌이 강조됩니다.

동굴들 중 하나는 욕실로 통하는 짧은 복도. 욕실과 식당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곧바로 붙어있는 상황은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그래서 사이 공간을 둔 것이지요. 공간 효율은 조금 떨어지나, 생활의 격과 여유는 높아집니다. 둥근 거울과 조명 연출은 온전히 건축주의 센스. 설계를 진행하고 건물을 짓는 내내 건축주로부터 배운 것이 많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유리 바닥이라는 경계를 관통하기에, 마치 물 속에서 물 바깥으로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초겨울 아침 여덟시 무렵. 매끈한 철판 계단 위에 난간 철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계단의 디딤판과 챌판이 입체로 엮어지기에, 아주 단순한 그림자의 패턴이 의외로 풍요로운 모습을 연출합니다. 사실 이런 장면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익스팬디드메탈 (철망)을 쓰면서 기대할 만한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점심을 지나 늦은 오후. 햇볕의 방향과 고도에 따라서 실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해진 후, 2층 조명을 켜기 전. 1층에서 유리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빛이 지붕에 얼룩을 그리는 모습.

2층은 사적인 매스터배드룸존과 아주 조금은 공적인 가족실, 두 영역으로 나뉘는 공간 구성입니다. 두 영역을 가르는 벽은 아무런 하중을 지탱하지 않는, 비내력벽입니다. 벽체와 상부 수납공간 사이에는 슬릿이 뚫려 있는데, 마감공사 직전에 결정된 내용입니다.

이 벽은 동쪽을 향해 있기에, 특히 아침 햇볕을 받아 극적인 효과를 연출합니다. 위로부터 차례로, 아침 여덟 시, 아침 열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시 무렵. 날카롭게 접힌 지붕 조형은 대체로 삼각형 모양으로 보이는데, 특정 시점에서는 입체가 아닌 평면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해진 직후. 천정은 아무런 조명도, 설비도 달려있지 않은, 그냥 하얀 판입니다. 2층의 모든 빛은 천정판 아래, 벽체 위에서 쏘아 올려지는 간접광으로 연출됩니다. 트랙 위 조명 개수와 각도를 조절하면서 천정판에 펼쳐지는 빛의 얼룩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완만한 각도로 꺾인 지붕판이 실내에서는 그대로 천정이 되는데, 어떤 특정 각도에서는 눈 앞에서 마치 절벽처럼 쏟아지듯 엄습해옵니다. 그 것을 앞서 ‘평면같은 느낌’ 이라 표현한 것이죠.

슬릿 뚫린 벽의 안쪽, 주인침실과 옷방, 욕실, 그리고 그 세 영역을 잇는 파우더룸을 겸한 복도. 슬릿이 숨통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해링본 패턴의 원목마루 또한 건축주의 센스. 공간을 콤팩트하게 엮느라 복도 한편에 놓인 화장대는 깊이가 얕은 편입니다. 그래도 폭이 넓어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넉넉한 편입니다.

옷방과 주인침실을 오가는 복도에서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보이는 모습. 매일매일의 아침 햇살이 부디 기쁨으로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나비지붕집

이것으로 반곡동단독주택의 ‘작업과정/IN_PROGRESS’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내년 1월 매체에 실린 후, ‘작업결과/PROPOSAL’ 카테고리에 정리 포스팅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 때, 집 이야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집 이름은 지붕의 모양을 따서 ‘나비지붕집’이라 부르기로.

 


 

[깊은풍경]반곡동주택/01

[깊은풍경]반곡동주택/02

[깊은풍경]반곡동주택/03

[깊은풍경]반곡동주택/04

 

 

[깊은풍경]반곡동주택/05

 

 

[깊은풍경]반곡동주택/05

반곡동주택은 며칠 전 사용승인을 받았고, 지금은 건축주 이사짐 정리 진행 중입니다. 엇그제 현장에 인사드리러 간 김에,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인스타 필터를 먹여서 사진 톤이 두서없습니다.


1층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놀이방에서 식당과 주방을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2층 가족실로 통하는 하얀 프레임의 투시바닥이 보입니다.

거꾸로, 주방에서 놀이방을 바라본 장면. 아담한 정사각형 윤곽의 공간인데, 대각선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면 제법 시원한 느낌이 납니다.

거푸집을 짜고 레미콘을 부어서 만든 계단은 둔하고 안이한 이미지라 생각했습니다. 철판을 접어서 캔틸레버로 붙여 만드는 계단이 날렵하고 가뿐합니다. 철판 계단이 매달려있는 두툼한 콘크리트 구조체의 긴장감도 한층 돋보이고요. 그런데 철판 계단은 날카로워서 안전사고 걱정도 있고,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안 좋으니, 사람 키 높이 위로만 붙입니다. 키 높이 아래부터는 계단 밑 공간을 활용하기 편한 나무 계단으로 만듭니다. 위 아래 계단이 조형적으로는 서로의 거울상이 된 듯한 상황입니다. 나무와 철판, 다른 두 재료들이 맞닿는 부분은 살짝 간격을 둡니다.

철판계단은 머리 위 높이에 달려있으니 마음껏 날카롭게 연출합니다. 날카로운 모양 그대로 힘을 받는 역할을 겸합니다. 나무, 철판, 유리… 계단과 바닥 재료가 달라지면서 각파이프, 메쉬, 유리… 난간 형식도 달라집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펼쳐지기 시작하는 장면…

2층 가족실. 유리바닥, 콘크리트, 원목마루. 재료는 달라지는데 가구들은 경계를 가로질러 느슨하게 배열됩니다.

투시바닥. 구조 역할로는 이중유리로 충분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유리는 손상될 수 있으니 한겹을 더 해서 삼중으로 겹쳤습니다. 시선을 적당히 걸러주기 위해서, 기분좋은 비례를 위해서, 아래로 쏟아지는 빛을 적당히 쪼개기 위해서, 그리고 넌슬립 역할을 위해서, 구조에서 허용하는 크기보다 잘게 나누었습니다.

단순하게 접힌 지붕 조형의 전모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어느 시점. 벽 상단의 유리 칸막이에 반사된 영상이 혼란을 더해줍니다.

바닥의 유리에서 반사된 빛은 두툼한 삼중유리의 물성을 반영, 좀 더 쫀득한 인상으로 변해 공간 구석구석으로 흩어집니다. 이런 효과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실과 욕실복도를 나누는 벽에 뚫린 틈. 을 통해 가족실을 바라본 장면.


바닥 마감재가 깔리고 가구와 소품이 놓이니 비로소 공간에 생기가 도는 듯 했습니다. 무채색 벽면이 느슨하게 제각각 펼쳐진 가구들을 위한 좋은 배경이 되었습니다.

[깊은풍경]패트병으로만든벽

패트병

지난 9월12일, 광명동굴 근처에 위치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패트병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저는 AnLstudio의 신민재 소장님 소개로, 패트병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 틈에 끼어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합니다.


시작

패트병 작업! 가구나 작은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은 이미 많은 작가분들이 활발히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한달이 채 안되는 작업기간 동안, 아무런 배경이 없는 제가 불쑥 끼어들 만한 방향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는 차별되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제안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각진 패트병을 쌓아서 큰 벽을 만드는 작업이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무난하게 쌓아 올리되 물량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안에 색깔있는 무언가를 넣어서 쌓는다면, 벽을 이루는 벽돌(패트병) 하나하나를 픽셀처럼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메시지를 새길 수도 있겠구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가볍게 생각하고 얼른얼른 확인…

아직 병을 어떻게 쌓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단순하게 병을 벽돌처럼 배열하고 글자를 넣어봅니다…

커다랗고 단순한 작업이 될 것이니, 벽에 새겨지는 글자라도 최대한 ‘있어보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벽 길이를 확인하면서 글자 모양을 계속 다듬었습니다.

문득 정말 벽돌처럼 평평하게 쌓는 것 보다는, 자잘하게 지그자그로 쌓아야 구조적으로 조금이라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 아래 스케치)

모델링

얼른 모델링으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봅니다. 평범한 벽돌처럼 쌓기도 하고.

앞서 언급한, 스케치의 아이디어처럼 지그자그로 쌓기도 하고.

그냥 꽉 맞춰서 쌓으면 갑갑해 보일 수도 있으니, 조금씩 간격을 두어 보았습니다. 지그자그의 변 길이가 길어져 구조 안정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되고요. 이렇게 성글게 쌓으면, 쌓아야 할 병의 개수를 줄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그자그로 쌓되, 병뚜껑을 안으로 감추는 식으로 쌓기도 하고. 세번째와 네번째 사이에서 고민하다, 하얀 병뚜껑도 의장 요소(?)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세번째 대안으로 결정했습니다.

 

세번째 대안에 글자를 새기고 전시장에 앉혀보았습니다. 맞춤처럼 딱 맞아서 놀라움.

효과를 짐작하고 스케일감을 확인.

도면

개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들어야 하니, 제작을 위한 도면을 그려야 합니다. 제작에 참여할 분들은 작업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분들일 것입니다. 번잡한 현장에서 착오나 오해 없이, 정확하게 만들 수 있게끔 도와주는 도면이 필요합니다. 익숙치 않은 재료와 구성방식이라 평소에 그리던 건축도면과는 표현방식이 조금 다를텐데, 큰 틀에서의 취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적의 표현방식을 찾아내는 과정이 저는 참 즐거웠습니다. 도면 작업한 아르바이트 학생도, 적어도 겉으로는 즐거워 보였습니다.

나름 상세도면도 그리고, (양면테이프로 접착)

뚜껑끼리 고무줄로 묶어 보강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실행

아래 두 단에 자리잡을 120개의 병에는 물을 가득 채워서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전체 1,800개의 패트병에 일일히 뚜껑을 채우는 것도 큰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버려진 패트병을 모아서 재활용해야 ‘업사이클’이라는 개념에 부합할 것입니다. 하지만 1달 동안의 준비기간 동안 아이디어를 내고, 계획하고, 실제로 작업까지 해서 설치를 마쳐야 하는 여건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글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도 큰 고민이었습니다. 식용색소를 풀어낸 물, 작은 스티로폼 공, 콩 등등, 벼라별 상상을 하고 가격과 시공성(?) 등을 따져보며 검토하였습니다. 완충과 장식을 위해 선물상자 속에 채우는 종이보푸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균등하게 양을 나누고 (아이에게 국수 먹이듯) 1800개의 좁은 입으로 밀어 넣는 것 또한 큰 일이었습니다.

자리잡고 열 맞춰 쌓아 올렸는데,

정확히 수직이 아니다 보니 점점 기울어지다 조금씩 무너지더라고요.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낚시줄로 배후의 벽에 묶어 고정하다 보니, 힘이 몰려서 거꾸로 그 방향으로 와장창 무너지는 충격과 공포.

낚시줄로 배후 벽과 전면 상부 천정, 앞뒤 두 방향으로  묶어 고정하고, 중간중간에 케이블타이로 엮어서 전시 오픈 직전 겨우 마무리. 공간이 좁고 렌즈가 후져서 정면에서는 한 씬에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그자그로 자글거리는 조형이라, 비스듬히 보면 글자가 벽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가 납니다.

소감

앞서 말했듯 실제적인 업사이클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직도 아쉽습니다. 보다 진보된 기술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넓은 공간을 무난하게 점유하며 작지않은 임팩트를 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업들과 함께 전체 전시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말씀

좋은 기회를 주신 신민재 소장님,

재료 탐구와 계획검토에 이어 설치까지 도와주신 김혜운씨,

자리에 맞춰 병을 쌓아올리는 데 도움을 주신 강봄이씨와 권솔희씨,

패트병에 물 넣고 양면테이프 붙이는 작업을 해주신 김종화씨와 김한준씨,

빈 병에 빨간 종이를 채우는 작업을 해주신 박윤선씨,

급한 부탁에 멀리서 달려와 이래저래 크게 고생해주신 정희은씨와 박은정씨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비슷한 작업

[깊은풍경]디자인메이드2010

[깊은풍경]초록풀작목반

[깊은풍경]반곡동주택/04

상상하지도 못했던 황당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사진행방식은 기존 시공자 배제, 건축주 직영으로 바뀌었고,

느리지만 뚜벅뚜벅, 9월 말 완공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에는 내부 유리공사가 있었습니다.

실내 벽 상부를 구분하는 유리 간막이 설치를 시작합니다.

지붕 아랫면과 벽 사이의 틈에 끼우는 작업이었습니다.

바닥 유리 한 장을 놓는 순간.

계획된 바닥면적이 온전히 확보되는 순간입니다.

원래는 철제앵글로 액자를 짜는 계획이었는데, 나무로 짜맞춤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철제앵글에서 나무로 변경되면서, 투시바닥은 마음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좌식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시선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위 아래 층의 소통…

 

 

[동경]써니힐즈

작년 가을, 잠깐 동경에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켄고구마 선생님의 작업을 찾아갔었습니다.

오모테산도에 놀러간 김에 조금 안으로 들어가, 써니힐즈에 가보았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얼기설기, 어설프게 짜맞춘 바구니 같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교차로 모서리에 위치해있어, 접근 경로가 두 가지 입니다.  다른 골목길에서 접근할 때 보이는 모습.

나무 각재를 얼기설기 묶어 만든 껍데기로 건물 전체를 씌워놓았는데, 확실히 주변의 보통 건물들과 큰 대조가 됩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널리 공감되고 있는 건축의 이미지 -견고하고 단호하게 경계를 이루는 모습- 의 대척점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추구한 결과입니다.

각도가 많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각목들을 X축, Y축, Z축 세 방향으로 배열하면서 교차점에 정확하게 포개지도록 짜맞춰 만든 것입니다. X축과 Y축, 두 방향의 각재를 포개는 것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각각의 각재에 반 정도씩 흠집을 내어 짜맞추면 되니까요. 두 축에 미리 Z축 방향을 염두에 둔 흠집을 낸 뒤 살짝 포개놓고, 마지막 Z축 방향 각재는 살짝 굴리듯 회전해서 밀어넣으면 세 방향의 각재가 정확하게 교차점을 공유하게 됩니다. 언젠가 보았던 다이어그램을 회상하면서 어설프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잘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입니다. ㅠㅠ 이런 내용은 열댓개 문장을 빠곰히 읽는 것 보다 서너개 그림을 가볍게 훓어 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편합니다. 아무튼 이런 기법은 켄고구마 선생이 발명한 것은 아니고, 일본 전통 목공예 기법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본인이 그렇게 밝히고 있는데, 오히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발명한 것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건축의 이미지 -견고하고 단호하게 경계를 이루는 모습- 는 분명 널리 공감되는 이미지이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 돌과 벽돌로 짓는 건물에서 시작되어 철과 유리, 콘크리트로 설명되는 근대건축이 널리 퍼지면서 굳어진 이미지인데요. 목조 건축의 전통을 공유하는 문화권에서는 애매한 경계를 지닌, 부드러운 건축의 이미지 또한 진작부터 공감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지요. 섬세하게 짜맞춘 나무창틀에 얇고 흐믈거리는 종이를 발라서 안팎을 갈라놓는 모습이라든지, 건물 안인지 바깥인지 규정하기 애매한 깊은 처마와 대청마루 같은 공간의 느낌 같은 것에서 발생하는 이미지가 그렇겠지요.

물론 지금 대도시에서 지어지고 있는 절대 다수의 건물들은 여러 이유로 ‘견고하고 단호한 경계’를 갖게끔 지어지고 있습니다. 근대건축의 저력의 결과인데 이제와서는 그 것이 근대건축의 한계가 됩니다. 근대 건축의 한계를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근대 건축이 간과했던 수법(풍토성과 수공예 기법)을 빌려왔다는 데에  묘미가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켄고구마 선생님이 참 영리한 분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굵직하게 흘러가는 흐름의 어느 지점에 자신을 존재감있게 자리매김할 줄 아는 능력! 막상 선생님은 이런 맥락을 지적 허영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고 ‘의성어건축/의태어건축’이라는 말랑말랑한 개념으로 상냥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면모에서 거듭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건물이 하늘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일부러 각재 일부를 삐죽빼죽하게 배열하여, 다양한 차원에서 부드러운 경계를 갖도록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벽면을 반듯하게 바라보면 가지런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시선을 조금만 틀어도 제법 역동적인 모습이 연출됩니다.

세 방향의 각재가 하나의 교차점에서 포개어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는데, 동시에 수 백 수 천 개의 교차점을 공유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가늠이 잘 되질 않네요. 역사와 맥락을 해석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영리함과 더불어, 기술적인 노하우가 다른 건축가는 함부로 따라하기 힘든 스타일의 차별점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스타일은 코르뷔지에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나 미스 스타일의 강철 오피스 만큼 널리 퍼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생산성과 경제성에서 비롯된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 모던건축 스타일의 덕목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친환경성을 향한 목소리가 시게루반 스타일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켄고구마 스타일은 보편성을 얻기 위한, 실천을 위한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차별되는 브랜드 구축을 위한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어찌되었든 한계를 확인하고 대안의 가능성을 주장한 것 만으로 충분히 큰 의미가 있겠지요.

바깥에서는 얼핏 막연하고 압도적인 표현으로 비추어졌던 패턴이 건물 안 창문 너머 풍경에서는 작은 조각이 되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표현으로, 귀여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계단실…

건물 안 계단까지 밀려들어온 껍데기 패턴이 자연스럽게 난간 지지대를 겸하는 장면에서는 많이 흐뭇했습니다.

껍대기 패턴은 짜임새 그대로 테이블 지지대로 응용되기도 합니다.

날씨가 화창해서 조각난 햇볕이 내부 공간으로 밀려들어왔더라면 애매한 경계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가 더 생생하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닥(천정) 구조체는 껍데기 패턴과 일관된 흐름으로 읽혀, 건물 전체의 완성도를 더해주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울창한 숲을 거니는 듯한 감각이 연출됩니다.

외부의 입체 패턴이 납작하게 평면으로 변형되어 칸막이벽으로 응용된 모습.

한참을 바라보아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동경]히로오

작년 가을, 지인의 초대로 동경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들을 뒤늦게 정리해서 올립니다.

‘히로오’라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낮은 주택들이 모여있는 동네에 느슨하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산책 겸 동네구경을 했었지요. 서울에서라면, 강남역 부근 역삼동, 국기원 고개 너머 낮은 집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는데, 그 곳과 아주 닮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풍경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요.

몇 가지 재료들이 조합된 모습이 흥미로워 찍은 사진인데, 정리하면서 다시 보니, 바깥에 접하는 짜투리 공간을 넉넉하게 비워둔 모습이 더 인상적이네요. 건물 본체 구성 상 빈 공간이 생겼는데, 대지경계선에 맞추어 담 따위를 바투 세워 막지 않아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공간이 골목을 향해 펼쳐진 모습입니다.

박력있는 돌쌓기가 인상적이어서 습관적으로 찍은 사진.

옆집과 내 건물 사이, 좁은 골목같은 빈 틈이 아무렇지도 않게 활짝 열려서 바깥 길에서 훤히 보이는 모습도 나름 재밌었죠.

역시 재료가 흥미로워 습관적으로 찰칵.

땅을 구분하는 담장은 생략, 건물 본체만으로 길과 만나게 하되, 출입문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부담스러우니 나무를 심었네요. 대지경계선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공간을 두고 펼쳐지는 상황이 은근히 풍요로워보입니다.

벽 색감이 예쁘고, 조명이나 환기구 같은 소품도 예뻐 보여서 찰칵.

대지경계선과 건물본체 사이, 애매하게 남는 공간을 놓치지 않고 나무를 심고, 또 꾸준히 잘 가꾸는 모습.

흔히 보이던 풍경….

건물 출입구 부근 건물 덩어리를 후퇴시켜 여유공간을 만들면 여러모로 좋겠지요. 비나 눈, 햇볕을 잠깐이라도 피할 수 있는 여유가 되기도 하고, 바깥 세상을 향해 드러나는 표정도 너무 각박하지 않고 부드러워지고요. 이런 소박한 표정들이 하나둘 모여서 길의 풍경이 되었을 때, 동네를 거닐면서 느껴지는 기분도 달라지겠지요.

그런데 이런 모습은 좀 의외였지요. 자주 드나드는 출입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을 향해서만 열려있는 자투리 공간인데, 나름 열심히 꾸며서 무슨 연극무대의 배경같은 느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출입구 부근인데, 시원하게 열어두고 넉넉하고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모습.

기둥과 지붕, 바닥재료의 변화로 느슨하게 드러나는 경계.

바깥을 향해 훤히 열려있는 차고. 거실이나 침실은 문제가 되겠지만, 차고 정도의 공간은 길을 향해 열려도 아주 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길에 면한 집의 모든 얼굴이 매끄럽게 닫혀있는 것 보다는 가끔씩 살짝살짝 열려있는 편이 걸어다니면서 느껴지는 길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넉넉하고 부드럽게 연출합니다.

그 와중에 예쁜 자동차가 보여 찰칵.

길을 향해 열린 몇 개의 대문과 나선계단, 그리고 배달오토바이. 이 정도의 제스춰가 골목풍경에 적잖은 활기를 줍니다.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6

지난포스팅(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5)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굵직한 루버로 드문드문 채워진 투과성있는 껍데기는 앞서 말했듯 또렷한 윤곽의 완고한 표정을 지닌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좋은 대비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키 큰 나무들과도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가능한 많은 빈틈을 지닌, 그리고 약간의 무작위성이 가미된 느슨한 패턴이 자연에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인상을 주겠지요.

앞서 언급했듯, 건물 1층 바깥은 열주가 늘어선 필로티로 되어 있어서 표피의 루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두툼한 경계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필로티 바닥 (갤러리?)은 높이 변화 없이 평평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건물을 둘러싼 땅은 끊임 없이 꿈틀거리고 있기에, 땅과 만나는 부분은 계단으로 보정되어야 합니다. 바로 앞선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 뒤켠은 높이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큰 길에 면한 건물 앞면은 높이 차이가 제법 나게 됩니다.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단으로 건물 전면을 길게 채웠는데, 결과적으로 다소 엄숙한 표정을 띄게 되었습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길게 늘어선 계단 구석에 문득 묵직한 통돌이 놓이고, 이 건물이 이 곳에 이런 식으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새겨집니다.

100미터에 육박하는 건물 전면을 계단으로 채우느라, 휠체어 접근 경로는 옆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표지판을 뜬금없이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여유의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계단 속에 경사로를 넣을 수도 있었겠는데, 굳이 계단으로 꽉 채워버린 모습에서 건축가의 고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집착이 있었기에 건물 구석구석, 이 정도의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서 로비 언저리를 둘러 본 몇 주 뒤, 내부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건물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진들을 통해서 짐작했던 풍경들이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기대 이상으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로비에서 올려보았던 네모난 천창이 5층 구내식당 중정의 수공간 바닥이었네요. 바닥이 아닌 바닥과 천정을 겸하는 요소이자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경계이기에, 이 수공간은 상상이 멈추는 목적지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다른 상상으로 도약하는 의식의 시작이 됩니다. 빛나는 연못 바닥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이 곳에 다다르기 얼마 전에 겪었던 로비의 풍경을 알게 모르게 의식할 것이고, 그러한 의식의 흐름은 건물 전반의 입체적인 구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식과 이해의 도약이 회사의 실적으로도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해볼만 합니다.^^ 높은 천정의 공간이 두뇌활성에 도움을 준다는 뇌과학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니, 그냥 막연한 기대는 아닐 것입니다.

10센티 미터의 물은 바람을 비롯한 각종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표면이 아닌 덩어리로서의 표정을 드러냅니다. 그만큼 바로 아래 로비 공간은 생기를 띄고 꿈틀거리겠지요.


3줄요약

  1. 요즈음 완공된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에 구경갔었습니다.
  2. 역시 대단했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습니다.
  3. 아모레퍼시픽에 취직해서 매일매일 이 건물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